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따라기

[이택희의 맛따라기] 대게 살 여무는 동해 죽변항…서울 부부의 여생 도전 ‘오첩반상’

중앙일보

입력 2016.12.23 00:01

업데이트 2016.12.28 09:44

지난 17일 오전 9시 58분에 진행된 죽변항의 올 시즌 두 번째 대게 위판. 420마리였는데 1마리 5890원에 팔렸다.

지난 17일 오전 9시 58분에 진행된 죽변항의 올 시즌 두 번째 대게 위판. 420마리였는데 1마리 5890원에 팔렸다.

울진 죽변의 겨울은 푸짐하다. 제철 맞은 대게를 필두로 맛이 꽉 찬 겨울 해산물이 어판장에 쏟아진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100년 넘은 하얀 등대 아래 두텁게 숲을 이룬 신의대 푸르름이 또한 그렇다. 대숲 언덕이 있어 동네 이름이 죽변이다. 나는 20년 가까이 대게 철이면 매년 한 번 이상 그곳에 오갔다. 시즌이 막 시작돼 지난 금요일(16일) 퇴근하면서 밤길을 달려 죽변에 갔다. 아침 경매 구경하고 맛 오른 물곰김치국 한 대접 먹고 궁금한 사람 만나 회포도 풀었다.

죽변은 역사가 깊다. 삼국시대에 이미 막강한 세력의 집단이 살고 있었다. 죽변으로 나를 이끈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에 그런 사연이 새겨있다. 524년(법흥왕 11) 세워진 이 비석은 1988년 세상에 나왔다. 객토를 하다가 논바닥에 박힌 돌을 뽑아 개울에 버렸는데 주민이 오가다 보니 돌에 글자가 많았다. 예사 돌이 아니라고 생각해 면사무소에 신고했다. 높이 204㎝의 비석에 새겨진 글은 문헌사료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그 해 11월 4일 국보로 지정됐다. 죽변 일대가 신라 땅이 된 뒤 중앙군이 출동해 평정할 만한 큰 사건이 있었다. 일을 해결한 뒤 모즉지매금왕(법흥왕)과 신료 13명이 어떤 조처를 하고, 점박이 소[斑牛]를 잡아 의식을 행했다. 관련자 책임을 물어 곤장 60·100대[杖六十·杖百] 등 형을 내리고 재발 않도록 지방민에게 알렸다. 이런 내용이 비석에서 판독됐다. 비석이 발견된 봉평리는 죽변 입구 마을이다.

2005년 12월 30일 오후 1시 51분 대게 위판이 진행되고 있는 죽변항 어판장. 연말 무렵이 되면서 대게 어획량이 많아졌다.

2005년 12월 30일 오후 1시 51분 대게 위판이 진행되고 있는 죽변항 어판장. 연말 무렵이 되면서 대게 어획량이 많아졌다.

법흥왕의 뒤를 이은 진흥왕은 죽변에 산성을 쌓았다. 현재 등대가 있는 언덕 둘레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토성이다. 수군 2000여 명이 주둔했다고 전하는 걸로 봐 아주 큰 해군기지였다. 일대가 대나무 밭으로 변해 성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으나 동쪽 바닷가 절벽을 따라 20년쯤 전까지 해안 순찰로로 사용되던 대숲 길은 신라시대에도 같은 용도의 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동해 해파랑길 27코스’의 한 구간이 되었다. 대숲 길 중간, 절벽 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검푸른 동해 바다는 ‘모니터 감옥’에 갇힌 현대인의 시선을 단박에 해방시키는 보약 같은 눈맛을 보여준다. 여행자는 잘 모르고 주민들만 알던 그 길을 나는 죽변에 갈 때마다 즐겼다. 쉼 없이 얼굴을 때리는 댓잎을 헤치며 호젓하게 홀로 걸었다. 하지만 요즘은 해파랑길을 연결하면서 나무 데크로 신작로 같은 길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죽변은 긴 역사만큼 먼 곳이다. 서울에서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로 전국에서 손꼽힌다. 기차도 비행기도 없고 오로지 차로 가야 한다. 몇 년 전에는 5시간쯤 걸렸다. 최근 제2영동고속도로가 뚫리고 동해안고속도로도 삼척 근덕(남삼척IC)까지 연장돼 막히지 않는 길을 부지런히 달렸더니 3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죽변항의 겨울 해산물은 대게·대구·물곰·오징어·문어·퉁수(고무꺽정이)·물레고둥(백골뱅이)과 각종 복어·가자미 등이다. 퉁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선인데 동해안 주민들에게는 친숙하다. 아주 못생긴 모습이 비슷해 ‘아귀 사촌’이라 불리는데 최근 울진 바다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도 해안에서는 ‘물망치’라 부른다. 제 이름이 ‘고무꺽정이’인 냉수성 어종이다. 울진 지역에서는 탕·찜·식해로 해 먹으며, 김장 속에도 넣는다고 한다.

1998년 논바닥에서 캐낸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그 해 11월 국보로 지정됐다.

1998년 논바닥에서 캐낸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그 해 11월 국보로 지정됐다.

울진·영덕의 대게 금어(禁漁)는 매년 12월 1일에 풀린다(구룡포 해역은 11월 1일). 하지만 12월 20일 이전 대게는 살이 별로 오르지 않았다. 올해는 12월 초 날씨가 좋지가 않아 지난 3일 쳐둔 그물을 걷지(현지 어민들은 ‘땡긴다’라고 한다) 못 하다가 16일 첫 배가 들어와 오전 10시에 500여 마리를 첫 위판했다. 1마리에 9200원에 팔렸다.

물곰을 손질하는 어민. 껍질을 벗겨서 버리고, 내장에서 알?간?위만 추린다. 검은 것은 수컷이고 분홍빛이 도는 건 암컷이다. 수컷이 더 맛있다고 한다.

물곰을 손질하는 어민. 껍질을 벗겨서 버리고, 내장에서 알·간·위만 추린다. 검은 것은 수컷이고 분홍빛이 도는 건 암컷이다. 수컷이 더 맛있다고 한다.

몸길이가 1m는 돼 보이는 물곰 활어. 까맣고 표면에 돌기가 있는 수컷이 곰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물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어민들은 말한다. 꼼치(물메기)와 계통은 같지만 다른 고기다.

몸길이가 1m는 돼 보이는 물곰 활어. 까맣고 표면에 돌기가 있는 수컷이 곰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물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어민들은 말한다. 꼼치(물메기)와 계통은 같지만 다른 고기다.

17일 오전 9시 50분 두 번째 대게 배의 위판이 열렸다. 29t급 대성호(선장 김종만·54)가 쳐둔 그물을 ‘땡겨’왔다. 대게를 뒤집어 어판장 바닥에 나란히 정렬시키고 입찰 참가자들은 가격을 써냈다. 420마리인데 1마리 당 5890원에 팔렸다. 대게를 정리하는 아주머니들은 연신 비규격품(어민 용어는 ‘비품’)을 골라 한쪽에 던져 놓았다. 다리가 2개 이상 떨어졌거나 물게(살이 차지 않고 배에 물이 찬 대게)를 따로 경매했다. 100여 마리 무더기에 40만원. 정상품은 음식점으로 가지만 비규격품은 주로 노점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사다가 관광객에게 싸게 판다고 한다.

12월 17일 죽변항 어판장 이모저모 

대문어 경매에서 입찰자들이 값을 쓰고 있다.

팔린 참복. 12월 들어 바다 날씨가 여러 날 좋지 않아 어황도 저조하다.
대구를 크기 별로 나눠 상자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입항한 채낚기 어선에서 바로 내린 오징어 상자.
활 오징어 위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부.
서울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바닷가에서는 흔한 회때기. 탕이나 식해로 먹는다. 정식 이름은 횟대.
요즘 죽변항에 맞이 들어오는 쥐치 활어.
할복한 대포알 한치가 얼마나 큰지 몸통이 세숫대야보다 큰 함지에 반도 들어가지 않는다.

죽변항의 경매는 대게 이외 모든 어획물은 오전 5시30분부터 배 들어오는 대로 수시로 열린다. 대게는 오전 9시 무렵 시작한다. 어민과 얘기하다 보니 대게 철 죽변항에서는 대게 아닌 모든 물고기를 ‘잡어’라고 칭했다. 대구·문어·물곰·복어 등 귀한 어종도 억울하지만 잡어일 뿐이다.

청어로 과매기를 말리고 있다.

청어로 과매기를 말리고 있다.

죽변에 갈 때마다 눈길을 끄는 콩나물. 모든 상인들이 콩나물을 가지런히 추리고 묶어서 판다.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 이유를 물으니 기원은 모르겠으나 이렇게 해놓지 않으면 사 가지 않는다고 했다. 콩나물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물병으로 눌러 둔다. 한 묶음 500원이었다.

죽변에 갈 때마다 눈길을 끄는 콩나물. 모든 상인들이 콩나물을 가지런히 추리고 묶어서 판다.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 이유를 물으니 기원은 모르겠으나 이렇게 해놓지 않으면 사 가지 않는다고 했다. 콩나물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물병으로 눌러 둔다. 한 묶음 500원이었다.

대게는 12월 말은 돼야 살이 오르고, 이때부터 벚꽃 필 때까지 맛이 좋다. 제철에 현지에 가서 먹으면 맛 좋고, 여행도 하고, 지역경제에 보탬도 돼 가장 권할 만하다. 하지만 시간이 안 돼 못 가는 사람도 먹을 길은 있다. 유통산업의 발달로 어민이나 도매상과 직거래로 싱싱한 해산물을 집에서 받아 해 먹을 수 있게 됐다. ▷죽변에서 대게 먹는 방법 ▷음식 별로 잘하는 맛집 ▷해산물 택배 주문할 곳을 현지 주민들 추천과 내 경험을 정리해 소개한다.▶대게를 먹으려면: 대게 음식점에서 먹으면 손쉽다. 가성비를 높이자면 어민이나 도매상에 게 구입해 찌는 곳과 상차림 식당을 연결해 달라고 하면 알려준다. 찌는 시간은 20분 내외, 비용은 20마리쯤 들어가는 1판에 7000원, 식당 상차림 1인 5000원쯤 받는다.

‘우성식당’의 물곰국에는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곰 살이 들어있다. 김치가 들어간 국물도 시원하다.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

‘우성식당’의 물곰국에는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곰 살이 들어있다. 김치가 들어간 국물도 시원하다.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

‘자연산식당’의 회덮밥. 지난주 토요일에는 쥐치 살이 올라갔다.

‘자연산식당’의 회덮밥. 지난주 토요일에는 쥐치 살이 올라갔다.

육수물회가 대표음식인 ‘자연산식당’의 육수에는 13가지 재료가 들어간다고 주인이 말했다.

육수물회가 대표음식인 ‘자연산식당’의 육수에는 13가지 재료가 들어간다고 주인이 말했다.

지난 17일 오전 죽변항 서쪽 부두에서 바라본 항만 일대.

지난 17일 오전 죽변항 서쪽 부두에서 바라본 항만 일대.

2005년 12월 30일의 죽변항. 지금은 항만 확장공사로 모습이 많이 바뀌어 이 장면 자체가 역사가 됐다.

2005년 12월 30일의 죽변항. 지금은 항만 확장공사로 모습이 많이 바뀌어 이 장면 자체가 역사가 됐다.

▶음식 잘하는 집: ①물곰김치국=우성식당(죽변항 서편), 대성식당(죽변항 서편 우성식당 옆집) ②대구탕=돼지식당(수협 직판장 앞) ③해물탕=금성식당(수협 직판장 앞) ④잡어회·물회=자연회식당(죽변항 서편), 방파제 1호 강원도회집.
▶죽변항 해산물 택배 주문: ①도매상=송이네(죽변수협 수산물직판장 23호) 054-783-0139, 010-3523-0134 ②선주 직거래=대성호 선장 부인 신민숙(50)씨 010-9363-3350, 덕성호 박강호(46) 선장 부인 김경희(47)씨 010-8855-8917.
▶간편 숙박: 2014년 주민복지센터로 개장한 '죽변해심원온천'은 최신 시설의 찜질방을 쉬는 날 없이 24시간 운영한다. 지나가는 여행 때 잠시 쉬어가기 좋다.

│해파랑길 27코스의 일부가 된 죽변등대 언덕 해안절벽 대숲 길 풍경들

대문어 경매에서 입찰자들이 값을 쓰고 있다.

팔린 참복. 12월 들어 바다 날씨가 여러 날 좋지 않아 어황도 저조하다.
대구를 크기 별로 나눠 상자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입항한 채낚기 어선에서 바로 내린 오징어 상자.
활 오징어 위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부.
서울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바닷가에서는 흔한 회때기. 탕이나 식해로 먹는다. 정식 이름은 횟대.
요즘 죽변항에 맞이 들어오는 쥐치 활어.
할복한 대포알 한치가 얼마나 큰지 몸통이 세숫대야보다 큰 함지에 반도 들어가지 않는다.
◇ 바다 속이 궁금해 죽변으로 이사한 서울 부부 제2 인생 도전 맛집

죽변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최영선(62)·최미자(53)씨 부부와 아들 주형(32)씨 일가족은 스쿠버 다이빙에 매료돼 인생 행로를 바꿨다. 안정된 서울 살림을 접고 바다가 좋아 죽변으로 간 지 5년째다. 남편은 수석매니저로 ‘죽변다이빙리조트’(죽변면 중앙로42)를 운영한다. 부인은 보쌈 음식점 ‘오첩반상’(죽변시외버스터미널 앞)의 주방을 책임진다. 아들은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합류해 다이빙 코치를 하면서 식당 일을 돕는다. 가족과 알게 된 건 10년쯤 전이다. 원래 서울사람이지만 처음 만난 곳은 죽변 바닷가였다.

│‘오첩반상’의 2인용 보쌈정식

대문어 경매에서 입찰자들이 값을 쓰고 있다.

팔린 참복. 12월 들어 바다 날씨가 여러 날 좋지 않아 어황도 저조하다.
대구를 크기 별로 나눠 상자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입항한 채낚기 어선에서 바로 내린 오징어 상자.
활 오징어 위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부.
서울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바닷가에서는 흔한 회때기. 탕이나 식해로 먹는다. 정식 이름은 횟대.
요즘 죽변항에 맞이 들어오는 쥐치 활어.
할복한 대포알 한치가 얼마나 큰지 몸통이 세숫대야보다 큰 함지에 반도 들어가지 않는다.
미역국이 함께 오른 상차림
보쌈
가지나물
무나물
양념게장
샐러드
고구마줄기나물
무쌈
우거지·콩나물된장국

최영선씨는 1960년대 후반, 중학생 때 가출을 했다. 돈 좀 있는 친구 꾐에 빠져 집을 나가 3개월간 동해안을 떠돌았다. 가출 한 달만에 돈이 떨어져 죽도록 고생을 했다. 돈 벌려고 정동진 탄광에서 탄을 캤다. 품삯은 쌀로 받았다. 그때 정동진역은 사람보다는 석탄 실어가던 화물역이었다. 너무 힘들어 도둑기차로 안인역까지 도망가 울산으로 갔다. 항만공사장에서 머구리(산업·어업 잠수사. ‘개구리’의 옛말)가 수중작업을 할 때 공기 공급하는 수동펌프 돌리는 일을 했다. 품삯을 전표로 주고 월말에 현금으로 계산해줬다. 당장 돈이 필요해 미리 환전하면 남은 기일에 따라 10~30% 할인한 헐값을 감수해야 했다. 채석장에서도 일하고 고래잡이 배도 탔다. 머구리 펌프 돌릴 때 바다 밑 세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화석으로 뇌리에 남았다.군대 제대 후 1980년 3월 1일부터 1990년 2월 28일까지 한시택시를 운전했다. 이틀 운행하고 하루 쉬었다. 덕분에 쉬는 날 택시 몰고 여행을 많이 했다. 1984년 결혼하고 외아들이 태어났다.

‘오첩반상’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최미자씨는 손맛이 야무지다.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든다.

‘오첩반상’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최미자씨는 손맛이 야무지다.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든다.

신의주가 고향인 아버지는 낙원동 악기상가 옆에서 무대복 전문 양복점을 운영했다. 아버지 일을 물려받기 싫어서 택시를 했는데 10년 일하고 개인택시 신청을 했지만 떨어졌다. 아버지가 양복점을 물려줬다. 계속 하든지 팔아서 개인택시 면허를 사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오첩반상’ 보쌈(중).

‘오첩반상’ 보쌈(중).

부부는 1990년 3월 1일부터 2011년 5월까지 21년 2개월이나 양복점을 맡아서 했다. 국민MC 송해씨도 고객이었고 많은 연예인·악사들이 무대복을 맞추러 오던 전통 있는 집이었다.양복점을 하면서 1992년 스쿠버 다이빙에 입문했다. 가출 때 머구리 펌프 돌리면서 막연하게 동경하던 바다 속 세계가 그를 이끌었다. 4년 후 아내도 따라왔다. 그 해 아들도 시작했다. 당시 만 12세의 아들은 스쿠버 다이빙 강습을 받을 수 있는 최저 연령이었다. 온 가족이 물놀이에 빠진 1996년부터는 매주 토요일이면 양복점 문 닫자마자 밤길을 5시간 달려 죽변으로 갔다.

다이빙을 즐기고 일요일 오후 서울로 돌아오는 일을 거르는 일 없이 매주 했다. 태풍이 와도, 눈비가 내려도 갔다. 밤이면 별이 쏟아지는 죽변 바닷가가 한없이 좋았다. 나이 들면 여기 와서 살겠다고 일찍이 작정을 했다.나이 때문인지 잠수 때문인지 그는 난청 증세가 생겼다. 양복점에서 손님의 얘기를 섬세하게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생각 끝에 2011년 5월 양복점을 접었다. 10개월 놀다가 부부가 죽변으로 내려갔다. 오랜 단골이던 다이빙리조트를 2012년 4월 1일 임차해 운영했다. 다이버들이 먹고 자고 다이빙을 즐기는 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곳이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오첩반상’ 식당 전경.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오첩반상’ 식당 전경.

바다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순천 출신 부인 최미자씨는 리조트에서 식사 준비를 담당하면서 바다를 즐겼다. 다녀간 사람마다 음식이 맛있다고 했다. 음식점을 권유했다. 그의 솜씨는 우연한 게 아니다. 일찍이 한·중·일·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한국전통음식연구소(소장 윤숙자 교수)에서 궁중음식 사범 과정을 수료했다. 마치면 궁중음식을 가르쳐도 되는 단계다. 나이 차 많은 신랑은 어린 신부에게 미안한 마음에 결혼에 쫓겨 제대로 못한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신부는 바느질에 이어 요리 공부에 심취했다. 이상균 전통주연구개발원장, 떡·한과로 유명한 부산 ‘예현방가’의 방세윤 대표 등과 동문 수학했다. 두 사람은 그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리조트 식사 준비 대신 음식점을 차렸다. 지난해 7월 장소를 계약했다. 죽변항이 건너다 보이는 바닷가 언덕이다. 석 달간 준비해 10월에 개업했다. 집밥 같은 오첩반상을 메뉴로 하려고 상호도 그렇게 지었다. 오첩반상이란 밥·탕·김치·간장·찌개를 기본으로 하고 5가지 반찬(숙채, 생채, 구이나 조림, 전류, 마른반찬)을 차린 밥상을 말한다. 시장분석 해보니 바닷가 사람들이 좋아했다. 육고기를 더 얹어 보쌈정식(8000원)을 주 메뉴로 정했다. 거기에 보쌈(2만5000원/3만5000원)과 쟁반국수(1만원)를 추가했다. 서울의 보쌈 잘하는 집에서 고기 삶는 비법도 전수받았다.

대중음식점이지만 부인 최씨는 만들어진 음식을 사다 쓰는 건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자기 손으로 다 만들어야 만족하는 성격이다. 힘들지만 손님들이 주방으로 몸을 들이밀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면 모든 피곤이 풀리고 행복해진다고 한다.

보쌈정식에는 삶은 삼겹살(칠레산 최상급품) 8~9점에 가오리살이 들어간 무생채, 배추겉절이로 구성된 보쌈접시와 나물반찬 3가지, 양념게장, 신선 채소 샐러드, 무쌈 또는 장아찌 1종과 국이 차려진다. 국이 일품이다. 주중에는 콩나물·시래기된장국이나 황태국, 토요일에는 미역국이 나온다. 시래기·콩나물국(금요일 밤)과 미역국(토요일 낮)을 먹어봤는데 국물이 아주 구수하고 시원하다. 국만 가지고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이겠다. 미역국 비결을 물어보니 디포리·북어대가리·건새우·멸치·무·대패·마늘을 넣고 국물을 뽑아서 쓴다고 했다. 음식을 주문하면 주방에서 남녀 구성을 묻는다. 보쌈고기를 남녀 다르게 차리기 때문이다. 장사하면서 보니까 남녀 기호가 달랐다. 같은 삼겹살이라도 남자는 기름기 많은 쪽을, 여자는 적은 쪽을 찾았다. 거기까지 감안해 세심하게 상을 차린다. 이렇게 애정으로 정성을 쏟고 노력하니 음식점은 순항 중이다.

‘오첩반상’ 내부.

‘오첩반상’ 내부.

음식점 창문을 통해 바라본 죽변항.

음식점 창문을 통해 바라본 죽변항.

남편 최영선씨가 수석매니저로 운영하는 다이빙리조트. 방파제 너머로 죽변항이 보인다.

남편 최영선씨가 수석매니저로 운영하는 다이빙리조트. 방파제 너머로 죽변항이 보인다.

하는 일을 헤아리니 가족 셋이 모두 취미를 직업 삼아 제2 인생을 누리고 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논어 옹야(雍也)편]”라는 공자님 가르침에 따르면 이 가족의 삶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문 여는 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일요일엔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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