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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내가 진짜 보수…새누리당 밀어내고 그 자리 갖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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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현동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탄핵정국 ‘사이다’로 뜬 이재명 성남시장

이재명(52) 성남시장의 지지율 상승세가 의미 있는 것은 ‘보수 vs 진보’ 대신 ‘기득권 vs 반(反) 기득권’으로 대선 구도가 바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스스로도 “내가 진짜 보수”라고 강조한다. 좌우 편가르기로 유권자들의 선택을 왜곡하고 제한해온 정치권의 나눠먹기 관성에 정면으로 맞붙은 것이다. 시장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광장에서 보여준 급진적 언행과 달리 차분한 톤으로 정견을 설파했다. 재정과 복지, 외교·안보 등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도 숙고를 해온 티가 났다.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구속수사해야 한다”며 “개인에 대한 분노를 넘어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이 다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못 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구속수사해야 한다”며 “개인에 대한 분노를 넘어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이 다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못 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탄핵안 통과 2주가 지나며 지지율 상승세가 주춤해졌다.
“지지율은 정치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언행에 개인의 이해관계가 투영되면 국민이 곧바로 알아차린다. 일희일비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절벽에서 손 놓는 심정으로 갈 것이다.”
촛불이 시들면 지지율도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이 된 건 아닌가.
“촛불이 사라져도 기득권 체제를 바꾸겠다는 국민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4·13 총선과 미국 대선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 열망에 기성 정치권은 답을 줄 수 없다.”
박원순·안희정 등과 ‘반문 연대’할 뜻을 비췄다가 안희정에게 보란 듯 거부당했다.
“이유야 어쨌든 국민에겐 구태정치 느낌이 들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비슷한 행동도 안 하겠다. 정치권 재편을 시도하지 않겠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건 정치 기득권자들을 심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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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이 아무리 올라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악한 민주당 경선을 통과하진 못하리란 전망이 많다.
“경선은 국민이 하지 당이 하는 게 아니다. 2012년 대선 때 민주당 경선 룰은 국민경선이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투표권이 있었다. 그 결과 문 전 대표가 됐다. 지금도 그러면 된다.”
그래도 문 전 대표 벽을 넘어 제1야당 대선후보가 되긴 어렵지 않을까.
“미국 대선을 돌이켜보라. 미국인들은 기득권 세력의 대대적 물갈이를 원했다. 그 결과 민주당에선 샌더스, 공화당에선 트럼프가 등장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영부인·상원의원·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이 기득권을 휘둘러 경선에서 샌더스의 당선을 막았다. 반면 공화당은 주류들이 힘을 쓰지 못해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했다. 본선에서 어떻게 됐나. 국민의 변화 욕구를 막고 기득권 정치인을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이 지지 않았나. 국민과 싸운 당이 진 건 당연하다. 우리 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특정인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데 그의 경선 승리를 막으면 본선에서 진다. 탄핵에 찬성한 의원 234명은 300석 의석 중 78%였다. 탄핵에 찬성한 국민 비율(78%)과 똑같다. 정치는 국민 뜻을 따라가는 거다.”
촛불시위에서 자극적인 언행으로 뜬 것 아닌가.
“아니다. 나보다 더 세게 나간 정치인도 많다. 내 지지율 상승의 본질은 국가적 위기에서 국민들이 진짜 머슴을 찾아냈다는 거다. 큰불이 나면 어느 머슴이 제일 쓸모 있는지 보인다. 최순실 정국에서 야권 잠룡들이 다들 ‘날 봐 달라’고 했지만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감을 찾기 위해 그들의 과거, 즉 실적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내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실적이 어땠길래 고득점자를 자처하나.
“우선 언행에 일관성이 있었다. 세월호 침몰 이래 2년 반 내내 ‘대통령의 7시간’을 물고 늘어졌다. 이 때문에 경찰의 수사에 시달리고 감사도 당했지만 끝까지 밀어붙였다. 흠 잡힐까봐 주변 관리에도 철저했다. 그 때문에 형님과도 원수가 됐다. 둘째로는 시장으로서의 실적이다. 전임자 시절 쌓인 부채를 다 갚았고 골목상권 매출이 늘어났다. 나는 무엇이든 하면 끝장을 보고 말하면 반드시 지킨다. 그 결과 공약이행률이 96%(매니페스토 집계)로 1위였다. 이런 추진력과 돌파력을 국민이 보고 믿는 것이다.”
정치인 가운데 가장 먼저 ‘하야’를 꺼냈다.
“최순실 태블릿 보도 다음날 서울 청계광장엔 2000명만 모였다. ‘퇴진’ 주장은커녕 정치인이 촛불집회에 나오지도 않던 때다. 나만 홀로 나가 ‘하야’를 외쳤다. 무책임한 사인에게 대통령이 권력을 통째 맡겨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를 안겼다. 이것은 용서가 안 된다. 그래서 다른 정치인들은 ‘거국내각’을 얘기하는 와중에 ‘하야’를 거론한 것이다. 그 뒤 박 대통령이 기업 자금을 뜯은 정황이 드러났다. 이는 명백한 범죄니 ‘탄핵’한 뒤 ‘구속’하라고 한 거다. 이것도 내가 가장 먼저 했다.”
다른 잠룡들이 결국 그 주장을 따라왔다.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이 나를 맹공했다. ‘무책임하다’ ‘당장 대선이 치러지면 불리하니 탄핵을 꺼내 시간 끌기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이를 보며 ‘내 편들다 얻어맞는 자식’이란 애정이 생겼다.”

법치와 복지는 보수의 핵심가치
충실히 존중…사회주의자 아냐
동맹 중요…미국부터 만날 생각
탄핵 기각 시 법질서 안에서 투쟁

보수우파는 당신이 ‘종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통합진보당과 연결된 기업을 지원해줘 통진당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고 정부가 뒤집어씌운 적이 있다. 그 일로 서울지검에 소환까지 됐다. 하지만 나는 그 업체에 일거리를 줬을 뿐이지만 정부는 매년 8000만원씩 보조금을 지급해온 사실을 밝혀냈다. 정부가 황당해졌다. 그 뒤로 내게 종북이라고 시비 거는 이가 없다. 나는 진짜 종북은 지금의 정부·여당이라 본다.”
이유는.
“정부는 예산의 10%를 국방에 투입하면서도 미군 없으면 진다고 한다. 말이 되나. 방위비를 떼먹고 딴 데 쓰니 이런 소리 나오는 것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진짜 종북 아니면 뭔가. 나는 성남시에 사는 6·25 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 1만 명에 연간 60만원씩 지원한다. 독립유공자 7명에게도 매달 40만원씩 드린다. 그래서 야당을 싫어하는 성남의 보훈단체들이 나를 지지한다. 이렇게 안보를 최우선하는 점에서 나는 보수우파다. 새누리당 같은 가짜 보수들은 말로만 안보를 떠들며 나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성남시에서 일제와 싸운 남상목 의병장 유해가 발견됐다. 유족들이 30년 넘게 기념비 설립을 간청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다가 내가 시장이 되고서야 비가 세워졌다. 진보진영 일각은 이런 나를 보고 ‘국가를 중시하는 전체주의자’ 냄새가 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요즘 시대엔 국가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맞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집권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겠다고 했는데 당신은.
“나는 미국을 먼저 가겠다. 동맹이고 (남북 관계를 위해서도 미국이) 중요하지 않은가. 북한 가는 건 현실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재개하는 것이 우리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국민 뜻에 어긋나게 일방적으로 재개할 순 없다. 퍼주기 오해를 불식시킬 보장을 받고 난 뒤 하겠다.”
문 전 대표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밖에 없다’고 했는데.
“나는 그럴 경우 법질서 테두리 내에서 투쟁해 반드시 박 대통령의 퇴진을 끌어내겠다. 폭력이 아니라 법질서를 존중하면서 끌어내릴 수 있다고 본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반대해왔는데.
“미국과 협의가 된 사안이니 일방적인 폐기는 불가능하고 무책임하다. K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완성 시까지 시한부 배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도 MD의 일환이다. 이 또한 일방적 폐기는 불가능하니 1년마다 갱신하는 조항을 원용해 1년 뒤 중단시키면 된다.”

여당, 보수 탈 쓴 부패 집단일 뿐
영남, 진짜 보수인 내게로 이동 중
대선 키워드, 기득권 정치인 심판
민주당 경선, 국민 선택에 맡겨야

당신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는데.
“보수는 법질서가 존중되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걸 원하는 이들이다. 나는 그런 보수의 가치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또 사회주의적 요소도 없다. 내가 복지를 앞세운다고 진보라는데, 기본소득 확대 같은 복지정책은 서구 보수우파 정권들의 전유물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재정을 최대한 아껴 복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헌법 34조2항에 규정돼 있다. 난 이를 따를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기득권 지배세력이 자신을 보수라고 포장해 진짜 보수가 화난 상태다. 경상도 한 어르신이 내게 전화해 ‘난 원래 보수꼴통이었는데 이 시장 보고 입장을 바꿨다’고 하더라. 이분이 진짜 보수다. 보수를 참칭하는 세력에 화가 난 것이지 진보로 변한 게 아니다.”
그럼 진보는 뭔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세력이 진보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의당 정도만이 진보에 가깝다.”
그럼 나머지 정당은 다 보수인가.
“새누리당은 보수를 가장한 부정부패 집단이다. 비박계도 성형수술한 가짜 보수일 뿐이다. 진짜 보수는 나다. 내가 새누리당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가야 한다. 상황도 그렇게 돼가고 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길 전략은 뭔가.
“보수·진보 프레임으로 가면 필패다. ‘진보’로 불리는 순간 무능·무책임·종북 틀에 갇힌다. 먹고사는 문제로 승부해야 한다. 공정성이 핵심이다. 소수 재벌이 장악한 대기업 지배구조를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뜯어 고치고 중소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선진 자본주의로 도약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대기업이 미국 대기업처럼 젊은이들이 신기술을 개발하면 2조~3조원을 주고 사게 된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
“세금 한 푼 안 늘리고 예산 절약, 탈세 규제만으로 시 부채를 다 갚았다. 국가 예산도 그렇게 하면 30조원까지 늘 수 있다. 또 5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440개 기업의 법인세를 30%까지 늘리면 15조원이 추가된다. 1년에 10억원 이상 버는 개인 3700명의 소득세율(38%)도 50%로 늘리면 2조5000억원이 더해진다. 이렇게 늘어난 50조원으로 기초연금부터 확대하면 노령 부부가 매달 7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아동수당·청년배당·기초수급자 지원도 늘린다. 그래도 20조원이 남는데 어디에 쓸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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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2010년 시장에 당선되자마자 “성남이 정부에 끌려다닌 끝에 재정이 파탄 났다”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투사형 정치인. 청년배당, 생리대 지급, 무상교복, 무상 산후조리 지원 등 좋고 싫음이 엇갈리는 복지정책을 공격적으로 쏟아내 왔다. 시청사 전면 개방과 세월호 조기 게양도 그의 작품이다. 집무실에 CCTV까지 설치하며 청렴을 강조했지만 ‘쇼’라는 보수 진영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시 의회와 갈등으로 2013년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당하기도 했다.

경북 안동의 가난한 집에서 5남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성남으로 이주했다.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공단에서 5년간 일했다. 이때 프레스기에 팔목을 눌려 성장판이 망가지면서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졸업하던 해(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인권변호사로 일하다 2007년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8년 총선에서 분당갑에 출마했다 낙선했지만 2년 뒤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됐고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흙수저 출신에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직설적 화법, 시장으로 보여준 행정 실적은 거대 여야의 기득권 정치에 신물 난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매력을 안기고 있다. 하지만 ‘의회 경력이 없는 포퓰리스트’란 지적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