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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Ringer 인문산책] 숱한 전쟁과 종교를 투영한 문학, 타 문화 존중과 흡수 통한 중층적 구조 이뤄

중앙선데이

입력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이슬람사원. 실크로드의 교차로였던 중앙아시아에서는 여러 문화가 더해지며 중층적인 문화 구조가 형성됐다. [shutter stock]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리적인 특징부터 파악해야 한다.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은 시르다리야(Sir dariya)와 아무다리야(Amu dariya)라는 두 강 사이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다. 고대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를 가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이자 교차로가 이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중앙이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기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아랍과 페르시아인들은 특히 아무다리야 너머로 가고 싶어 했다. 이곳이 얼마나 살기 좋았는지를 말해주는 내용들이 이들의 역사책에 기록돼 있기도 하다. 고대 페르시아의 아키메네스 왕조부터 우리가 잘 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고 아랍의 이슬람 제국들이 이곳을 침략하고 장기간 지배했다. 이들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을 지배하면서 자신의 문화와 문학을 이식했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저술된 문학작품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 지역에서 배출한 이슬람 문학의 문호들도 많다. 반면 현재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지역은 유목민들이 살았던 곳으로, 유목문화와 구전문학이 발전했다. 이곳에서 문학을 서술했던 이들은 결국 농경 및 유목을 바탕으로 생활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다양한 종교가 문학의 힘중앙아시아의 문학적 주제를 형성하는 두 개의 큰 기둥은 종교와 전쟁이다.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이자 교차로였던 이 지역을 지배한 사람들의 종교는 무척이나 다양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며, 불교도 발전했다. 그리고 이슬람이 침략하고 지배하면서 이곳의 주요 종교가 됐다. 이후 러시아인들에 의해 러시아정교도 들어왔다. 유목사회 역시 이슬람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조상들이 믿었던 민간신앙도 유지되어 내려왔다. 문학작품은 종교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아랍 제국이 조로아스터교를 말살시킨 탓에 조로아스터교를 바탕으로 서술된 문학작품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만이 전해질 뿐이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현재 알려진 바는 없다. 인도의 쿠샨 왕조가 중앙아시아에 이식시킨 불교가 중앙아시아의 문학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된 자료를 찾기도 어렵다.이슬람의 영향 속에서 서술된 작품들만이 중앙아시아 문학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곳에서 무수히 전개됐던 전쟁은 종교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문학작품에도 수없이 투영되고 있다. 특히 유목사회는 삶 자체가 전쟁이었기 때문에 구전문학에 나타나는 주제도 대부분 전쟁일 수밖에 없었다. 영웅에 대한 구전 서사시가 발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존 문화 존중, 우월성 없는 문화 퇴조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실크로드의 교차로를 지배했던 다양한 민족이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하려 했을 때, 누구도 이 지역에 남아 있던 다른 민족의 문화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랍 제국이 이곳을 침략하고 조로아스터교를 말살시켰을 당시에는 이슬람의 문화가 중앙아시아에 제대로 이식되지 못했고 발전되지도 않았다. 아랍이 페르시아의 사만 왕조에 의해 물러난 후에야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중앙아시아 문화는 중층적 구조로 형성돼 갔다. 조로아스터교 위에 불교가, 그 위에 이슬람이 겹쳐지면서 문화가 형성되고 발전돼 간 것이다. 문화들 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자유롭게 진행되면서 살아남은 부분은 피지배 문화라도 유지됐으며, 지배 문화라도 우월성이 없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문학도 마찬가지다.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제정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시기에 이곳 지식인들은 무슬림이었지만 과감하게 서양의 선진화된 과학과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 이를 자디드(Jadid) 운동이라고 한다. 이들은 중앙아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슬람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 무슬림을 계몽시키기 위해 문학작품들도 서술됐다. 대부분 이슬람 사회가 가진 사회적 문제들을 밝혀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후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소비에트 혁명의 영향을 받아 중앙아시아도 사회주의화됐다. 이곳 지식인은 대부분 공산주의자가 됐다.중요한 것은 지배자인 러시아인들이 강제로 자신의 문화를 중앙아시아인에게 이식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식민통치의 방법으로 이슬람과 현지의 전통문화를 탄압하기는 했지만 이에 따른 반발은 크지 않았다. 이곳의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형성된 문화구조의 중층적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91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한 후 이슬람이 부활했지만, 아랍과 이란의 이슬람과는 다르게 세속적 종교활동을 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근현대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자디드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고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 공산주의자가 됐다. 이들은 러시아의 사회주의 및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들이 획일적으로 묘사했던 봉건적 러시아 사회의 부조리와 소비에트 국가를 발전시키자는 주제에서 벗어나 유목·이슬람·혁명·전통 등 다양한 소재를 동원해 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를 발전시키는 고민을 작품에 쏟아냈다. 무슬림이 이슬람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문화의 중층적 구조와 문화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지켜보면서 성장한 중앙아시아의 작가들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이 있었다.결과적으로 중앙아시아 문학의 토양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양성에서 출발한다. 그것도 역사를 움직였던 엄청난 문화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지역 작품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이 더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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