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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오마주를 넘은 러브레터! ‘라라랜드’의 모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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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다미엔 차젤레(31) 감독은 세 번째 장편 ‘라라랜드’(12월 7일 개봉)에서 자신을 매혹시켰던 클래식 뮤지컬을 현대적 시공간에 풀어놓는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에게 영감을 준 뮤지컬영화

이것은 단순한 오마주나 패러디가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이며 업그레이드다. 과연 차젤레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가 새롭게 보여 준 뮤지컬영화는 무엇일까?

1. 뮤지컬에 대한 첫사랑, ‘언제나 맑음’

차젤레 감독의 뮤지컬 장르에 대한 사랑은 의외로 늦게 시작됐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 그는 아방가르드 필름에 매료됐고, 그때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천사 같은 춤사위를 보여 주는 작품을 접한다. “193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에 실험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후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한 차젤레 감독에게 뮤지컬 장르에 대한 애정은 깊어졌다.

특히 ‘언제나 맑음’(1955)에 빠져들었다. 스탠리 도넨 감독과 진 켈리 감독이 공동 연출하고 켈리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세 남자에 대한 뮤지컬 코미디. 희망과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전형적 ‘MGM표 뮤지컬’이었고 ‘라라랜드’처럼 2.55: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로 제작됐다. 이후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차젤레 감독은 뮤지컬 장르로 방향을 정했고, 대학 동기 저스틴 허위츠(두 사람은 같은 록 밴드 멤버)는 차젤레 감독의 데뷔작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2009)와 ‘위플래쉬’(2014) 그리고 ‘라라랜드’까지 음악을 맡았다.

2. 프렌치 뮤지컬의 거장, 자크 드미 감독

‘라라랜드’를 준비하면서 차젤레 감독은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들을 보았다. ‘사랑은 비를 타고’(1952, 진 켈리·스탠리 도넨 감독) ‘톱 햇’(1935, 마크 샌드리치 감독) ‘스윙 타임’(1936, 조지 스티븐스 감독) ‘밴드 웨건’(1953, 빈센트 미넬리 감독)…. 그리고 프랑스 감독 자크 드미의 뮤지컬영화 두 편이 있었다. ‘셰르부르의 우산’(1964)과 ‘로슈포르의 연인들’(1967)이었다. 드미 감독은 ‘라라랜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다.

특히 페인트통을 들이부은 듯한 강렬한 원색 감각은, 드미 감독의 뮤지컬영화에서 온 것이다. 게다가 엇갈린 사랑의 모티브는 ‘셰르부르의 우산’과 일맥상통한다. 몇몇 영화평론가가 ‘라라랜드’를 ‘셰르부르의 우산’에 대한 오마주로 보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드미 감독이 1950년대 할리우드의 테크니컬러(Technicolor) 뮤지컬에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강렬한 색채의 뮤지컬영화가 프랑스를 거쳐 거의 반세기만에 할리우드에서 재현된 셈이다.

3.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의 댄스신

할리우드 뮤지컬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를 빼놓을 수 없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진저와 프레드’(1986)라는 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로, 그들은 뮤지컬 장르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고, 두 사람이 춤추는 장면은 지금 봐도 황홀하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가 춤추는 장면은, 로저스와 아스테어가 펼친 왈츠 장면에 대한 독창적 오마주. 갑자기 공중 부양한 두 사람은 천문관의 우주 공간 같은 배경 안으로 들어가 우아한 왈츠를 춘다.

특히 ‘라라랜드’는 로저스와 아스테어의 뮤지컬영화가 지닌 이야기 전개 방식까지 닮았다. ‘톱 햇’의 댄스신이 대표적 예. 이 영화에서 아스테어는 비가 오는 가운데 로저스에게 춤을 권한다. 이때 ‘이즌 디스 어 러블리 데이 투 겟 카웃 인 더 레인(Isn’t This a Lovely Day to Get Caught in the Rain)?’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그들의 댄스가 시작된다. 춤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현실에서 갑작스레 댄스 판타지로 이어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건, 로저스와 아스테어의 뮤지컬영화에서 두드러지는 전개 방식. ‘라라랜드’의 천문대 장면도 그 맥락 위에 있다.

4. 버스비 버클리 스타일

할리우드 사상 최고의 안무가이자 놀라운 기하학적 미장센을 보여 준 버스비 버클리 감독의 영향력 역시 ‘라라랜드’에서 느낄 수 있다. 버클리 감독의 장기라면 부감 숏으로 내려다보는 가운데, 그 아래에서 댄서들이 원형을 그리며 만들어 내는 동선이다. 미아와 룸메이트들이 파티에 가기 전 도로에서 선보이는 댄스는 버클리 감독의 스타일을 재현한 대표적 장면이다. ‘라라랜드’의 수영장 파티 장면은 버클리 감독이 안무를 맡은 ‘풋라이트 퍼레이드’(1933, 로이드 베이컨 감독)의 수중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카메라워크와 댄스 동선이 완벽하게 맞아들어가는 ‘라라랜드’ 오프닝신 역시 버클리 감독의 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5. ‘사랑은 비를 타고’

세바스찬과 미아가, 미국 LA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에서 춤추는 장면이 시작되기 전. 세바스찬은 한 손으로 가로등을 잡고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인다. 이 장면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면, 아마도 당신은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본 것임에 틀림없다. 진 켈리의 에너제틱한 ‘우중 댄스’가 바로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라라랜드’와 ‘사랑은 비를 타고’가 이런 사소한 공통점만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두 편 모두 ‘백스테이지 뮤지컬’이다. 1952년에 나온 ‘사랑은 비를 타고’는 무성영화에서 토키영화(Talkie Film·음성 대사가 들어간 유성영화)로 바뀌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일종의 노스탤지어 뮤지컬. ‘라라랜드’는 배우 지망생 미아를 통해 쇼 비즈니스의 이면을 보여 준다. 흥미로운 건 ‘라라랜드’가, ‘사랑은 비를 타고’가 나온 고전 뮤지컬 시대의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 그런 점에서 혹자는 ‘라라랜드’를 “21세기의 ‘사랑은 비를 타고’”라 평한다. 차이가 있다면 라이언 고슬링이나 엠마 스톤에겐, 켈리나 데비 레이놀즈가 지녔던 과잉된 활력이 없다는 것. 그 대신 그들은 꿈과 운명과 삶의 결정에 대한 드라마를 펼쳐 나간다.

6. 빈센트 미넬리 뮤지컬

후반부에 숨 가쁘게 전개되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시퀀스에서 그들은 수많은 공간을 거쳐 간다. 그중 한 곳이 영화 촬영장. 이 이국적인 장소는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뮤지컬영화를 연상시킨다. 자크 드미 감독만큼이나 미넬리 감독도 ‘라라랜드’의 색감에 영향을 미쳤는데, 의상감독 메리 조프리스는 “‘셰르부르의 우산’ ‘스윙 타임’과 함께 미넬리 감독의 ‘밴드 웨건’이 ‘라라랜드’ 의상에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라라랜드’에서 차젤레 감독은 고전 뮤지컬의 시각적 요소(컬러·세트·의상)를 끌어오고, 여기에 요즘의 카메라워크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이 장르를 경신시킨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러한 스타일은, 관객에게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의 황금기를 맛보게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 인물의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7. 제롬 로빈스의 안무

‘라라랜드’는 LA 외곽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오프닝 댄스 시퀀스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이 시퀀스는 수많은 댄서들이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정확히 합이 맞는 ‘칼군무’를 보여 주는데, 이것은 ‘춤추는 대뉴욕’(1949, 스탠리 도넨·진 켈리 감독)을 거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제롬 로빈스·로버트 와이즈 감독)에서 정점에 올랐던 제롬 로빈스의 안무를 연상시킨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역동성. ‘라라랜드’는 댄서뿐 아니라 카메라도 마치 춤추는 듯 움직이며, 두 요소의 만남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차젤레 감독의 데뷔작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

‘위플래쉬’로 전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 차젤레 감독은 2009년에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라는 장편 데뷔작을 만들었다. “존 카사베츠 감독의 흑백 미학, 장 뤽 고다르 감독의 ‘국외자들’(1964),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셰르부르의 우산’을 결합해 놓은 듯하다”는 극찬을 들었던 작품으로, ‘차젤레 감독표 음악영화’의 시작이다. 주인공 이름인 ‘가이(Guy)’는 ‘셰르부르의 우산’의 주인공 ‘기이(Guy)’에 대한 오마주 같은 작품으로, 재즈 트럼펫 주자인 가이(제이슨 팔머)와 연인 매들린(데지레 가르시아)의 이야기다. 뮤지컬 장르로 만들고 싶었던 차젤레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완벽한 뮤지컬은 아니지만 ‘하나의 뮤지컬’”이라고 평가하는데, 그 소망은 ‘라라랜드’로 이어졌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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