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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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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송인한 연세대 교수

송인한
연세대 교수

문제로부터 변화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나’의 수준을 6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원래는 심리학자 제임스 프로차스카가 금주나 금연 같은 건강 행동에 적용하려 제안한 변화단계이론(Stages-of-Change Theory)인데 여러 다른 문제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이 6단계는 전숙고(前熟考, pre-contemplation), 숙고(熟考, contemplation), 준비, 실행, 유지, 그리고 종결 단계로 구성된다.

변화 위한 여섯 단계는 전숙고·숙고·준비·실행·유지·종결
청문회는 문제가 뭔지 모르고 억울해하는 ‘전숙고’에 그쳐

첫 번째 전숙고 단계는 아직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중증의 상태다. 그러므로 자신의 문제를 고쳐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타인들을 비난하기까지 하는데, 자의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나 혹은 법적인 요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끌려 올 뿐이다. 마치 우리의 청문회 풍경처럼.

두 번째 숙고 단계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시작한다. 본인의 문제를 인정하는 자체가 큰 전환이자 문제 해결의 시작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단계에선 변화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며 변명과 합리화를 한다. 문제에 대해 상반된 양가감정(兩價感情)을 가지는데, 예를 들면 심각한 음주에 대해서도 술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과 술이 대인관계에 유익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는 식이다. “다소의” 문제는 있었지만 안정된 국정 운영을 위한 것이었다는 유의 청문회 답변도 마찬가지. 이른 시간 내에 변화할 의도가 없다.

세 번째 준비 단계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문제 해결을 준비한다. 가까운 시간 내에 실행할 마음을 굳게 먹고, 어떤 이들은 이미 나름대로 노력을 실천해 보는 경우도 있다.

성공적으로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면 네 번째인 실행 단계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면 변화하려는 스스로의 의지가 강하다. 이때는 주위에서 격려·보상 같은 강화(reinforcement)를 제공할 때 도움이 된다. 스스로 자신감과 대견함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막상 실행에 들어갔는데 진전이 없으면 좌절감이 따르기도 한다.

다섯 번째 유지 단계는 바뀐 행동이 성공적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새로운 행동을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새로 변화한 행동을 유지하므로 마치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이기도 하나 여전히 어려운 단계이며 유혹은 계속된다. 게다가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게 아니라 함께 흡연의 유대감을 나누던 동료들과 소원해질 것이며 흡연 시 나누던 고급 정보를 얻지 못하는 변화처럼 생활 전반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일상이 혼동스러워질 수 있다. 때론 너무 이른 방심을 함으로써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간신히 몇 달간 유지한 금주를 축하하기 위해 터뜨리는 샴페인처럼.

마침내 마지막은 종결 단계. 문제 행동을 참고 억누르는 수준이 아니라 다시 하고 싶은 유혹 자체가 없어지는 상태다. 100%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기 효능감이 있으며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반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은 존재하는데 혹시 한 번 실수한다 하더라도 전체의 실패로 생각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테면 10년을 끊었던 담배를 한 번 피우고는 자책하고 비관하며 본격 흡연을 재개하는 식 말이다. 변화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현재 정국의 혼란 상황에 대해 책임져야 할 국정 책임자들은 물론 청문회에 나온 대부분 사람의 단계는 어느 수준일까? 변화해야 한다는 반성은커녕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조차 없어 보이며 오히려 국민의 정당한 문제 제기와 요구에 억울해하고 비난하는 태도마저 보인다. 가장 심각한 상태인 전숙고 단계에 그쳐 있다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수준에서는 어떤 합리적인 논리와 증거를 제시하고 설득하더라도 자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기 어렵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병식(病識)조차 없는 소위 사회지도층이 진정으로 변화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실행이나 유지·종결 단계는 고사하고 문제를 고치고 변화하려 준비하는 단계조차 기대하기 어려우니 안타깝기만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자각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시대의 병이 깊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