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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Special] 베이징의 적색경보와 파리 기후변화협약의 모순, 환경오염 방지와 성장, 두 마리 토끼 잡기 나선 중국

중앙선데이

입력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외곽 르부르제의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개막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 앉아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우리가 먼지가 될지 모른다.”지난해 11월 30일 홍콩 언론 밍바오(明報)는 “어떤 사람에게는 스모그도 예술적 영감이 된다”면서 한 무명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이 예술가는 지난해 7월부터 100일 동안 미세한 입자를 빨아들일 수 있는 진공청소기를 들고 베이징 톈안먼 광장 등 번화가를 비롯해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채집한 스모그를 압착시켜 ‘먼지 벽돌’을 만들었다. 실제 벽돌 크기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자동차와 화학공장으로 둘러싸인 곳이 돼버렸다. 이렇게 계속 먼지를 만들어내고 자원을 소진하다가는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이 먼지가 될지도 모른다.”


에이펙 블루와 ‘스모그’ 크리스마스2014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을 전후해 베이징은 청명한 하늘의 맑은 날이 계속됐다. 중국은 이 정상회의를 앞두고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공장과 시민들의 난방 사용을 닷새간 중단하는 등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당시 ‘에이펙 블루(APEC 藍)’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뒤 베이징의 하늘은 다시 희뿌연 스모그로 뒤덮였다.


급기야 올해 중국은 ‘스모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베이징은 12월 25일 주황색(오렌지색) 경보를 발령했다. 스모그 위험단계 두 번째 등급이지만, 실제 측정된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이미 12월 들어 두 번이나 발령된 일등급의 적색 경보보다 높았다.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은 이날 오후 초미세먼지 오염지수가 최악 수준인 ‘위험’을 넘어 561(㎍/㎥)까지 치솟았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기준치로 제시한 초미세먼지 농도는 1㎥당 25㎍(마이크로그램)이며, 중국의 환경기준은 이보다 높은 35㎍이다. 관영 매체들에 따르면 12월 25일 베이징 국제공항에서는 가시거리가 50m도 안 되어 시계불량으로 300편 이상의 항공기가 결항했다.


중국은 대기오염 경보를 총 4단계로 나눠 발령하고 있다. ‘심각한 오염’ 수준이 하루(24시간) 지속되면 4단계인 남색 경보를, 2일 지속되면 황색, 3일은 주황색 경보를 발령하며 3일 이상 심각한 대기오염이 이어질 경우 최고 등급인 적색 경보를 내린다.올겨울 들어 중국 정부와 베이징시는 스모그와 전쟁을 치렀다. 베이징은 12월 들어 적색 경보를 두 차례 발령했다. 12월 8일 오전 7시부터 10일 낮 12시까지, 그리고 10여 일 만인 18일부터 22일까지다. 적색 경보가 내려진 것은 2013년 10월에 경보시스템이 베이징시에 도입된 이래 처음이었다. 심각한 수준의 스모그는 동북지방을 포함해 연말까지 기승을 부렸다.

중국 롄윈강의 원자로. 원자력발전은 현재 석탄 가격과 비슷한 유일한 청정 에너지다. [shutterstock]

중국에서는 11월부터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시민의 불안과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신경보(新京報)는 11월 10일 중국 동북부와 베이징 등 화북지방의 대기오염 상황이 최근 며칠간 최악의 수준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선 11월 8일 초미세먼지 농도가 1400을 돌파하기도 했다. 11월 30일 베이징에서는 1000에 육박할 정도였다.


스모그가 극도로 악화된 건 기상이변이 겹쳤기 때문이다. 중국 환경보호부는 11월 초 엘니뇨로 대기오염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놨다. 엘니뇨로 바람과 비가 예년보다 줄면서 석탄을 사용하는 도시 지역의 난방 배기가스가 다른 곳으로 퍼지지 못했다. 도시는 적막했고, 사람들은 침울했다. 공기청정기를 찾는 소비자가 부쩍 는 건 그렇다 해도 콘돔 판매가 크게 증가한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스모그로 인한 기형아 출산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이징의 빨간불과 파리의 파란불어느 때보다 심각한 스모그와의 전쟁을 치를 즈음 시진핑 국가주석은 12월 1일 파리에서 개막된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1)에 참석하고 있었다. 중국이 키를 쥔 회의였다. 중국이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202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다른 나라에도 그렇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당사국총회 특별정상회의 연설에서 그런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0% 이상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시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긴밀히 협력했다. 2014년 11월 베이징 APEC 회의와 지난 9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중·미 정상 기후변화 공동성명’을 발표했으며, 12월 11일 총회 폐막을 하루 앞두고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전화 통화로 파리 총회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에 힘입어 12월 15일 기후변화협약 총회 196개 회원국은 파리기후협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셰전화(解振華) 유엔기후협약 중국 정부 대표단 단장은 12월 23일 베이징의 내외신 브리핑에서 “중국 전문가들의 평가 및 분석에 따르면 기후변화 행동 목표가 실현될 경우 스모그 오염원은 42% 감소된다”고 밝혔다. 베이징의 적색 경보가 파리의 녹색 신호를 만들어낸 셈이다.


환경오염의 중심 석탄스모그는 중국 현대화의 결과다. 중국은 3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공장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고 제품을 생산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누적돼 있지만 석탄은 그 중심에 있다. 일반 먼지와 더불어 초미세먼지의 3대 오염물질인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을 뿜어대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4일 국가환경보호부가 극심한 스모그 사태와 관련해 밝힌 조사결과도 석탄 연소와 철강 등 중화학공장의 배출로 생성된 대기오염 물질이 스모그의 주요 원인이었다. 석탄은 중국 에너지 소비의 66.5%(2013년 기준)를 차지한다. 세계 평균과 비교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전력 생산의 경우 80% 에 육박한다.


중국이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석탄의 비중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2020년까지 비화석 연료의 비중을 15%로 높이고 2030년까지는 그 두 배인 30%(재생에너지 비중이 20%)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풍력·태양열·바이오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로의 대체는 그 비중이 2~3%에 불과한 현실에 비춰 한계가 있다. 중국이 석탄 위주 에너지 소비 구조를 단기간 내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환경오염 대책의 중심축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석탄 의존의 화력발전을 원전 건설 확대로 대체하는 것이다. 원자력은 대기오염 감소 차원에서도 유리하다. 안전성 논란에도 전문가들은 “원자력발전은 현재 석탄 가격과 비슷한 유일한 청정에너지”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이 가동하고 있는 원전은 25기(2만1603㎿, 2015년 10월 기준)로 세계 5위지만, 세계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14%대인 반면 중국은 2% 전후다. 이를 2020년까지 불과 5년 만에 2.5배 수준인 5만8000㎿ 규모로 늘린다는 것이다. 12월 5일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이후에도 매년 1000억~1200억 위안(20조원 규모)을 투자해 2030년까지 중국이 110기의 원자로를 가동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하나는 화석 에너지의 환경오염 배출을 줄이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통해 청정 에너지로서의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석탄가스화(Coal Gasification) 기술이다. 원리는 석탄을 불완전 연소시켜 CO와 H2를 주성분으로 하는 합성가스(Syngas)를 제조한 후, 가스정제 공정으로 황화합물을 제거하고 합성 발전 공정을 이용해 합성천연가스(SNG·Synthetic Natural Gas), 석탄액화석유(CTL·Coal to Liquid), 화학 기초제품(메탄올·에틸렌 등) 및 전력을 생산(석탄가스화 복합발전·Integrated Gasification Combined Cycle)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전 세계적으로 14기(5기 상업운전, 2014년 현재)가 운전 중일 뿐이다(한국은 2016년 태안 실증로 완공). 중국은 110여 개의 석탄화학 프로젝트(2013년 기준)를 추진해 왔으며,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은 것도 8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속철, 원전 기술의 자립과 건설 속도에서 보여준 것처럼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 석탄가스화 기술을 도입해 매년 10여 기 이상씩 건설하면서 설계와 제작의 상당부분을 자체 기술로 흡수해 왔다. 지난해엔 모두 300억 달러 규모의 몽골 석탄가스화 사업에도 합의했다. 몽골의 투브 등 4곳의 갈탄광산에 연간 160억㎥ 상당의 SNG 생산능력을 갖춘 4개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 잡겠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월 10일 “중국이 환경오염 방지와 경제 성장이라는 두 갈림길에서 큰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스모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실물경기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최근 중국 경제 상황이 성장률 하락을 감내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2015년 10월 30일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는 제13차 5개년(2016~2020년) 규획을 확정하면서 그 딜레마를 돌파하겠다는 방침을 보여주고 있다. 5중전회는 환경보호로 대표되는 ‘생태문명’ 건설 목표를 경제발전 규획에 사상 처음으로 명시했으며, 녹색성장 등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서비스업 위주 3차산업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하는 새로운 발전개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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