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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체 21%는 월 100만원도 못 벌어…지난해 1만2000개 순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형 빌딩 지하에서 일식당을 하는 이선주(55ㆍ여)씨는 최근 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올 여름 콜레라 여파와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까지 겹치면서 매출액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매출 하락에도 불구 월세(800만원)와 인건비(600만원)는 계속 지급해야 했던 이씨는 결국 은행 문을 두드렸다. 이씨는 “직원을 내보내는 등 비용을 줄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25년째 장사를 하면서 요즘처럼 힘든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자영업은 흔히 ‘최후의 보루’로 불린다. 저성장 국면의 장기화로 일자리가 줄면서 취업이나 재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뛰어들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영업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등록 자영업체수>

등록 자영업체수 [자료 통계청]

통계청이 22일 발표한 ‘자영업 현황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 자영업 사업체는 479만221개로 1년 전보다 1만1504개 감소했다. 새로 개업한 업체보다 문을 닫은 업체가 더 많다는 얘기다. 너도 나도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심해지는데 소비자들은 갈수록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지난 2010년부터 서울 신천동에서 생선구이집을 운영하는 김선식(62)씨는 부인과 함께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 대비 40%나 줄었다. 그는 “지난해에만 해도 주변 사무실 직원들이나 공사 현장 직원들이 단체로 와서 저녁 회식을 했는데 올해는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월세 250만원을 내는데 실제 수입은 그 반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변변치 못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자영업체 중 51.8%의 연 매출액이 4600만원 미만이었다. 연매출 1200만원 미만인 자영업체도 전체의 21.2%에 달했다. 월매출액이 100만원 미만이라는 얘기인데 창업비용과 원가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자영업체 매출액 구간별 분포 [자료 통계청]

자영업체 매출액 구간별 분포 [자료 통계청]

김씨는 장사를 시작하면서 상가 보증금 2500만원, 권리금 2500만원, 인테리어와 집기류 3000만원 등 모두 8000만원을 투자했다. 그 중 5000만원을 대출로 충당했는데 원금은 갚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자만 한 달에 30만원씩 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어획량이 줄면서 생선 가격이 계속 올라 원가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김씨는 함께 일하던 직원 2명도 올 여름 모두 내보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김씨처럼 직원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업체를 운영하는 곳이 지난해 기준 396만 개를 넘었다. 전체 등록 자영업체의 82%에 달한다.

자영업자들이 ‘레드오션’에 몰려있다는 점도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등록 자영업체들의 산업별 분포를 보면 도·소매업(23.6%), 부동산·임대업(21.5%), 숙박·음식점업(14.6%) 등 전형적인 영세 자영업종들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인 서울·경기·인천에 전체의 절반(50.8%), 경상권에 나머지 중 절반(25.5%)이 몰려있다는 점도 경쟁 심화 요인으로 지목된다.

자영업자 대부분이 중장년층이라는 점은 자영업의 ‘블루오션’ 발굴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전체 등록 자영업자 중 50대가 32.4%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7.7%, 60대 이상이 24.7%였다. 30대 이하 젊은 층의 비중은 15.1%에 불과했다. 심지어 지난해 60대 이상 자영업자 수는 전년보다 2% 늘어나기까지 했다. 결국 자영업의 영세성과 경쟁심화, 경기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자영업자들의 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자영업 전용 바우처 지급,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 중 일부 과도한 조항의 손질,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해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자영업자 대책은 은행 대출 만기 연장 정도가 전부일 것”라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다른 사안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석·성화선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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