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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한국 고대사 교수가 중국 고대사로 전공을 바꾸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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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한국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의 수는 더욱 적다. 그런 점에서 미국 하버드 대학의 마크 E. 바잉턴 교수(사진)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1980년대 주한미군으로 한국을 처음 찾은 그는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한국 고대사를 공부했다. 2006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Early Korea ProjectㆍEKP)를 통해 영어로 된 한국 고대사 서적을 내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해외의 한국 고대사 연구를 진흥했다.

그런데 그가 올해로 한국 고대사 연구를 끝낸다. 내년에는 중국 고대사 전공으로 바꾼다고 했다. 왜 그럴까. 그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EKP를 정말 그만둘 것인가. 그 이유는.
“EKP의 종료 말고는 달리 선택할 게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는 더 이상 EKP를 지원할 수 없게 됐다. 재정적 지원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하버드 대학에서 EKP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내 손을 떠났다. 내가 EKP를 2006년 설립했을 때 하버드 대학은 한국학 연구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한국학연구소와 한국 측의 도움이 없었다면 EKP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14년까지 EKP는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한국의 ‘사이비역사(pseudohistory)’ 집단이 일부 정치인의 도움을 받아 국회에 압력을 넣어 EKP의 재정적 지원을 끊었다. 더 이상 미국에서 한국 고대사를 공부하기 힘들게 됐다. 현재 미국에서 중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며 지원도 많다. 나는 중국 고대사와 고고학도 공부했다. 그래서 그 분야로 옮길 것이다. 이미 하버드 대학에서 행정적 절차를 밟고 있다. 다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한국 고대사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EKP에 대한 지원을 끊은 결정은 매우 근시안적인 것이다.”
사이비역사학이 뭔가.
“내가 사이비역사학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진짜 역사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비역사학은 결론을 먼저 내고 그에 따라 데이터를 선택하고 해석을 왜곡한다. 역사학은 관련 자료를 고려한 뒤 신뢰성을 평가하고 그 자료에 가장 적합한 설명을 찾는 학문이다. 또 다른 학자들의 평가를 받는다.”

바잉턴 교수는 2013년 『한국고대사에서의 한(漢)군현』(사진)을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낙랑군의 위치가 현재의 평양이었다고 썼다. 그러자 재야 사학계는 EKP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대변하는 사업이라고 공격했다. 이들은 국회와 감사원을 동원해 EKP에 대한 지원을 '세금낭비'로 몰아버렸다는 게 바잉턴 교수의 주장이다. 결국 한국교류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는 EKP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올해로 EKP에 대한 지원이 종료된다.

당신은 『한국고대사에서의 한(漢)군현』이란 책에서 낙랑군의 위치가 현재의 평양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기록과 고고학 연구에 근거해 평양이라고 썼다. 이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학자들도 공유하고 있는 사항이다. 북한 학자들만 동의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나는 낙랑군의 지리적 세력권을 다른 학자보다 좀 더 좁게 봤다.”
‘한국 고대사는 위대했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다른 나라에서도 사이비역사가들이 있다. 그들은 역사를 과장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믿는다. 대부분의 경우 사이비역사는 사회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사이비역사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속이는 건 다른 문제다. 만일 정부가 사이비역사학의 견해를 지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한다면 더 위험해진다. 일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사이비역사학을 공식 사관(史觀)으로 삼았다. 그 결과는 한국과 만주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이었고, 결국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겠지만 사이비역사학의 잠재적 위험성을 분명히 알려준다. 북한도 극단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사이비역사학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 세계의 학자들은 북한 역사학계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은 고구려나 독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국제 관계에서 민감한 주제다. 그렇지만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는 학문적으로 균형이 잡혀있고 사실(史實)에 충실하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인정을 받는다. 만일 한국 정부가 갑자기 노골적인 사이비역사학을 강요한다면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는 국제적으로 또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만일 동북아역사재단이 낙랑군의 위치문제에서 신뢰를 잃게 된다면 독도나 위안부에 대해 믿는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다. ‘한국의 위대한 고대사’는 결국 한국에 대한 신뢰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국 고대사를 올바르게 보면 한국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 요소들이 많다. 사실과 동떨어져서 위대한 역사를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다.”
한국의 역사학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학의 극복이다. 그만큼 민족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식민지 경험은 한민족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광복 이후 민족주의는 한국을 재건하는 데 필요했다. 결국 정도의 문제다. 민족주의가 언제나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민족주의는 사람들을 결속시키고 공통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사람들을, 특히 정부를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극단적 민족주의 열정에 빠지게 만든다면 재앙이 일어난다. 역사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됐다.”
중국의 동북공정(Northeast Project)에 대한 견해는.
“동북공정은 중국에서 동북 지방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정보를 얻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정부 정책을 위한 것이고, 학문 연구는 그 다음이었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이뤄진 고구려 연구나 다른 주제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비전문가들이 수행했다. 일부 학자도 있었지만, 중국 공산당원이나 학문적 훈련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북공정은 시작부터 학문적 가치가 부족하다. 학문이 아니라 정치적 시도로 봐야한다. 한국에선 아직도 동북공정을 오해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정치적 의제이며, 심지어 중국 학자들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다수 중국 학자들이 침묵을 하고 있지만 속으론 동북공정 연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북공정은 고대사가 어떻게 정치화(politicized)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사이비역사학자들은 동북공정이라는 허깨비(boogeyman)를 이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과 다르면 동북공정이나 식민사학이라고 공격한다. 동북공정에선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동북공정 때문에 낙랑군의 위치가 평양이 된 건 아니다. 역사와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라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한국에선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해 논란이 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도 역사의 정치화와 관련이 있다.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정부가 어떻게 역사를 써야하는지 결정하는 걸 경계한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 근대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할을 표백(whitewash)하길 원한다. 더 나아가 나는 사이비역사학자들이 국정교과서의 고대사 기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의심한다. 한국 정부는 역사 서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지시했다. 이는 학문적 과정을 모두 생략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결론을 먼저 내린다면 그건 역사가 아니다. 선전선동(propaganda)에 불과하다. 정부가 역사 교과서에 개입하는 건 대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전체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엔 자유로운 탐구와 학문의 자유가 이길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오랜 투쟁이 있을 수도 있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은 2020년까지 『캠브리지 한국사 전집』을 출판할 예정이다. 캠브리지 대학의 역사 시리즈는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역사 개설서다. 일본사와 중국사는 수십 년전에 나왔지만 한국사는 이번에 집필이 시작됐다. 바잉턴 교수는 한국 고대사 책임 편집자를 맡았다.

『캠브리지 한국사 전집』에서 고대사 부분은 어떻게 쓸 것인가.
“캠브리지 대학의 역사 시리즈는 영어권 학자들을 위해 펴내는 책이다. 학계에서 표준으로 인정되는 방법론에 의해서 한국 고대사를 쓸 것이다. 비판적 평가를 거친 사료나 고고학적 결과에만 기반을 두며, 자료가 없는 내용은 쓰지 않겠다. ‘민족사’나 ‘위서(僞書)’, 사이비역사학은 모두 배제된다. 언어와 상관없이 모든 연구는 참고로 사용될 수 있다. 한국 고대사는 역사적 기록이 단편적이고 드물다. 그렇다고 그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우지 않겠다. 또 한국 고대사는 매우 역동적이고 빠르게 발전하는 학문 분야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그는 한국 문법책을 사서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혼자 번역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나.
“굉장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이유 하나 때문에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1980년대 대구에서 주한 미 공군으로 복무했다. 그때 한국 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친숙해졌고, 한국의 고대(古代)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됐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을 여러번 방문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고대사와 고고학이 재밌어졌다. 왜 한국 고대사를 좋아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원래 고대사에 끌리도록 태어났는지 모른다. 아마도 천성이 아닌가 싶다. 영어로 된 연구가 드문 분야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도전을 즐겼다. 한국 고대사는 매우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분야이기도 하다.”
외국인이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게 힘들지 않은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서 한국 고대사에 흥미를 가진 연구자가 있다 하더라도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선뜻 연구를 하길 꺼리게 된다. 우선 언어문제.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한문 공부가 기본이다. 둘째로 미국 대학원에서 한국 고대사를 가르칠 교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공부를 마치더라도 교수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EKP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영어권 연구자를 돕는 역할도 수행했다.”
장래 역사학도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오늘날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반(反)지성주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진실’은 종종 합리성보다 감성에 기반을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불완전하더라도 합리성을 추구하면서 만들어졌다. 지금 합리성을 포기하면 인간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잘못은 우리를 잘못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과거를 충실하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중요한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역사가들은 비판적 사고의 훈련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늘 자신의 결론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표준이라고 여겨지는 방법론에 달려 있다. 이런 방법론과 결별한다면 역사를 연구하는 게 아니다. 바로 사이비역사다. 사이비역사는 역사 연구로 포장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올바른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으며 과거를 정확하게 재구성하려고도 노력하지 않는다. 역사학도의 일은 사회적으로 중요하며, 또 유용한 연구를 하려면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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