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의 의대생 퓨세는 친구 로드리고와 함께 남미대륙 여행을 시작한다. '포데로사'라는 애칭을 붙인 낡은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 안데스산맥을 가로지른다.
사막을 건너고 아마존을 거쳐 베네수엘라까지 가는 긴 여정이다. 길 위에서 두 청년은 새 세상을 보게 된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경험 같은 것이다. 주인공은 마피아가 판치고 부조리로 가득 찬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보며 분노가 끓어오른다. 혁명을 위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꿈꾼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질풍과 노도'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퓨세는 훗날 쿠바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이다.
오토바이 여행의 최대 매력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두 바퀴가 지나갈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달릴 수 있다. 이런 자유를 만끽하려는 젊음은 곳곳에 널려 있다. 유명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명배우 이완 맥그리거도 바이크 여행의 꿈을 실천한 한 사람이다. 이완은 2007년 봄날 고향인 스코틀랜드 존오그로츠에서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했다.
동료 배우인 찰리 부어만과 함께이다. 아프리카를 종단해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수만 킬로미터를 달리며 곳곳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났다. 영국 BBC는 이들의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다큐멘터리 ‘롱 웨이 다운(long way down)’ [유튜브]이완과 찰리가 탄 오토바이는 BMW R1200GS(이하 GS)이다. 수백 킬로그램의 짐을 싣고도 고속주행이 가능하다. 온로드 오프로드 가리지 않고 달릴수 있는 기종이다. 매끈한 포장길은 물론 자갈길, 진흙탕, 모래밭 등 험지를 가리지 않는다.
덩치가 크고 배기량이 높아서 초보에게는 좀 버거운 편이다. 하지만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을 꿈꾸는, 오토바이 좀 타봤다는 ‘꾼’들이 꼽는 최고의 기종이다. 그런데 아스팔트에서 제법 탄다는 사람도 오프로드에서는 넘어지기 일쑤다. 마음대로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 타는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최근 충청북도 충주시 목계나루 인근에서 GS 교육행사가 열렸다. 본고장 독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기자 출신 박지훈씨가 강사이다. 박 강사는 교육시간 내내 “고개를 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턱을 들고 멀리 보세요.” 멀리 보는 자세가 가장 안정감이 있다. 고개를 숙이면 저속에서 넘어지기 십상이다. 팔꿈치는 몸 바깥으로 빼야 한다. 험한 길에서 팔로 전해지는 충격이 줄어든다.
넘어진 오토바이를 세울 때는 팔과 허리를 쓰면 다친다. 200kg 가까운 오토바이는 엉덩이로 밀듯이 일으켜 세워야 한다. 보호장구도 필수다. 일명 교복이라 불리는 ‘랠리’ 자켓과 바지에는 팔꿈치, 어깨, 무릎, 골반, 가슴 등을 보호하는 보호대가 붙어있다.
목 보호대와 헬멧, 장갑, 부츠 등도 꼭 착용해야 한다. 20년간 오토바이를 탔다는 윤정현(59) 씨도 처음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GS로 세계여행을 하는 게 꿈”이라면서 “오프로드 주행 테크닉을 좀 더 빨리 익히고 싶어 참가했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는 국경도 나이도 큰 의미가 없다. 달리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realist)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이루지 못할 꿈을 가지자.”
사진·글=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