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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SNS에 올리면 하루 100억 매출 …‘마케팅 황제’된 왕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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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애경 초청으로 서울 명동을 방문한 왕훙 첸지웬(21·왼쪽)과 첸시(24). 왕훙이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한 장은 수많은 팔로어에게 바로 닿기에 직접적인 광고 효과를 낸다. [사진 강정현 기자]

지난달 애경 초청으로 서울 명동을 방문한 왕훙 첸지웬(21·왼쪽)과 첸시(24). 왕훙이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한 장은 수많은 팔로어에게 바로 닿기에 직접적인 광고 효과를 낸다. [사진 강정현 기자]

왕훙(網紅). ‘인터넷(網絡)에서 인기 있는 사람(紅人)’을 뜻하는 왕뤄훙런(網絡紅人)의 줄임말이다. 국내에서 중국 왕훙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지난 9월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국내외 70여 개 브랜드를 수입·유통하는 매출 1조원 규모의 대기업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이하 신세계)이 왕훙 단 한 명과 맺은 일대일 총판계약이다. 신세계는 내년 1월부터 중국 전역에 수출 예정인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의 팩트 판매 권리를 팔로어 250만 명을 둔 이 왕훙 1인에게 전부 맡겼다. 신세계 고위 관계자는 “중국 진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던 차에 왕훙과 연이 닿아 계약하게 됐다”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IT기업의 확인을 받는 등 숱한 검증을 거쳤다”고 말했다. 한국 대기업이 중국의 한 개인을 독점 계약 파트너로 삼을 만큼 왕훙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단적으로 드러내는 셈이다.

 [SNS 캡처]

[SNS 캡처]

실제로 왕훙이 입는 옷이나 먹는 음식, 바르는 화장품 등은 그들을 따르는 팔로어에게는 강력한 ‘생활지침’이 된다. 자오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왕훙은 수백만 팔로어를 거느린 수퍼스타이면서도 콧대 높은 연예인과 달리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언니·오빠처럼 친근한 존재”라며 “SNS를 이용해 팔로어와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한 덕분에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왕훙경제’ 급성장 명암
옷·음식·화장품 소비 영향력 막강
마스크팩 올리자 8만개 금방 동나
신세계, 왕훙 1인과 판권 독점계약
한국 옷 디자인 똑같이 베껴 팔거나
계약 일방적 파기, 사기 등 피해 늘어
마케팅 활용 전에 옥석 가리기 중요

중국 현지에서는 ‘왕훙경제’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알리바바에 따르면 왕훙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규모는 10조 4000억원에 달한다. 중국 영화산업 규모(7조 4300억원)를 뛰어넘은 수치다. 패션모델 출신의 왕훙 장다이는 하루에 108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또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닌 왕훙 파피장의 동영상에 들어갈 광고는 무려 39억원에 낙찰됐다. 왕훙 동영상 하나가 미국 수퍼볼처럼 기업들이 비싼 돈을 주고라도 너도나도 들어가려는 콘텐트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기업 행사에 초청받은 왕훙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국의 수십, 수백만 팔로어에게 현장 중계를 한다. [사진 우상조 기자]

기업 행사에 초청받은 왕훙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국의 수십, 수백만 팔로어에게 현장 중계를 한다. [사진 우상조 기자]

국내 기업들이 왕훙을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로 초대해 극진하게 왕훙을 모시는 곳은 기업에서 관공서, 병원에 이르기까지 많다. 가령 지난 7월 서울 강남구의 원진성형외과는 왕훙의 타오바오(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중국 최대 오픈마켓) 계정을 통해 실시간으로 마스크팩 판매를 진행했다. 한 장에 4000원 하는 마스크팩 8만 장이 1시간 만에 전부 동났다. 왕훙 마케팅을 기획한 무역업자 하륜씨는 “왕훙을 통한 중국시장 공략은 생각보다 절차가 간단하다”며 “점점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간파한 강남구는 왕훙 10명을 초청해 강남거리 팸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 관광객을 좀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다. 김혜선 강남구청 관광진흥과 주무관은 “왕훙이 SNS에 올리는 여행·음식 사진 등은 수백만 명의 중국인에게 바로 닿는 직접적인 광고가 된다”며 “중국에서 왕훙의 영향력은 연예인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왕훙 전문기획사 속속 등장

중국에서는 갈수록 위상이 커지는 왕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획사까지 등장했다. 타오바오 본사가 있는 항저우가 본거지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획사는 연예인 발굴하듯 왕훙 연습생을 모집해 체계적으로 훈련시킨다. 연예기획 시스템처럼 이미 활발하게 활동 중인 왕훙을 영입한 후 수익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패션모델 출신 왕훙 장다이. 자신의 쇼핑몰을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통해 하루 108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SNS 캡처]

패션모델 출신 왕훙 장다이. 자신의 쇼핑몰을 통해 하루 108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SNS 캡처]

발굴할 땐 오디션을 통해 일종의 연습생 개념인 예비 왕훙을 선발하고 2개월간 메이크업·몸매관리·스피치교육 등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1인 방송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다. 어느 정도 훈련되면 코디네이터와 디자이너, 촬영기사 등 전담 관리인력과 함께 SNS를 운영하고 직접 쇼핑몰을 운영한다. 이렇게 키워진 왕훙은 대략 자신이 올린 매출의 10~20%를 분배받는다.

왕훙이라고 다 똑같은 왕훙이 아니다. 팬 수가 연예인 인기 척도이듯 왕훙은 일단 팔로어 수가 영향력을 말해준다. 팔로어 30만 명이 넘는 왕훙은 기획사들의 ‘영입 대상’이다. 이들은 단순히 취미처럼 SNS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쇼핑몰 운영 등을 통해 나름의 수익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획사는 이들에게 안정적인 제품 생산망과 유통 관리망을 제공하고 거기서 나온 수익의 일부를 분배받는다. 현재 타오바오 매출 1위부터 10위까지의 왕훙 쇼핑몰은 기획사 관리를 받는 곳이다. 막대한 주문 물량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획사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왕훙 파피장의 개인방송 삽입광고 경매 현장. 낙찰가는 무려 39억원이었다. [SNS 캡처]

왕훙 파피장의 개인방송 삽입광고 경매 현장. 낙찰가는 무려 39억원이었다. [SNS 캡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왕훙을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국내 기업은 왕훙 옥석 가리기에 집중한다. 제대로 활용하면 소위 대박을 칠 수 있지만 껍데기뿐인 왕훙에게 당해 손해보는 경우도 적지 않은 탓이다. 한국에서 왕훙 마케팅을 가장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아모레퍼시픽 측은 “제대로 된 기준표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200만 팔로어 이상은 A급으로 분류된다”며 “같이 일해 본 후 이미 효과가 입증된 왕훙을 다시 부르거나 왕훙 사이의 커뮤니티를 통해 평판을 조사해서 신중하게 활용한다”고 말했다. 중국 마케팅 전문업체 2ab 김남영 실장은 “몸값의 가장 큰 기준은 팔로어 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왕훙이 올린 게시물 하나하나에 달린 댓글 수와 좋아요 수까지 매일매일 모니터링해 왕훙의 시장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훙경제의 어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왕훙경제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있다. 왕훙의 ‘짝퉁’ 비즈니스가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명 디자이너는 “공들여 디자인해 내놓은 옷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타오바오에서 10배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걸 목격했다”며 “왕훙 때문에 한국 디자이너 밥그릇을 빼앗길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일부 왕훙은 한국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중국 공장에 보내 똑같은 디자인의 짝퉁을 만들어낸다. 한국의류산업협회 관계자는 “왕훙 관련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왕훙으로 인한 짝퉁 피해를 보았다는 업체가 점점 늘어난다”며 “중국 내 상표법이 국내처럼 엄격하지 않다는 점을 일부 왕훙이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기계약 피해 사례도 많다. 지난 10월 총판계약을 맺은 왕훙이 갑자기 연락두절 상태가 돼버렸다는 무역업자 박모씨는 “제품 2만 개를 만들어 오면 책임지고 팔아주겠다는 왕훙 말만 믿고 화장품을 대량 생산했다가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재고만 떠안게 됐다”며 “왕훙을 통해 중국 시장에 들어가면 매출 대박을 터뜨릴 확률이 높다는 얘기만 믿은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례가 빈번하기에 계약서가 별다른 안전장치가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강민주 KOTRA 상하이무역관 과장은 “왕훙을 통해 중국시장에 진출하려면 직접 계약을 체결하기보다는 일부 수수료를 부담하더라도 왕훙 전문 중계업체를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왕훙, 환상을 좇기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다.

글=김민관·윤경희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사진=강정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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