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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레이 검사론 발견 못 해, 폐기능 검사 필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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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회사원 김모(56)씨는 최근들어 부쩍 기침과 가래가 늘었다. 김씨는 하루에 한 갑 정도는 담배를 피운다. 30년 넘게 지속한 흡연으로 호흡기 건강이 늘 좋지 않은 터라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기침이 너무 오래 가는 것 같아 호흡기내과를 찾았다. 폐기능 검사 결과 김씨의 폐활량은 같은 연령의 정상인보다 40%나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김씨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평소 운동할 때 약간 숨쉬기 힘든 적은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던 김씨는 진단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김씨는 흡입 기관지확장제로 치료를 받으면서 6개월마다 폐기능을 점검하고 있다.

자료: 국민건강영양조사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오랜 기간 담배 연기나 독성가스 등에 노출되면서 폐에 염증이 생기고 폐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전 세계 사망원인 3위를 차지한다. 이는 폐암보다도 순위가 높다. 국내 또한 최근 20년 동안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만성하기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꾸준히 10대 사망원인에 포함돼 있다. 2015년 기준 국내 사망원인 순위 중 만성하기도질환은 7위를 기록했다. 또한 사망원인 4위인 폐렴에도 많은 수의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가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40세 이상 성인의 14.2%가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남성은 21.5%로 5명 중 1명 꼴이다. 만 65세 이상 유병률은 31.1%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가한다. 특히 40대 이상 연령대는 남성의 유병률이 여성보다 크게 높다. 40대는 남성이 여성의 약 5배, 60대는 약 4배로 나타났다. 하지만 인지율과 치료율은 각각 2.9%, 1.6%로 매우 낮은 편이다. 이는 많은 흡연자들이 호흡기 증상을 간과하는 탓이 크다. 만성적인 기침·가래 등은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초기 증상이지만 흡연자들은 이런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호흡곤란 증상을 노화 현상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다. 폐기능은 50%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심한 호흡 곤란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초기에는 대부분 증상이 없다. 또한 만성폐쇄성폐질환은 폐기능 검사 결과로 진단하는데 국내에서 폐기능 검사의 시행률이 낮은 것도 문제다. 환자가 호흡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도 엑스레이 검사만으로는 병이 발견되지 않는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는 병명 자체가 장년층에게 생소한 이유도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질환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병명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박모(68)씨는 40년간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피웠지만 금연한 지 10년이 지났다. 최근들어 운동할 때마다 약간 숨이 찼지만 박씨는 평소 건강에는 자신이 있어 나이 탓으로만 여겼다. 그러다 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었다. 급히 응급실을 찾은 박씨는 산소포화도 검사를 받은 결과 수치가 매우 낮아 자발호흡으로는 산소 공급이 부족한 상태였다. 인공 삽관까지 받은 박씨는 일주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상태가 약간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겼지만 만성폐쇄성폐질환 말기 상태라는 얘기를 들었다. 5일 뒤 퇴원한 박씨는 집에 산소발생기를 설치해 산소치료를 받고 있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은 만성적인 기침·가래가 대표 증상이다. 이와 함께 호흡 곤란이 있는 경우도 있다. 호흡곤란 증상은 초기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병이 심해진 뒤에야 자각하게 된다. 호흡곤란 발작이 발생해 응급실에 실려오고 나서 병을 진단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원인은 흡연이다. 하루에 한 갑씩 10년 이상 담배를 피웠고 만성적인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의심하고 폐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현재 금연했더라도 과거에 흡연한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다. 금연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과거에 담배를 많이 피웠더라도 폐질환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흡연자 역시 현재 흡연자와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만성폐쇄성폐질환이 생길 수 있다. 담배연기 외에도 장기간 독성가스나 실내외 대기오염에 노출되거나 천식, 기관지확장증, 과거에 앓은 결핵 등도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치료는 흡입 기관지확장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만성적으로 기도가 좁아져 숨이 차는 병이기 때문에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약으로 치료한다. 경구 기관지확장제는 전신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흡입 약제를 사용해야 한다. 흡입제는 경구제에 비해 호흡기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은 양으로도 효과가 좋고 전신 부작용도 적다. 약물치료와 함께 생활습관 역시 개선해야 한다. 흡연자는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담배연기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성가스나 요리할 때 발생하는 연기, 미세먼지, 황사 등이 해롭기 때문에 되도록 피해야 한다. 독감과 폐렴 예방접종도 중요하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과 신체활동을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능하다면 호흡재활 치료를 받는 것도 병세를 약화시킬 수 있다. 말기 상태가 되면 산소치료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환자는 가정에서도 산소치료를 받아야 한다.


한번 파괴된 폐 조직은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조기에 진단해 진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주기적인 폐기능검사가 필수다. 특히 하루에 한 갑씩 10년간 담배를 피웠고 40세 이상이라면 현재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매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은 금연이다.


이진국 객원 의학전문기자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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