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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아프리카니스트

중앙선데이

입력

아프리카니스트는 아프리카 전문가를 칭하는 말이다. 위키피디아는 여기에 더해 반(反)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주의를 뜻하기도 하고, 아프리카 출신들이 미국 등 이민 사회에 미친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아프리카니스트는 단순한 아프리카 전문가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특수성에서 연유된 정서를 공감하고 아프리카에 대해 지식 이상의 열정을 가진 전문가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니스트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한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풍부한 천연자원과 어느 대륙보다 빠른 연 5%대의 최근 경제성장, 중산층의 확대, 젊은 노동력 공급원으로서의 중요성 등이 꼽힌다.


그러나 ‘떠오르는 아프리카’를 확신케 하는 변화 중 보다 주목되는 것은 아프리카의 정치 민주화 바람이다. 2015년에는 아프리카 10여 개국에서 선거가 있었고 아프리카의 제1경제 대국인 나이지리아에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으며, 잠비아·탄자니아 등에서도 공정한 선거가 진행돼 민주주의 정착 추세가 완연했다. 특히 코트디부아르·부르키나파소는 최근 내전, 쿠데타를 겪은 나라들이어서 평화적 선거의 의미가 더 컸다.


미국의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54개국 중 절반에 가까운 국가들을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자유 국가가 2~3개국에 불과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1960년대 독립 이후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가 겪은 정치 불안과 경제 침체 등이 위정자들의 독재와 부패, 즉 악정(惡政) 때문이라는 절실한 각성 때문이다.


아프리카 지역 기구의 변천이 이런 각성을 잘 반영한다. 1963년 발족한 아프리카단결기구(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는 식민통치 불식과 독립국가 확립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내정 불간섭을 강조하며 서로의 독재 관행을 용인함으로써 사실상 독재자의 클럽으로 전락했었다. 그러나 2003년 아프리카단결기구를 대체 출범한 아프리카연합(AU·African Union)은 쿠데타 등 비민주적 정권 교체에 대해서는 AU의 내정간섭 권한까지 규정하면서 민주주의 확립으로 국민을 위한 선정(善政·good governance)을 보장한다는 의식을 확고히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기대를 거는 또 다른 이유는 인구다. 아프리카 인구는 현재 11억 명이지만 2050년까지는 20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인구 중 24세 미만 젊은 층 비율이 중국·인도에 비해서도 높고, 2050년에는 아프리카가 세계 젊은 노동력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는 대륙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인구 증가는 양날의 칼이다. 교육받지 못하고 취업 기회를 잃은 젊은 인구는 범죄와 ISIS류 테러리즘의 온상으로서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인구 증가는 맬서스의 예측과 달리 산업혁명 이래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해 왔다. 인구 정체가 이미 시작된 일본이 20년 넘게 경제 침체를 겪었고 비슷한 인구 구조의 EU 경제권이 퇴조하는 현상은 성장의 필요조건으로서 인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반면 이민 유입이 상대적으로 개방된 미국은 견고한 인구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성장을 다시 주도하고 있다. 중국 성장 둔화 예측의 유력한 근거로 인구의 급격한 노령화 전망이 꼽히기도 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국이 개도국으로서 유일하게 경제 선진화,정치 민주화를 이루어 OECD 회원국으로 진입한 경험을 배우고자 한다.식민지 역사를 뼈저리게 경험한 아프리카 제국들은 중국의 진출을일단 환영하면서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불안해하고, 위협이 되기보다는서로 공감할 수 있는 파트너인 한국과의 협력을 선호한다.


아프리카의 도약 가능성은 중국·일본·인도·터키 등 아프리카에 대한 높은 관심과 활발한 진출 동향에서도 입증된다. 중국·인도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례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무역과 투자를 늘려 왔다. 중국·인도의 대아프리카 교역은 각각 2000억 달러, 720억 달러로 두 나라 전체 무역액의 5%와 8%에 달한다.


특히 중국은 인프라 건설을 대가로 자원을 확보한다는 목표로 아프리카의 석유·가스 등 자원 부국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상주하고 있는 중국인만 1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도 약 200만의 인도인 디아스포라(diaspora)를 기반으로 아프리카 진출에 열심이고, 일본은 1993년부터 도쿄 아프리카 개발 국제회의를 5년마다 개최하며 대아프리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상 외교도 아프리카의 중요성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새로운 인식을 반영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각각 2013년, 2015년 아프리카를 방문했고 일본 아베 총리는 2014년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특히 중국은 20년째 외교장관의 취임 첫 순방지를 아프리카로 하는 관행을 세울 정도로 아프리카 관계에 공을 들였다.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관계 심화를 위한 노력도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한·아프리카 포럼을 3년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남아공·콩고 등 아프리카를 순방한 바 있다. 2015년에도 한국의 외교장관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아프리카를 잘 모르고 빈곤·질병·분쟁 등 아프리카 관련 고정관념을 불식하지 못해 아프리카를 기회의 땅보다는 위험한 지역으로 꺼리는 경향이 크다. 경제 지표상 한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경쟁국들에 많이 뒤처져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교역액은 연 약 180억 달러로 한국 전체 무역액의 1.6%에 불과하고, 대아프리카 투자는 전체 해외투자의 1.3% 정도에 머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예외 없이 한국과의 경제 협력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국이 개도국으로서 유일하게 경제 선진화, 정치 민주화를 이루어 OECD 회원국으로 진입한 경험을 배우고자 한다. 식민지 역사를 뼈저리게 경험한 아프리카 제국들은 중국의 진출을 일단 환영하면서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불안해하고, 위협이 되기보다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파트너인 한국과의 협력을 선호한다.


젊은 노동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젊은 아프리카(Young Africa)’가 빛을 발하려면 제조업을 통해 고용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국 경제개발 경험의 진가가 여기서 발휘된다. 한국은 공업화 수출 전략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대표 사례다. 특히 경제정책 수행이나 산업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갖고 아프리카 개도국들을 돕는 봉사를 하고자 하는 인력은 한국만이 갖추고 있다.


더욱이 KOICA의 자원봉사 대원들이나 NGO, 종교단체들의 해외 봉사자 상당수가 아프리카에 파견돼 그 지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뿐 아니라 열정을 키우면서 아프리카니스트의 산실이 되고 있는 것도 한·아프리카 관계 개척에 소중한 자산이다. 지난해 출범한 아프리카미래전략센터에서 일하면서 의외로 한국에 아프리카니스트 인적 자산이 풍부하고 이들의 역량을 결집하면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대아프리카 관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식민주의의 대표적 피해자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지닌 데다, 아직도 하루 소득 1.25달러 이하의 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곳이다. 기업 활동도 일방적 진출보다는 상생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세계 대부분이 인구 등 성장 동력이 소진됐거나 여타 잠재 성장력이 포화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젊은 아프리카’는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자원, 그리고 낙후돼 있는 만큼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추고 민주화와 선정(善政)의 확산으로 사회 효율을 높여가며 블루오션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만이 갖는 경제개발 경험이나 아프리카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감대, 그리고 아프리카니스트적 열정과 인적 자산이 아프리카를 주목하는 정책으로 어우러진다면 아프리카는 분명 한국에 상생 협력과 성장의 동반자로서, 또 한국 경제의 블루오션으로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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