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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문재인의 문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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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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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하 경칭 생략)의 발언에 거침이 없다. 자신감이 넘친다.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답다. 턱밑까지 올라온 이재명 성남시장을 따돌리느라 발언 수위도 자꾸 높아진다. 위험한 수준이다. 과거와 대비해 보면 그 아슬아슬함이 한층 선명해진다.

 문재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다음은 혁명밖에는 없다”고 했다. 박지원은 “지극히 위험한 발언”이라 비판했다. 문재인 측은 “도올이 공격적으로 질문한 상황을 감안해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혁명’은 실언이 아니라 그의 오래된 생각이 아닌가 싶다. 그는 외신기자회견에서도 “국민들이 박근혜의 퇴진과 처벌을 원한다면 그것이 곧 헌법”이라고 했다.

 ‘혁명’보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헌재와 법치주의를 ‘코드 정치’의 수단으로 여기는 인식이다. 문재인은 2004년 5월 헌재가 노무현 탄핵을 기각하자 “공정한 재판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헌재의 결론이 일반 국민의 건강한 상식과 똑같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수도 이전에 위헌 결정이 나오자 완전히 입장을 뒤집었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를 향해 어떻게 헌재가 ‘관습법’을 내세워 맞서느냐는 것이다. 친노들은 헌재 폐지론까지 들고나왔다. 정치적 입맛에 따라 헌재에 대한 시각이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이번에도 혹 ‘법 위의 코드병(病)’이 다시 도진 게 아닌지 의문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선 거국총리-후 탄핵’을 받아들였다면 아예 혼선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황 대행이 공공기관장 인사에 손을 대자 야당은 “월권행위”라며 펄쩍 뛰었다. 촛불집회에서 황 대행 퇴진까지 외쳤다. 거꾸로 2007년 12월 28일로 돌아가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그날 노무현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고위직 인사를 자제해 달라”는 거듭된 요청을 깡그리 무시했다. 감사위원·선관위원은 물론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사장까지 임명한 것이다.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의 항의전화에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시치미를 뚝 뗐다. “공공기관들은 자체적으로 인사를 한다. 그쪽에 물어보라”면서…. 지금 문재인은 그때와 정반대 입장이다.

 변호사답지 않게 문재인은 초법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달 박 대통령에게 헌법을 뛰어넘어 군통수권과 계엄발동권까지 내놓으라고 했다. 최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회개혁기구’를 만들어 ‘국가 대청소’를 하자는 제안도 섬뜩하다. ‘재산 몰수’ 같은 소름 끼치는 조항들도 담겨 있다. ‘혁명위원회’를 세워 인적 청산을 하는 듯한 으스스한 느낌이다. 1980년대 급진모험주의 운동권의 ‘제헌의회 소집’과 닮아 있다. 그의 아슬아슬한 주장은 내부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당은 당대로 알아서 하겠다”고 외면했고, 박영선 의원조차 “개인적 희망”이라 선을 그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서두르는 분위기다. 그는 ‘촛불 민심이 말한다’는 간접화법으로 조기 대선을 밀어붙이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면 박 대통령을 탄핵하는 만큼 차기 대통령도 잘 뽑아야 한다.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잘 고르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은 박지원의 충고도 참고했으면 한다. “이회창은 9년8개월을 1등 하다가 마지막 한 달을 잘못해 김대중·노무현에게 패배했다. 미국에서도 9%의 트럼프가 91%의 힐러리를 뒤집었지 않은가.”

 문재인은 박근혜에 대해 “명예로운 퇴진 보장”에서 “즉각 하야”로 몰아치고 있다. 혹시 9년 전 12월 23일을 기억하는가. 그날 문재인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예방했다. 양쪽은 대선 때 맞고소까지 한 원수지간이었다. 그런데 이명박은 뜻밖으로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렸고 돈 안 드는 정치를 정착시켰다”며 높이 평가했다. 정권 교체의 아름다운 역사다. 내년에도 그런 빛나는 장면을 기대한다. 하지만 걱정이다.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70년대로 후퇴시켰다면, 문재인은 자꾸 80년대 운동권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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