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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직격 인터뷰

“AI로 한국 닭이 다 죽는다…지휘탑도 없는 이게 나라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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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룡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3500곳 양계농가 대표 오세을 양계협회장

국내에서 키우는 닭은 1억6500만 마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지난달 16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이후 살처분된 닭은 22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역대 최악이다. 이런 확산세가 계속되면 5000만 마리가 살처분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오세을 양계협회장은 “그랬다가는 상상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는데 정부가 그렇게 할 시스템을 구축해 놓지 않아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계란을 수입하면 된다고 밝혔지만 그런 섣부른 얘기를 할 때가 아니고 현실성도 없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도 그에게는 국회·정부·양계농가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오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AI 대란은 국가 시스템의 부재라는 점에서 최근 개봉된 영화 ‘판도라’와 다를 바 없었다. ‘판도라’는 지진으로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는데도 대응 시스템 자체가 없고 공무원이 소극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 국민이 극도의 혼란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오 회장은 “제대로 된 대응체계가 없으니 정부는 지금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AI 발생 후 로드맵 없어
담당 공무원 2년마다 자리 옮겨
농식품부에는 전문가 전혀 없어
해마다 AI 재난 되풀이될 수밖에

전국 양계농가와 국회·정부를 오가며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는 오세을(69) 양계협회장. 그는 “닭과 계란은 우리 국민에게 가장 싸게 먹히는 단백질 공급원이고 없어선 안 될 식품원”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전국 양계농가와 국회·정부를 오가며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는 오세을(69) 양계협회장. 그는 “닭과 계란은 우리 국민에게 가장 싸게 먹히는 단백질 공급원이고 없어선 안 될 식품원”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가.
“이미 20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아이고! 이러다가는 (한국의 닭이) 거의 초토화될 것 같다. 농가들이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래도 사수하려고 한다. 2003년 AI가 처음 발생하고 14년 됐는데도 (정부가) 이러고 있다.”
왜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나.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로드맵이 하나도 없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14년 전 처음 발생했을 때 단계별 로드맵을 만들어 놨어야 했다. AI가 발생하면 바로 살처분해야 한다. 또 예방 차원에서 양계농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인허가를 비롯해 할 일이 많다. 그런데 AI 대응에 대한 계획이 하나도 없다. 해마다 땜빵식으로만 대응했다. 14년째 뒷북을 치면서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피해 보상으로 들어간 돈이 7000억원 가까이 된다.(※이와 별도로 최근 사태로 지급된 보상액이 1500억원을 벌써 넘었다.) 보상액은 보상액대로 들어가고 농가도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해마다 이러고 있는 거다.”
농식품부가 긴급행동지침(SOP)을 만들어놓지 않았나.
“있긴 있다. 네 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로 만들었다. 하지만 두루뭉술해서 아무 쓸모가 없다. 매뉴얼에는 각 단계를 올릴 때마다 ‘검토’한다고 돼 있다. 그러면 공무원이 단계마다 결정을 내려줘야 하는데 안 내린다. 그러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매뉴얼은 무용지물이고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거다. 일본은 총리실에서 바로 조치해 76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말았다. 추가 피해가 없다. 한국은 2000만 마리를 살처분할 때까지 허겁지겁하고 있다. 쓰지는 않더라도 비상시를 고려해 바이러스 백신 대책까지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없다. (백신은 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 축산정책이 백신 안 쓴다고 하다가 써서 효과 본 것이 많다. 돼지도 백신을 써서 구제역이 조용해졌고 닭티프스도 1990년대부터 써서 효과를 봤다.”
백신을 쓰면 수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나.
“수출은 포기해야 한다. 양계는 돈을 많이 벌 만한 일도 아니고 수출 경쟁력도 없다. 미국이나 브라질·태국은 수출을 많이 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AI가 발생한다. 지난해 50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지금은 다시 청정국이 됐다. 미국은 백신을 쓰지 않는다. 농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방역하기 좋아서다. 일본도 밀집지역이 많지 않아 방역하기 쉽다.”

일본은 철저한 방역시스템 갖춰
우리도 살처분·방역 속도 높이고
평소 오리농가 분리·수집센터 필요
국민 소비 많아 수입 감당 안 돼

한국은 밀집해 있어서 문제라는 건가.
“그렇다. 사육 농가가 몰려 있다. 많이 몰려 있는 포천에서 피해가 크지 않나. 둘째는 오리농가와 양계농가가 막 섞여 있는 것도 문제다. 오리는 닭보다 면역력이 강해 발견이 잘 안 된다. 충북 음성·진천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오리농가가 많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AI가 많이 발생하는지는 지도상에 다 나와 있다. 철새가 오는 해안가, 양계 밀집지역, 이런 걸 근거로 해 정부는 대응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
농식품부에 계속 대책을 요구해야겠다.
“이번 주 초 농식품부 차관이 AI 청정국에서 계란을 수입해오겠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기자가 대책을 물으니 갑자기 말했다지만 농식품부가 그걸 얘기하면 안 된다. 축산인들이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해 있는데, 나한테도 전화해서 난리치고 있다. 농식품부에는 제발 선진국처럼 대책과 예방 로드맵을 만들라고 말씀을 드렸다.”
수입이 왜 문제인가.
“농식품부는 방역에 신경 써야지 수입해 온다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수입은 기획재정부라든지 다른 쪽에서 해결할 문제다. 이렇게 어려운 형국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심스럽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리농가 분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오리와 닭 농가가 섞여 있어 문제다. 대개 AI는 오리에서 많이 발생한다. 사육환경이 비위생적이고 더구나 잡식성이다. 오리는 앉아 있는 야생조류나 다름없다. 오리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한다. 일본은 양계농가 근처에선 오리농장을 다 없앴다. 며칠 전 음성에 있는 양계농가를 만났는데 500m 근처 오리농장 때문에 멀쩡한 닭을 살처분했다.”
사람이 오가면서 옮기는 것도 문제 아닌가.
“그것도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빚어진 문제다. 전국 3500곳 양계농가 중 산란계 농장은 1200곳이다. 여기에 유통인이 3000명인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10년 전부터 양계학회에서 계란수집센터(GP)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정부는 꿈쩍도 안 한다. 이걸 만들어놓으면 상인들은 이곳으로 갈 것이다. 농가는 납품만 하면 된다. GP는 현재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곳만 몇 곳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은 없다. 일본도 가봤는데 거의 GP에서 한다. 이것도 하나의 예방 차원의 노력이다.”
얘기를 들을수록 정부 역할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그냥 내버려두니 해마다 이럴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은 해마다 해준다고 얘기는 하는데 식언(食言)이 되고 만다. 농식품부 직원들이 2년마다 교체되기 때문이다.(※우리나라 공무원은 거의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전문가가 없다. 국장이나 과장이 새로 오면 실컷 설명해주고 나면 훌쩍 다른 자리로 가버린다. 컨트롤타워가 없다. 적어도 축산 쪽만이라도 제발 전문직군을 뒀으면 좋겠다. 국가적인 재난이므로 전문가가 붙어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차관부터 사무관까지 마찬가지다. 주무관이 있지만 일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나라에 컨트롤타워가 없는 거다.”
세월호 사태를 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거점 소독소가 그렇다. 겨울철에 AI가 발생하니까 훈증 살포기를 써야 한다. 찬물로 소독하면 금방 추워서 얼어붙는다. 그것도 농식품부에 얘기했다. 빨리 설치하라고…. 신속하게 가동되는 살처분방역단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없다. AI가 발생하면 적어도 24시간 내에 살처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일주일씩, 열흘씩 늘어진다. 그러면 닭이 AI를 퍼뜨리는 거지 새가 퍼뜨리는 게 아닌 상황이 되는 거다. 그 부분도 농식품부에 강력히 얘기했다. 반응이 없다. 일본을 봐라. 일본은 발생하자마자 아베 신조 총리가 바로 비상 조치를 취했다. 심각 단계로 올려서 살처분에 들어갔고 76만 마리로 (AI 확산이) 끝났다.”
살처분 속도에도 문제가 있다니.
“우리나라는 공무원 노조가 반발해서 공무원이 안 하고 용역을 사서 하고 있는데 훈련도 안 돼 있다. 농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휘하는데 비능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살처분 요원도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라는 곳이 있으니 평소에는 일상적 활동을 하다가 비상시엔 동원체제를 갖춰야 하는데 이번에도 초동 방역이 늦어지면서 느슨한 살처분의 원인이 됐다. 이러니 AI 로드맵이 없다는 거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이란 얘기다. 평소에 오리농가 분리 노력도 안 했고.
“바로 그거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전쟁터에 들고 나갈 무기가 없는 상황이나 다름없다.”
역학조사도 충분히 안 돼 있을 것 같다.
“공항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축산업자만 검사를 한다. 일반인은 AI 검역 프리패스다. 최초 발생하고 13년이 흐르면서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잠복해 있다가 날씨가 추워지니까 확산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 백신도 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고 쓰면 안 된다는 학자로 양분돼 있다.”
식생활 타격이 우려된다.
“우리나라 양계산업이 붕괴되면 큰일이다. 우선 국민 먹거리 중 가장 싸게 먹히는 단백질이 닭이다. 또 우리 국민은 선진국 수준인 1인당 연간 280개의 계란을 먹는다. 그런데 계란이 거의 고갈되면 식생활 대란이 일어난다. 빵이나 가공식품 생산이 어려워지고 거기에 딸린 식구(종사자)도 많다. 서민 가계에서 차지하는 계란 의존도도 높다. 이런 우려에 당황해서 수입하겠다고 했는데 실수다.”
왜 그런가.
“큰일 난다. 산란계는 벌써 난리 아니냐. 더 이상 붕괴가 되면 무슨 수로 비행기로 수입해다 먹겠나. 수입해 오면 비싸서 식탁에 오를 수 없다. 요새는 올라서 30개 한 판에 7000~8000원이다. 매일 먹으니 배 타고는 못 온다. 계란은 무거운 물 덩어리인데, 화물 전용기라고 해도 그리 많이 못 싣는다. 하루에 4400만~4500만 개 생산되는데 그날 거의 다 소화환다. 프랑스 포도주 보졸레 누보 공수도 아니고 감당 못한다.”
불을 끌 방법이 없나.
“너무 막연하고 답답하다. 현재로선 거점소독이나 농가가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백신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확산세로 계산하면 내년 봄까지 5000만 마리가 없어지는데 그래선 식품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더 큰 문제는 그쯤 되면 AI 바이러스가 중국·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처럼 상재화(常在化)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현재 경상도·제주도는 아직 안 뚫렸는데 차단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 여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정부가 이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가.
“AI가 발생하면 적어도 대책본부장 정도는 대응 방안 ABCD를 다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는 게 없다. 2014년 초에도 AI가 발생했는데 즉각 대응에 나섰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못하다. 대통령이 탄핵됐으니 국정공백 영향도 있다고 봐야 한다.”
농가의 잘못은 없나.
“정부가 일정의 보상을 주지만 피해가 막심하다. 첫 번째는 한동안 못한다는 거다. 6개월을 못한다. 주변의 역학조사를 해서 판명이 나야 재개한다. 바이러스가 상존해 있으면 못한다. (보상금 바라고 살처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말이 되나. 발생 농가는 80%밖에 안 준다. 옆에 예방적 살처분은 100% 준다. 그런데 말이 6개월이지 1년 동안 못한다고 봐야 한다. 닭을 키워 알 낳으려면 1년이 걸려서다. 직원을 해고하면 다시 찾기 어렵다. 거의 외국인인데 한국 사람은 ‘3D’라고 해서 기피하고 있다.”

오세을은…

40년 넘게 닭을 키워 왔다. 현재 경기도 포천시에서 15만 마리를 사육한다. 철저히 예방해 온 덕분에 한 번도 AI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는 닭 사육장을 매일 소독하고 생석회를 듬뿍 뿌려 준다. 사육장의 근로자 7명 가운데 5명이 외국인이다. 국적은 네팔이다. 숙소를 제공하고 월급 150만~160만원을 주는데 4대 보험 다 들어 주고 퇴직금도 주고 있다. 2014년 3월 양계협회장에 당선돼 내년 2월까지 회장직을 수행한다. 현재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AI 대란 때문에 선거는 얘기도 안 나오고 있다.

글=김동호 논설위원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