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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안전벨트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1호 18면


크리스마스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캐롤이 들려오니 연말 분위기가 제격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실제 종교적 축일로 지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지난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있는 사람 중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를 합치면 약 27.6% 정도다. 얼추 4명에 한 명 정도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해 종교가 없다는 인구 비율이 56.1%로, 종교가 있는 사람보다 10%포인트 이상 많다는 것이다. 1985년 조사시작 이후 종교가 없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처음이다.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2005년에 비해 약 9%늘었는데, 특히 20대가 65%, 10대가 62%로 매우 높았다. 10~20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0대 청소년기에 종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아제는 인지발달이론에서 이 시기를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지는 시기로 보았다. 그저 즐거워서 다니던 절이고 교회였는데, 10대가 되면서 어느 순간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교리에 대한 철학적 궁금증이 생긴다. 진짜 종교적 믿음을 갖게 되고, 이는 삶의 가치관과 정체성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 시기에 중등반이나 고등반 활동에서 얻게 되는 사회적 활동의 경험, 공동체적 감정은 이후의 사회적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종교가 있다면 자녀들은 별 생각 없이 자신도 같은 종교를 갖고 있다고 대답하기 쉽다. 그런데 이번 통계에서 10대와 20대의 종교없음이 부모보다 많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부모는 종교가 있는데, 자식들은 없다는 것이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아이들을 키운 결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의 교육 압력이 종교 영역까지 침범한 결과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까지야 부모를 따라 종교활동을 하지만, 최소한 중·고교 때부터는 일요일에 학원가느라, 밀린 잠을 자느라 종교활동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교가 가치관의 가운데에 자리잡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실제 한 조사를 보면 한 개신교 교단의 8000여 개 교회 중 중·고등부가 따로 없는 곳이 약 48%에 달했다. 그 결과가 바로 현재의 무종교가 대세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은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갈 개인에게는 썩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보면 자아가 굳건해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내는 사람이라면 굳이 종교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강하지는 못하다. 갈수록 세상의 경쟁은 심해지고, 환경은 급변하고, 그 안에서 낙오하고 실패하는 일은 많아질 것이다. 이때 평소 종교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훨씬 잘 극복하고 버텨낼 수 있다. 그러나 종교라는 꽤 쓸모있는 안전벨트를 경험해보지 못한 채 자라난 사람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험한 세상을 겪고 있다. 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세상에서 믿을 구석 하나 줄어들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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