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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s&Analysis] 땜질식 처방에 흔들리는 시장,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력 커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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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혁·개방 초기였던 1980년대 초. 지도자들 사이에 경제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대토론이 벌어졌다. 문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추스르고, 경제 재건을 위한 새 시스템을 찾아야 하는 과제였다. 이때 나온 용어 중 하나가 ‘조롱(鳥籠)경제’였다. “새(鳥)를 새장(籠)에 가둬 키우듯 시장도 국가의 틀 속에서 운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덩샤오핑의 동료 혁명 전사이자 경제 전문가였던 천윈(陳雲)이 제기한 경제 철학이었다. 그는 “새장이 없으면 새는 날아가버린다”며 “시장도 국가의 틀을 벗어나면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가 시장을 틀어쥐고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그로부터 35년여가 흐른 지금, 중국 경제는 많이 성장했다. 불과 5000억 위안에 그쳤던 국내총생산은 67조 위안으로 약 130배 늘었고, 수출도 140배 정도 증가했다.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이 중국 개혁·개방의 성적표다. 스스로 다국적 국제기구를 창설하는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새는 새장에 가둬 키워야 한다’는 사고는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시장은 국가 경제 운용의 한 툴(tool·수단)에 불과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정부의 통제와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게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시장이 갖는 위상이다. 연초 불거진 증시 폭락, 위안화 가치 폭락 역시 이 같은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다.


‘정책시(政策市)’우선 증시를 보자. 중국 증시는 ‘정책시’ 특성을 갖는다. 시장 수급보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주가가 출렁인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올 초 상하이 주가가 폭락한 데는 여러 요인이 거론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1월 8일로 예정됐던 ‘대주주 매각 금지’ 해제 조치 때문이었다. 이 조치는 지난해 6~8월 벌어졌던 주가 폭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증권 당국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향후 6개월 동안 대주주(5% 이상의 지분 보유) 지분 매각 금지’ 조치를 내렸다. 시한으로 정했던 6개월이 끝나는 날이 바로 1월 8일이었다.새해 연휴 기간 내내 위쳇·웨이보 등 SNS에 대주주 매각 금지 해제와 관련된 얘기가 나돌았다. 모두들 대주주가 대거 매각에 나서면 주가가 또다시 폭락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장이 열리자마자 매물이 쏟아진 이유다. 여기에 서킷브레이크 제도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결국 지난해 여름 정부의 땜질식 주가 부양 조치가 또 다른 폭락 장세를 불러온 것이다. 홍콩의 시장 전문가들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이 점점 더 정부의 관리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어설프게 시장에 개입할수록 시장은 반발력을 키우게 된다”고 평가한다.당국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안정세를 되찾는가 싶던 상하이 주가는 7일 또다시 서킷브레이크가 발동되는 등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다. 환율 문제가 컸다. 지난해 말부터 고시 환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해 왔던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이 새해 들어 인하 폭을 넓힌 것이다. 당연히 외국 자본 유출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가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야 할 만큼 경제가 좋지 않다는 불안심리도 시장에 영향을 줬다. 환율시장과 주식시장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출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역외 환율시장의 투기꾼들환율시장 불안 역시 근본적으로는 정부와 시장의 게임에서 비롯됐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홍콩의 역외시장(off-shore)이었다. 역내시장(on-shore)은 중국인민은행의 고시로 환율이 결정되는 데 반해 역외시장은 수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 메커니즘이 통하는 곳이다. 홍콩 참여자들은 중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위안화를 내릴 것으로 판단해 지난해 말부터 위안화 매각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일의 경우 홍콩시장 환율은 달러당 6.718위안이었던 데 비해 역내 고시환율은 6.5646위안이었다. 그 사이를 일부 투기꾼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홍콩에서 위안화를 사 대륙에서 파는 투기에 나선 것이다. 인민은행이 역외 시장 눈치를 봐야 할 상황에 몰린 것이다. 결국 인민은행은 11일 보유 달러를 풀어 홍콩시장에서 위안화를 사들인 다음에야 역내·역외 환율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좀 더 멀리 보면 통화정책의 실패와도 연관된 문제다. 중국 정부는 2014년 11월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여섯 차례나 금리를 내렸다. 그러나 성과가 없었다. 금리 인하, 기업의 부채 상환 부담 감소, 기업의 신규 투자 확대, 고용 증가, 소비 확대, 경제 성장이라는 금리 순 사이클이 나타나지 않았다.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중국 정부는 보다 직접적으로 경기부양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보다 효과가 큰 환율에 손을 댄 이유다. 특히 위안화의 SDR 편입이 결정된 지난해 11월 이후에는 노골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걸 홍콩시장의 플레이어들이 간파했고, 홍콩 역외시장에서 대거 위안화 매각에 나서면서 이번 사태가 터졌다.연초 주식 외환 시장의 충격은 곧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기가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식·외환·채권 등 금융시장은 점점 더 정부 정책이 먹히지 않고 있다. 중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현재 약 2700개에 달하고 있다. 거래량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큰 증시를 두고 있는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시장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공산당 당원 수(약 8500만 명)보다 많은 1억 명의 개인투자가들이 달려들면서 주식시장은 투전판으로 변하고 있다(거래의 80%가 개인투자가들 몫이다). 증시가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주가 따로, 경제 따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금융 독점이 기관투자가의 발전을 막았고, 이런 상황에서 기형적으로 커진 개인 주도의 증시는 정부의 작은 정책 실패에도 출렁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새장을 뚫고 가려는 새’중국 경제가 서방 자본주의 시스템에 노출되면서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이 홍콩에 위안화 역외 금융시장을 조성한 건 2010년,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회심의 한 수였다. 중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홍콩 은행 간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위안화는 하루 50억~8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크지 않은 규모다. 그럼에도 역내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금융시장이 해외의 작은 변수로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방증한다. 지금은 위안화 국제화의 초기 단계다. 국제화가 깊어질수록 외부 압력은 더 크게 국내 시장을 옥죌 수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홍콩시장에서 달러를 풀어 위안화를 사들이면서 이번 위기를 수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시장에 홍콩 환율시장이 하나 더 추가됐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홍콩 환율시장이 두고두고 인민은행을 괴롭힐 것이라는 얘기다.중국은 지금도 시장을 정부 통제에 넣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시진핑 주석은 정부와 시장이 서로 대치되는 게 아닌 협력하는 존재라는 ‘양수합력론(兩手和力論)’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그건 제조업 시대의 얘기다. 시장이 국제 영역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첨단 금융분야로 확대되면서 정부 간섭에 대한 시장의 저항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속성이 그렇다. 새장에 갇혀 있던 새는 이제 그물을 뚫고 나갈 기세다. 그물을 걷어낼 것인가, 아니면 구멍 난 그물을 적당히 깁고 때울 것인가. 아쉽게도 중국의 선택은 후자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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