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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청문회 흔든 ‘양승태 사찰’ 문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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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장에 이번엔 ‘양승태(사진) 대법원장’ 사찰 문건이란 폭탄이 터졌다. 15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양 대법원장의 일상 동향이 담긴 문건을 공개하면서다. 이에 대법원이 “반헌법적 사태”라고 반발하면서 행정부-사법부 간 갈등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 “2014년 청와대서 유출” 주장
당시 공직비서관 조응천 “국정원서 작성한 문건인 듯”
대법 “사실 땐 반헌법적 사태” 친박 “통상적 동향 보고”

조 전 사장은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대법원, 대법원장의 일과 중 등산 사실 외부 유출에 곤혹’ ‘법조계, 춘천지법원장의 대법관 진출 과잉 의욕 비난 여론’이라는 제목의 문건 2개를 제출했다. 한 건은 양 대법원장, 다른 한 건은 춘천지법원장 시절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에 관한 내용이었다.

조 전 사장은 해당 문건이 2014년 1월 6일자 ‘정윤회-십상시(十常侍) 회동’ 문건과 함께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으로, 같은 해 11월 말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8건 중 2건이라고 소개했다. 조 전 사장은 보도 당시 세계일보 사장이었으나 석 달 뒤 해임됐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국회 청문회장에 제출한 양승태 대법원장 사찰 문건. [사진 강정현 기자]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국회 청문회장에 제출한 양승태 대법원장 사찰 문건. [사진 강정현 기자]

조 전 사장이 공개한 첫 번째 문건은 “문화일보가 등산 마니아인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 후 매주 금요일 오후 일과시간 중 등산을 떠난다는 비판 보도를 준비하자 대법원이 당혹해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양 대법원장이 대법관 시절부터 법원산악회를 주도하며 1박2일 코스의 야간산행을 즐긴다는 것은 법조계에선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문화일보 측은 “양 대법원장의 등산 기사를 보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성준 위원장 관련 문건에는 “2012년 춘천지법원장 부임 후 관용차 사적 사용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하고 2014년 1월 대법관 추천을 앞두고 언론 에 대놓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적혀 있었다. 또 "최 법원장은 대법관 탈락 후에도 주변에 ‘양 대법원장이 9월 대법관 인선 시 자신을 배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해 눈총을 받고 있으며, 소설가 이외수 등 과 친분을 구축하고 법조계 인사와 면담을 주선해 환심 사기에 이용 중”이란 내용도 담겼다. 최 위원장은 “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문건엔 당시 최성준 춘천지법원장 동향도 담겨

대법원은 이날 “법관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이 이뤄졌다면 사법부를 감시·통제함으로써 정당한 사법권 행사를 방해하려는 불순한 발상”이라며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고 공식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사법권 독립 침해 시도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는 동시에 책임 있는 관련자들의 명확한 해명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조병구 대법원 공보관은 “양 대법원장은 사찰 문건 의혹에 대해 ‘굉장히 놀랄 일이며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우려와 동시에 많이 부적절하다는 내색을 보였다”고 전했다.

다만 문건 작성 주체는 청와대가 아니라 국가정보원이란 주장이 나왔다. 문건 생산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양 대법원장 관련 문건은 우리가 생산한 적이 없다”며 “문건에 각각 2014년 2월 7일, 2월 10일로 파기 시한이 적혀 있고, 복사하면 ‘워터마크’가 찍히는 걸 보면 국정원 문건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워터마크는 원본에는 보이지 않지만 복사본 위에는 숨겨 놓은 원본의 문양이 드러나도록 삽입한 표식이다. 조 전 사장이 공개한 문건을 국조특위가 복사하자 한글 ‘차’자가 나타났다. 국정원은 문건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만 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이혜훈 의원은 “행정부가 사법부 수장을 사찰한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로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일로 근거가 있다면 탄핵 사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친박계의 한 의원은 “내용을 보면 사찰이라고 할 수 없고 통상적인 동향 보고 수준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글=정효식·김선미 기자 jjpo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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