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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광화문항쟁, 광화문정신, 광화문교향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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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광화문 항쟁으로 대한민국은 역사의 고빗길에 놓여 있다. 옛 구조와 가치는 명백한 퇴장명령을 받았으나 새 희망과 질서는 아직 희미한 형국이다. 안도와 우려가 교차하나 광장의 대교향악을 빚어낸 지휘자 없는 시민오케스트라는 환희의 송가로 이어져야 한다. 대참여를 제대로 정리해야 하는 이유다.

시대정신에 대한 사유는 시민을,
이들 시민은 광장을 낳았고
전국 광장의 오케스트라 화음은
시대를 꿰뚫는 철학을 빚었다
자유·참여·연대·공공성·평등
공화·평화가 그 풍경의 정수다

 먼저 대통령의 일탈이다. 재임 내내 대통령의 일탈은 대한민국호 전체의 혼돈과 방향상실로 이어졌다. 도덕·가치·교육·국격·정치·경제·문화·헌법상의 대가는 혹독했다. 선거·검증·토론을 통한 대통령 선택 과정은 이념·진영·개인 선호를 넘어 공동체 시민의 가장 엄정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큰 홍역을 치른 이제 ‘국민탄핵’과 ‘의회탄핵’ 단계가 끝났다. ‘사법탄핵’만 남았으나 주권자와 입법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순정한 결말을 통해 국가는 속히 정상화되어야 한다.

 둘째 주권과 헌법 차원이다. 민주공화국에서 헌법제정 주체인 주권자(국민)는 선거를 통해 입법부와 집행부에 헌법집행주체의 권한을 함께 부여한다. 입법부·집행부의 이중정당성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탄핵을 당한 국면은 집행부에 대한 주권회수 상태라서 주권자와 의회가 협력해 헌법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헌법 가치 복원, 적폐 청산, 국가 개혁에 시민사회가 꼭 참여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통령 일탈의 징치를 선도한 광장을 배제한 채 정당 간 거래를 통해 미래 제도와 개혁방향을 결정한다면 4월혁명과 6월항쟁처럼 실패는 불문가지다. 의회는 속히 노장청을 포함한 시민사회·시민대표기구와의 협치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사회구조의 문제다. 광화문항쟁은 한국 사회의 지배 카르텔의 유지·해체·조정의 일대 분수령이다. 87년 이후 정당·재벌·관료·금융·언론·교회·교육·법조의 상층이익동맹은 요지부동이었다. 특권지배구조, 국부 나눠먹기 구조이기도 한 이 상층 카르텔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저 먹고사는 정도만 가능하거나 생존 유지조차 어려운 극단적 양극사회였다. 그러나 교육과 언론에서의 정의의 복원 노력은 상층 카르텔에 균열을 초래했다.

 이화여대 학생과 교수들의 저항은 개인 입시 문제를 넘어 전체 한국 사회의 특권구조를 수면으로 드러내 준 빛나는 소우주였다. 세계일보와 TV조선의 초기 특종보도, 한겨레의 지속적인 발굴보도, 그리고 JTBC와 중앙일보의 ‘결정적 증거’의 제시는 마침내 대통령의 1차 사과(10월 25일)와 검찰 특별수사본부 설치(27일), 그리고 광장 촛불집회의 시작(29일)과 사설정부 역할을 해 온 대통령 측근 3인방과 수석비서관들의 대거 사임(30일) 및 국정 농단 공동정범 최순실의 검찰 출두(31일)로 이어졌다.

 10월 24일 보도는 87년 6월항쟁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 조작 사건의 폭로(5월 18일)에 비견될 반박 불능의 비수였다. 상층 카르텔은 균열되었으나 시민들은 외려 조직적-민주화 이후 최대 시민조직인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을 11월 9일 건설-으로 광장으로 결집했다. 정경유착 중단 흐름, 전국경제인연합 와해, 보수 정당 분열, 검찰의 부분적 본연 회복, 일부 언론의 전환을 포함해 상층 카르텔은 점차 이완되고 있으나 워낙 강고한 기득 이익 구조라서 시민사회와 국가 공공성의 전면 회복을 통한 근본개혁은 필수적이다.

 끝으로 철학적 문제다. 이게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야말로 철학부재·가치부재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광화문 대합창, 광화문 대화음의 최대 울림이다. 한국 사회는 민주공화국에 걸맞은 인간학과 철학을 구축하지 못했다. 철학은 개인 내면 사상의 표출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세계 현실에 대한 이성적 응답이어야 한다. 계층·이념·남녀·세대·지역을 넘어 사적 개인을 넘는 공적 시민으로서의 참여를 통해 전국 광장들은 인간과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과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칸트가 말한 ‘공적 이성’의 지경이며 헤겔이 말한 인간과 세계가 만나는 ‘구체적 보편’이자 함석헌이 말한 ‘공적·사적 삶의 통합’ 지평이다.

 평화적 인간연대가 길어올린 보편시대정신, 즉 공공시민철학과 공공국가철학의 탄생이다. 사유는 시민을, 시민은 광장을 낳았고 전국 광장의 오케스트라 화음은 시대를 꿰뚫는 철학을 빚었다. 자유·참여·연대·공공성·평등·법치·공화·평화가 이 철학적 진경의 정수들이다.

 진실과 참여, 연대와 평화가 산생한 광장의 교육효과로 한국 사회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 이후 한국 사회는 이 시대정신과 공공시민철학을 정교하게 다듬고 현실로 제도화화는 지혜와 능력만큼 발전할 것이다. 과거를 깔끔히 씻겨 보낼 장엄한 세례 순간을 맞기 위해 4월혁명도 6월항쟁도 실패한 위업을 숙연히 다짐해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