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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단순미 돋보이게 하는 ‘동화의 나라’ 소품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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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호 26면

2 자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가구들로 가득 차 있는 덴마크 대사관저 내부.

“덴마크 사람들이 인테리어에 쏟는 관심은 거의 강박관념 수준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덴마크 어디를 가든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물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1 동화 속 주인공을 표현한 종이 장식품들이 집안 곳곳에 매달려 있다.

지난 4월 주한 덴마크 대사관저를 방문한 자리에서 토마스 리만 대사와 줄리 리만 대사 부인은 덴마크 디자인이 각광 받는 이유로 ‘실용성’과 ‘단순미’를 꼽았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의 높은 언덕에 위치한 주한 덴마크 관저는 이 두 가지 장점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집은 깔끔한 화이트 벽지에 단순한 스타일의 목재 가구들이 은은한 조명들과 어울려 아늑한 느낌을 줬다.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화사하게 살려주는 건 벽에 걸린 다양한 미술작품들이었다. 밝은 톤의 그림들은 흰색 바탕의 벽에 재미를 주는 포인트로 작용했다.


실내의 가구와 소품들은 디자인 강국 덴마크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응접실 중간에 위치한 검정 소파는 덴마크 ‘에릭 요르겐센’사의 ‘EJ 60’. 이 소파들 사이에 긴 줄로 매달아 놓은 램프는 덴마크 건축가 이외른 우촌이 설계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본땄다. 대사가 특별히 애지중지한다는 ‘위시본 체어(Wishbone Chair)’는 응접실과 주방을 잇는 한쪽 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덴마크 유명 산업디자이너 한스 웨그너의 작품이다. 등받이가 영어 알파벳 ‘Y’를 닮아 대사 부부는 이 의자를 ‘Y 체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이 중에서도 부인이 가장 아끼는 건 외부 손님들을 맞이할 때마다 꺼낸다는 로얄 코펜하겐 그릇들이다.


“전시해놓은 로얄 코펜하겐 그릇들을 한국 귀빈들이 먼저 알아보더군요. 덴마크를 대표할만한 문화유산이죠.“


줄리 리만 대사부인에게 241년 전통의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 로얄 코펜하겐은 특별한 존재다. 자칫 어색한 정적이 흐를 수 있는 외빈과의 첫 만남에 이 도자기는 최고의 ‘아이스 브레이커(ice breaker,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을 누그러뜨리는 활동)’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소파·의자는 자국 유명 디자이너 작품1775년 덴마크의 줄리안 마리 황태후에 의해 설립된 로얄 코펜하겐은 한국에서도 명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채로운 색상과 풍부한 디테일을 살린 디자인으로 인가가 높다. 관저에 있는 로얄 코펜하겐 컬렉션 중 대사 부인이 가장 아끼는 건 ‘블루 플루티드 플레인(Blue Fluted Plain)’과 ‘블루 플루티드 메가(Blue Fluted Mega)’. 블루 플루티드 플레인은 1775년 처음 소개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부인은 한사람의 페인터가 제품 하나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2000년 제작된 블루 플루티드 메가는 플루티드 플레인의 문양을 크게 확대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독특한 개성을 살려냈다.


로얄 코펜하겐의 슬로건은 ‘Everyday Luxury(일상에 럭셔리를 담다)’라고 한다. 200년 넘는 역사를 이을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자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 3월엔 서울시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해 페인팅 명장의 시연회를 통해 자사 그릇들이 탄생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3 큰 창문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지는 모습.

본국에서 직수입한 물품들로 가득 찬 3층 대사관저는 덴마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집이다. 하지만 부인은 이 집이 스칸디나비아 인테리어를 대표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실내에 있어도 바깥 환경과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설계다. 대사관저는 큰 창문을 통해 하루 종일 자연광이 쏟아진다. 또 집 안팎을 이어주는 여러 ‘연결고리’들이 있다.


“스칸디나비아 집들의 창문들은 크고 개수가 많아요. 겨울이 굉장히 어둡기 때문에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5 로얄 코펜하겐 그릇들 사이로 직육면체의 양초 받침대 ‘쿠부스’가 전시돼 있다.

한국전 때 의료 지원 온 병원선 그림도대사 부인의 설명에서 채광을 중시하는 북유럽 인테리어 스타일의 연원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소 냉랭하게 느껴질 수 있는 유리창가에 놓인 소품은 덴마크의 저명한 건축가 모겐 라센이 디자인한 직육면체의 양초 받침대 ‘쿠부스(Kubus)’였다. 집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안을 들여다볼 때 받을 인상까지 고려한 장치라고 한다. 1962년에 제작된 쿠부스는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 오로지 곧은 선들로만 이뤄진 심플한 디자인이다. 오늘날 모든 덴마크 가정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창가엔 동화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표현한 갖가지 종이 장식품들이 또 다른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주로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 장식품을 내거는 미국인들과 달리 덴마크에서는 일년 내내 창가 곁에 건다고 했다. 안데르센으로 대표되는 동화의 나라 다운 전통이었다.

4 대사 부부가 실제 결혼한 숲을 그린 유화 ‘Danish Spring Forest(2014)’.

집 안에 걸려 있는 수많은 미술작품들 중 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건 응접실에 걸린 ‘Danish Spring Forest(2014)’라고 했다. ‘덴마크의 봄 숲’으로 해석되는 이 유화는 리만 대사와 결혼한 2014년 시부모가 선물로 준 것이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이 숲은 대사 부모님의 여름 별장이 인근에 있어 리만 대사가 어린시절부터 꽤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또 대사 부부가 결혼한 곳이기도 하다. 추억이 얽혀있는 숲을 담은 그림이니 부부가 각별히 애정을 가질 만도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전 이미 임신한 상태였어요. 저희 딸 소피는 지난해 2월 서울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나 저희 부부에게 삶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가져다 줬죠. 한국과 한국인들을 더욱 고맙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고나 할까요?”

토마스 리만 대사(오른쪽)와 줄리 리만 대사 부인.

한국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그림은 1층 정문 앞에 놓인 ‘유틀란디아(Jutlandia)’호 사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료지원을 결정한 덴마크에서 보내온 최첨단 설비의 병원선을 담아냈다. 1951년 1월 23일 덴마크에서 출발해 3월 7일 부산에 입항한 유틀란디아 호는 수많은 의료진을 데려왔고, 이후 두 차례 더 입항해 한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5000명의 UN군인과 6000명의 민간인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올해가 첫 입항을 한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관저에 있는 한국 물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대사 부부는 응접실에 걸린 김민정 작가의 그림들을 가리켰다. 종이에 에콰틴트 기법(동판화를 할 때 에칭의 한 방법)을 사용한 작품들로 2003년 제작된 ‘Scambio’와 ‘Evasion’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덴마크 외교부에서 구입하여 관저에 전시하는 그림들이다.


“덴마크 관저라 할지라도 한국에 주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게 필요했어요. 보시다시피 심플함이 돋보이기 때문에 대사관저와 굉장히 잘 어울려서 매우 흡족합니다.” 대사 부인의 설명대로 김 작가의 작품들은 단순미가 돋보이는 덴마크 관저에 잘 녹아들었다.


이성은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lee.s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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