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오호츠크해는 호수 같은 바다 국가·종족 뒤섞이는 문명의 회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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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동쪽에 거대한 두 개의 호수 같은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의외로 모른다. 한국·일본·러시아 등으로 둘러싸인 동해, 캄차카와 쿠릴열도·홋카이도·사할린 등으로 둘러싸인 오호츠크해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오호츠크는 가을철 일기예보에나 등장할 뿐이다.


 남한이라는 섬 논리에서 벗어나 북방 바다로 나아가는 인식 전환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환동해 북방전략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러 나라와 종족들로 둘러싸인 ‘문명의 회랑(回廊)’이기 때문이다. 이 회랑을 둘러싸고 남북한과 일본·러시아·중국, 그리고 몽골이 상호 교섭하며 문명사적 파장을 일으키며 교호(交互)해왔다.


 오늘날 부산·포항·동해·속초 등 동해안 도시들은 저마다 환동해 시대를 부르짖는다. 해양수산개발원(KMI)이 중앙SUNDAY와 기획한 아무르강·오호츠크해·레나강 탐사는 한반도가 나가야 할 북방 미래를 예감하는, 어쩌면 새벽을 여는 발걸음이다.

아무르강 하구에 살았던 니브흐족의 우리 장승을 닮은 신상과 샤먼의 북.

 우리들의 북방 상한선이 만주에 머무른다면 그 정점에 아무르강이 있다. 러시아 남방전략의 최대 한계선이 다롄까지 이어진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내뻗었다면 그 정점은 하얼빈이다. 탐사대는 하얼빈 헤이룽장(黑龍江)성 박물관에서 발해 유물의 진수와 금·요·여진족 등으로 상징되는 제(諸) 민족의 발자취를 만났다. 아라사와 청이 끈질기게 다투었고, 근래에는 1950년대까지 국경 분쟁을 일으킨 곳이 바로 아무르강이다. 정작 아무르강역은 청나라도 아라사도 아닌 소수민족의 본향이었다.


 1858년 중국·러시아 간 국경조약인 아이훈조약이 체결된 헤이허(黑河) 건너편의 블라고베셴스크는 실카강이 합류하는 전략 거점으로 중국과 직면하고 있는 국경도시다. 탐사대의 노선은 상류의 블라고베셴스크로부터 중류의 하바롭스크, 그리고 강 하구의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이하 니콜라옙스크)에 이르렀다. 니콜라옙스크는 한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곳이라 손님 접대가 융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작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니콜라옙스크에는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아무르 강변에 살았던 울치족의 신상(작은 사진). 우리의 솟대와 같다. [하바롭스크박물관]

 아무르강 하구에 타타르해협이 있고, 사할린이 대척점에 있다. 아무르강 하구는 니브흐를 비롯한 다양한 민족이 살던 ‘인종의 용광로’였다. 사할린과 홋카이도로 넘어가던 산단 무역의 길목이기도 했다. 아무르강은 동북아 민족의 젖줄로 기능해왔으며, 쑹화(松花)강 등의 수많은 지류로 연결되고 북방 세계를 적시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 거대 강물은 동해로 흘러들어가 바다와 강은 끝내 한 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장엄한 진리를 보여준다.


 17세기 차르의 시베리아 정복은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었다. 야쿠츠크에서 동쪽으로 720㎞ 떨어진 태평양 연안에 오호츠크 요새가 세워진다. 이 요새는 향후 200여 년간 태평양 연안에서 러시아의 중요한 기지가 됐다. 러시아 북태평양 극동 경영의 최종 거점이 캄차카라면, 오호츠크는 베이스캠프였다고 할까.


 한때 탐험가들이 모여들고 고기 떼로 영화를 구가하던 오호츠크는 역사적 임무를 끝내고 기울어졌으며, 후배 도시 마가단에 번성을 넘겨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데 오호츠크시는 몰락했어도 오호츠크해란 이름을 남겼다. 육로로 외부와 일절 연결되지 않는 감옥과도 같은 오호츠크시를 벗어나자면 화물과 사람을 한꺼번에 싣고 버스 규격과 비슷한 44인승 프로펠러 ‘마을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사하공화국 수도인 야쿠츠크는 내륙으로 분류되지만 알단강을 통해 오호츠크해에 접근할 수 있고, 레나강을 통해 북극해와 만난다. 터키계 유목민이 원주민 에벤크·에벤스·유카기르 등과 혼혈을 이루었기에 우리와 동일한 몽고반점의 몽골리언이다.


 야쿠츠크가 그 옛날 모피 집산지였다면 오늘날은 가스·다이아몬드·금이 쏟아지는 자원의 보고(寶庫)답다. 시베리아 최다 민족 구성원을 거느린 사하족이지만 러시아의 강한 힘에 둘러싸인 ‘맹지(盲地) 국가’다. ‘공화국’ 명칭은 얻었지만 내부 사정은 만만치 않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망상(網狀) 구조로 구축되며, 북극권에서는 레나강까지 발을 뻗는 중이다. 중국 자본이 이곳 북극권까지 흘러들어온다. 강을 통해 북극해로 그대로 나아가서 유럽 가는 항로를 염두에 두는 중이다. 탐사대 루트는 레나 강변의 80㎞ 길이의 거대 돌기둥 군락을 보트로 이동해 정상까지 오르는 데서 멈췄다. 북극해 항로 개척이 다가오는 미래로 우리 곁에 훌쩍 와 있으니, 조만간 다음 탐사를 조직해 북극까지 그대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이 추진 중인 신(新) 실크로드 전략이다. 중앙아시아와 신장자치구·산시성·네이멍구·지린성·헤이룽장성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一帶)와 광저우·선전·상하이·칭다오·다롄 등 연안 도시에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뜻한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