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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수령이 인민에게, 청춘들 사랑 고백 땐 “좋아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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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25면

북한 연인들이 과거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신체적 접촉을 꺼렸지만 요즘은 어깨에 손을 얹거나(1) 공원에서 데이트(2)를 즐기기도 한다. 국가 명절에 열리는 야외 무도회장(3)에서도 사랑이 싹튼다. [사진 DPRK360, 노동신문]

연애만큼 설레는 일이 없다. 20대를 추억하면 가장 좋았을 때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다. 반대로 가장 아픈 순간은 그 사람과 헤어질 때다. 그만큼 연애는 20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북한의 청춘 남녀들도 마찬가지다. 함경북도 회령탄광기계공장에 근무했던 탈북민 김현수씨는 “올해 42살인데 부인과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믿을 사람들이 없겠지만 한 때 북한 사람들은 당국이 지정해 준 사람과 결혼하거나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북한의 청춘 남녀들은 서로의 옆구리를 어떻게 찌를까. 북한도 한국처럼 친구 등으로부터 소개를 받거나(소개팅)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면서(헌팅) 시작한다. 북한 남성들은 소개팅 보다 헌팅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표적인 장소는 대동강변이다. 특히 꽃피는 봄이면 여성들이 꽃 구경을 하러 대동강변에 많이 나온다. 남성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던지는 말이 이것이다. “동무들, 시간 좀 내줄 수 있습네까?” 1970~80년대 한국의 남성들이 지나가던 여성들에게 던지던 말과 비슷하다. 여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퇴짜를 놓을 경우는 “왜 그러십네까”하며 콧방귀를 뀌지만 마음에 들 경우는 못이기는 척 근처의 찻집(커피숍)으로 따라간다. 과거엔 찻집에서 주로 단물(주스), 얼음과자(아이스크림) 등이 인기였다. 최근에는 돈주(신흥 재벌)들이 운영하는 서구식 카페가 하나 둘씩 생기면서 원두를 즉석 로스팅하고 드립한 커피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커피는 당 간부 등 고위급의 연회에서나 마실 수 있던 음료로 대표적인 사치품으로 간주됐던 과거에 비하면 엄청 달라진 풍속도다.


대동강변 못지 않게 연애가 시작되는 장소가 무도회장이다. 부모들이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청춘 남녀들에게는 호기심의 장소다. 과거엔 각종 기념일이나 명절 등에 넓은 광장이나 강당에서 무도회장이 운영됐지만 최근엔 건물 지하 등에서 영업하는 상설 서구식 디스코텍까지 등장했다고 탈북민들은 전했다.


“동무들, 시간 좀 내 줄 수 있습네까?” 무도회장은 휘황찬란한 조명 밑에서 춤을 추며 젊음을 발산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연인을 만나기에 안성맞춤이다. 평양 순안저울공장에서 근무했던 탈북민 김철씨는 “무도회장이 여성을 사귀기에 최고였죠. 퇴짜를 맞더라도 덜 창피했고요. 그리고 아직도 북한 남성들은 ‘백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생각이 강해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면 집요하게 접근한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연애를 시작해 친해지게 되면 고급식당·영화관·공원·놀이동산 등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데이트 비용은 대부분 남성들이 부담한다. 간혹 여성이 먼저 데이트를 신청할 경우는 여성이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를 들 수 있다. 김경희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 동기인 장성택에게 먼저 접근했다. 당시 장성택은 노래와 춤에 능했고 아코디언 연주도 수준급이어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장성택을 김경희가 ‘찜’했던 것이다. 저돌적인 김경희의 ‘공세’에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던 김일성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평양방직기계공장에서 근무했던 탈북민 최애경씨는 “연애의 초반기는 단고기(개고기)집 등 고기 집을 피해요. 고기를 뜯는 모습을 남성에게 보여주면 민망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평양에서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끄는 곳은 2012년 7월 준공한 능라인민유원지이다. 김성혁 능라인민유원지 관리소 지배인은 조총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조국’과의 인터뷰에서 “하루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방학이 되면 입장객의 90%가 청춘 남녀들이 차지한다”고 밝혔다. 유원지 놀이 장소 가운데 능라입체율동영화관(3차원 입체영화관)이 연인들에게 최고 인기다. 여성들이 무서운 장면을 보고 놀라면서 남성들에게 안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평균 3~4분 정도의 영화이지만 서먹서먹한 연인들이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장소다. 유람선 ‘대동강호’도 연인들이 자주 찾는다. 대동강호는 2013년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40여 분 동안 대동강 주변의 야경을 감상하면서 사랑을 키울 수 있다.


지방에선 평양에 있는 이런 데이트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최근 들어 각 지역 마다 연인들끼리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신종 업종이 생겨나고 있다. 돈만 주면 집을 통째로 빌릴 수 있는 것은 물론 국가가 운영하는 목욕탕까지 빌려주는 곳이 있다. 데이트를 하다가 덜컥 혼전 임신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피임기구가 흔하지 않아서다.

‘뜨거움의 상징’으로 라이터 선물북한의 연인들은 과거에 공개된 장소에서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과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장면이 주변 사람들에게 목격되면 그 여성은 다른 남성과 결혼하기가 어려웠다. 주변에서 “저 여성 동무는 망가졌다”고 색안경을 쓰고 보기 때문이다. 최애경씨는 “연애 시절 몰래 손을 잡고 걸어 다니다가도 사람들이 다가오면 얼른 손을 놓았다가 지나가면 다시 잡았다”며 웃었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모습은 예삿일이다. 김정은이 대놓고 부인 이설주와 팔짱을 낀 모습들이 신문·TV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북한의 연인들은 그들만의 의미 있는 날을 서로 챙겨준다. 예를 들면 생일, 100일 등을 기억해 선물을 주고 받는다. 함경북도 청진광산금속대학을 다녔던 탈북민 이성우씨는 “다른 날은 몰라도 서로의 생일은 아주 잘 챙겨주는 편”이라며 “남자는 시계선물을, 여자는 벨트·라이터를 주로 선물한다”고 말했다. 라이터는 남자가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뜨거운 사랑’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어 선물로 많이 준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영상물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남자가 여자에게 꽃다발이나 화장품 등을 선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부유층 자녀들은 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래도 최근 연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휴대전화다. 현재 북한 내 휴대전화 대수는 370만대(국가정보원 추정)에 달할 정도로 보급이 크게 늘고 있다. 남성이 휴대전화를 사 줄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여성들에게 인기 최고다. 제품의 종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아이폰은 1700 달러, 중국 부품 등을 조립한 북한산 스마트폰은 100 달러 정도다. 여성들도 휴대전화를 사 줄 수 있는 남성을 잡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쌍꺼풀 수술이 성행한 지 이미 오래 됐고, 화장품·성형수술에도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북한 연인들은 ‘사랑해’라는 말을 거의 주고 받지 않는다. 북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수령이 인민들에게만 사용하는 단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좋아해’라는 말을 사용한다.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청혼을 할 경우도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말보다 ‘너희 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가자’로 대신한다. 청혼은 공원 등 데이트장소에서 조용하게 속삭이듯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군 고위 간부의 자제들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부모들의 중매로 연애를 시작한다. 고위 간부들은 사돈이 될 집안의 배경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윗감이나 며느릿감을 고르는데 매우 신중한 편이다. 사회적 위상이나 경제적 위상이 좋은 집과 사돈을 맺으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중매에 나서는 ‘마담 뚜’까지 등장했다. 중계비가 따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적게는 100~200 달러에서 많게는 1000달러까지 건네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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