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장기간 혼란·무질서에 염증…반발 심리로 여당에 대거 표 던져

중앙일보

입력 2016.12.19 02:30

업데이트 2016.12.1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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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스 ‘68혁명’의 깃발을 올린 것은 파리의 대학생들이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파리의 과격 대학생들이 미국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건물의 유리창을 깨뜨려 체포되자 낭테르·소르본 등의 대학생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발과 낙후된 교육시설, 높은 등록금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작용했다.

프랑스 68혁명 뒤 ‘퐁피두 현상’ 왜
당시 독일·이탈리아도 우파 재집권

처음엔 지켜보기만 했던 시민들도 1968년 5월 경찰의 강경한 무력진압을 계기로 시위에 동참했다. 공장 노동자, 교사, 회사원 등 전 계층이 참여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고 각종 사회 개혁 요구를 담은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당황한 드골 대통령은 국무총리인 조르주 퐁피두에게 수습을 떠맡기고 군사기지로 피신한 채 의회까지 해산했다. 누가 봐도 우파의 몰락이 예견됐지만 선거 결과는 달랐다. 그해 6월 치러진 총선에서 우파 집권당인 ‘공화국민주동맹(UDR)’이 좌파인 사회당과 공산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런 반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혼란 뒤 안정에 대한 희구’를 꼽았다. 엄 교수는 “당초 시위에 동조했던 시민들과 언론도 장기간 지속되는 무질서에 점점 염증을 느꼈고, 그에 대한 반발로 대거 여당에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반전의 흐름은 이듬해 대선까지 이어졌다. 총선 후 대부분의 노동자는 업무에 복귀했지만 일부 과격 세력을 중심으로 시위는 계속됐다. 때마침 드골 대통령의 사임으로 조기 대선이 열렸다. 이번에도 승리의 여신은 여당의 조르주 퐁피두의 손을 들어줬다. 드골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내며 시위 정국을 관리한 그는 2차 결선 투표에서 57.8%를 득표해 대통령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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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을 공유한 인접 국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독일에서는 사회주의 독일 학생 연맹을 중심으로 구체제와 기성 권력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69년 총선에서 기독교민주연합(CDU) 주축의 우파연합 우니온(Union)이 46.1%를 득표해 좌파 사회민주당(SPD·42.7%)에 앞섰다. ‘뜨거운 가을(autunno caldo)’로 불린 노동운동이 전국을 강타한 68년 이탈리아에서도 우파인 기독교민주당이 총선 승리로 재집권에 성공하며 열기를 식혔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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