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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본뜬 연못, 해태석상 두개 한·미 장인 함께 지은 우호의 상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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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6면

4 응접실 중앙 벽난로 위 굴뚝에 커다란 ‘평안할 영(寧)’자가 새겨져 있다. 박상문 기자

주한미국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Habib House)’는 덕수궁 돌담길에 자리잡은 고풍스러운 한옥이다. 주한 외국 대사관저들 중 유일하게 한국 전통 가옥으로 꾸몄다. 이 곳엔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와 그의 아내 로빈, 한국에서 얻은 첫 아들 ‘세준(洗俊)’군과 바셋하운드종 반려견인 그릭스비가 살고 있다.

2 관저의 정문 앞에 놓인 해태 석상.

관저의 정식 명칭 ‘하비브 하우스’는 1970년대 초반 주한 대사를 지냈던 필립 하비브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재임 시절 낡은 관저를 해체해 한국 전통 건축방식에 현대 건축 기법을 동원한 신축 공사를 지휘했다. 아랍어로 하비브(habib)는 ‘사랑하는’이란 뜻이다.


지난해 5월, 하비브 하우스는 정동길 첫 야간축제인 ‘정동야행(貞洞夜行)’에서 이틀간 일반 시민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현재 영빈관으로 사용되는 사랑채는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2호다.


코리아중앙데일리 취재팀이 방문하자 리퍼트 부인은 한창 걷기 시작한 세준이와 그릭스비를 대동해 집안 곳곳을 보여줬다. 세준이의 미국식 이름은 제임스 윌리엄 세준 리퍼트. 리퍼트 부부는 아들에게 ‘정직한 삶을 사는 특출한 인물’이 되라는 뜻에서 한국식 중간 이름을 지어줬다. 2014년 말 이사온 리퍼트 부부는 이 관저의 13번째 주인공이다.

1 경주 포석정을 본뜬 주한 미국 대사관저의 연못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해 리퍼트 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3 선물받은 도자기들로 장식된 방을 리퍼트 대사가 서재로 꾸미기 시작했다.

리차드 스나이더 전 미 대사는 하비브 하우스에 대해 “한국 전통 기법과 미국의 현대 건축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양국 관계의 상징”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한국과 미국 양국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1974년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한국과 미국 최고의 건축 전문가와 장인들에게 한국의 전통미와 현대적 편의 시설을 접목하는 설계를 의뢰했다. 한국 측에선 하버드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조자용 박사가 건축팀장을 맡고 전통 건축가 신영훈 선생과 이광규 도편수가 참여했다. 미 국무부 측에선 멜저 부커가 현장 감독으로 나섰고 스튜어트 누프가 설계 책임자를 지냈다. 새 관저는 18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1976년 5월 18일에 완공됐다. 하비브 하우스에 사용된 목재는 미국 오레곤 주와 테네시 주에서 자라는 더글러스 전나무를 썼다. 지붕에 오른 기와는 전통 기와 제작업자에 의뢰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목재와 진흙으로 만들어진 옛 관저의 지붕은 회반죽, 합판, 펠트, 아스팔트 자재로 재구성했다. 탁 트인 구조와 목조 기둥, 우아하게 위로 솟은 처마의 곡선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살렸다.

대사 내외와 아들 ‘세준’군과 반려견인 ‘그릭스비’.

하비브 하우스에는 총 아홉 개의 방이 있다. 마스터 베드룸, 서재, 음악실은 각각 한 개씩 있고 응접실 두 개, 게스트룸은 네 개다. 영빈관(Legation House)에는 총 네 개의 방이 있다. 실외엔 수영장, 테니스장, 정원과 온실을 갖추고 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공간은 대사관저 안뜰에 위치한 연못이에요.” 리퍼트 부인은 경주 포석정을 본따 만든 연못을 가리켜 사계절의 눈부신 변화를 실감하기 최적의 공간이라고 했다. “꽃이 만개하는 봄에는 물고기들이 뛰어 놀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는 온통 하얀색으로 물든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다고요.”


리퍼트 부인은 다이닝룸 한 쪽 벽에 걸린 사진을 가장 아끼는 물건이라고 했다. 강원도 양양군의 설경을 담은 사진작가 권부문의 대작 ‘무제’였다.


“부모님이 현재 버몬트 북부 지역에서 살고 계시는데 그 동네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요. 작품을 보면 마치 버먼트 주의 찬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요.”


한·미 역사에 관심이 많은 리퍼트 대사는 요즘 서재 꾸미기에 나섰다고 한다. 다이닝 룸과 응접실 사이에 위치한 이 작은 방은 현재 선물로 받은 각종 도자기들로 꾸며져 있지만, 앞으로 서적들로 가득 차게 될 거라고 부인이 설명했다.


본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물건이 있느냐고 묻자 리퍼트 부인은 하비브 하우스 앞 잔디밭을 지키고 있는 해태 석상 두 개를 꼽았다. 부인은 불운과 화재를 물리친다는 이 전설의 동물 석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관저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게 저 석상들이에요.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압도적인 매력이 있죠.”


이성은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lee.s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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