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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친박 진창에 빠진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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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이쯤 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생각이 같아졌을 터다. 2주 전 이 자리에서 했던 ‘끈끈이주걱에 빠진 대한민국’ 얘기다. “70년대 개발독재 시대로 후퇴한 국가의 품격”을 회복하는 데 “절망적”일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암울한 전망 말이다. “지금이 국가의 틀을 다시 짤 기회”인 건 맞는데, 도무지 제정신을 가지고 그 틀을 짜맞출 사람을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국가야 어찌되건 생명 연장만 관심
나라 망치기는 소인 하나라도 족해

2주 사이에 상황이 더 악화됐다. 곳곳에 “술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사람들로 넘친다. 세상을 뒤집어 놓은 스무 살짜리의 대학 입학이 취소됐는데 그 학교 총장이었다는 사람의 말이 특혜 입학은 없었다는 거다. 그 애 어머니가 한때 애용했던 증거가 선명한 태블릿PC를 두고 집권당 의원과 청문회 증인이 소설 같은 알리바이를 만들어 낸다.(그들이 PC 주인이라고 지목한 사람은 이틀 전에 그런 일이 있으리라 예언하는 신통력을 보였다.)

마약성 주사제가 청와대에 들어가 사용됐는데, 정작 주사를 놓았다는 사람은 없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늦게까지 머리 손질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대통령이 그날 그 주사를 맞지는 않았으리라(정말 그럴 거라 믿고 싶다). 하지만 3차에 걸친 담화에서도 그러더니 탄핵심판 답변서에서조차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다.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한 건 전체의 1%도 안 되니 나는 죄가 없다”는 게 어찌 약 기운 없이 가능한 얘기란 말인가.

아무리 만길 낭떠러지 앞에서 살 길 찾으려는 처절한 말들이라 해도 명문대학 총장이건 일개 재단 과장이건, ‘공항장애’를 앓는 강남 아줌마건 한 나라의 대통령이건 수준 차이가 없음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라야 끈끈이주걱 속의 파리처럼 녹아나더라도 제 한 몸 간수하기가 우선인 거다. 하긴 모두 한 데 얽히고설켰으니 제 한 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집권여당의 이른바 ‘친박’이라는 무리들의 행태를 보자면 특히 그렇다.

나라를 끈끈이주걱 속에 차 넣는 데 결정적인 자책골 패스를 해놓고도 고개 한번 숙이지 않더니, 틀어쥔 당권을 목숨 줄인 양 놓지 않는다. 허언(虛言)이 주특기인 대표는 자기네 원내대표 배출이라는 안전판을 만들고 나서야 역시 자기 말을 거두고 웃으며 대표직을 던져 버렸다. 그들에게 정말 명예가 뭔지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러지는 못할 터다. 주군이 관저에 유폐되는 수모를 겪는 지경까지 왔다면 주군을 잘못 모신 죄로 자결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와야 했던 게 아닌가 말이다.

대신 그들은 자기네 이름을 바꿔 부름으로써 옛 주군과의 결별을 분명히 했다. 이제 그들의 관심은 궁지에 빠진 옛 주군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이다. 그들의 목표는 집권이 아니라 어떻게든 폐족(廢族)을 면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여러모로 난관과 장애가 가득할 게 분명한 다음 정권에서 책임 없는 야당으로 살아남아 정권을 흔들어대다 보면 재기할 기회가 올 것이라는 속내를 들여다보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혁신과 통합을 위한 보수연합’이라는, 좋은 건 다 갖다 붙인 이름을 선점하는 바람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건 이 땅의 진정한 보수층이다. 자유와 안보라는 보수적 가치는 나 몰라라 제 살 길 위해선 물불을 안 가리는 사이비 보수들과 동류가 되는 모욕을 넘어, 자칫 그들과 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개헌을 비롯해 녹아 내리는 대한민국을 구하려면 할 일이 태산 같은데, 그때마다 저들이 먼저 손들고 나설 것 같아서다. 말은 같아도 셈이 다르니 문제다. 그런다고 그들 명줄이 얼마나 길겠나 하지만 더 큰 피해자인 이 나라를 망칠 만큼은 충분히 길 테니 하는 얘기다. “천하를 다스리기는 군자가 여럿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기는 소인 하나면 족하다.” 『송사(宋史)』가 이르는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