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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잊고 버리고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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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논설위원

이정재 논설위원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10일 서울에서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바로 다음날이다. 원래 11일 예정이던 회의를 하루 앞당겼다. 그는 “국제 신인도 유지와 소통, 적극적 재정 집행, 민생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관료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으며 “역사적 소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기재부 간부들은 짐짓 의아해했다고 한다. 올 초 취임 때도 안 했던 말을 부총리가 비장하게 늘어놨기 때문이다. 감 빠른 이들은 이때 ‘유 부총리 유임’을 점쳤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경제는 유일호 부총리가 중심이 돼 달라”고 말했다. 사실상 유일호 유임, 40여 일간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와의 ‘어정쩡한 동거’를 정리한 발언이었다. 야당도 크게 반대하지 않아 유 부총리는 앞으로 6~8개월 더 자리를 지키게 됐다.

“경제 못 살릴 것” 세간 인식
보란듯이 한 번 뒤집어 보라

유 부총리에겐 좋은 일이지만 과연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혼선이 정리되고 경제 컨트롤타워가 분명해진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안도감보다 불안감이 앞선다. 나라 경제는 지금 백척간두다. 안팎의 국정 교체·혼란까지 겹쳐 전대미문의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유 부총리의 지난 1년은 그런 기대에 한참 모자랐다. 기재부는 아예 체념하는 분위기다. 관료 A는 “기대도 동요도 없다. 원래 (유 부총리는) 있는 듯 없는 듯했다. 크게 그 스타일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유 부총리에게 세 가지만 당부한다. 잊고 버리고 바꿔야 할 세 가지다.

①‘말 바꾸기 유일호’는 잊어라. 취임 초부터 유 부총리는 툭 던지는 말로 곤욕을 치렀다. 양적완화 논쟁, 부동산 대책 등 주요 현안마다 주무 부처와 다른 소리를 냈다가 뒤에 정정하곤 했다. 경제부총리의 말은 천금 같아야 한다. 부총리가 ‘잘못 언급한 말’에도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게다가 지금은 비상 시국,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셀 코리아, 디스카운트 코리아가 가속화할 수 있다. 기침 소리, 표정 하나가 나라 신인도와 연결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말은 무겁게, 행동은 빠르게 하길 바란다.

②‘우유부단 유일호’는 버려라. 유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말했다. 하지만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겉돌거나 실패했고 노동 개혁은 물 건너갔다. 강력한 재정주의자의 소신을 밝혔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추경으로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는 지난 10일 간부 회의에서 다 나왔다. 더도 덜도 필요 없다. 자신이 말한 대로 지키고 뚝심 있게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부총리가 흔들리면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

③‘있는 듯 없는 듯 유일호’는 바꿔라. 수처작주(隨處作主), 혼란의 시기일수록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 국정의 중심이 뻥 뚫린 지금, 경제부총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 부총리가 중심을 잡아야 외국인 투자자, 국제 신용평가사를 안심시킬 수 있다. 몇 달간 국정 공백으로 기재부는 물론 공공기관까지 인사 적체가 극심하다. 인사권을 적극 행사해 흔들리는 공직 사회를 다잡아 줘야 한다. 더 이상 “내가 왜 부하 인사를 챙기나” “청와대가 알아서 하겠지”로는 안 된다. 인사권을 휘두르던 최순실·박근혜의 청와대도 공백이다. 제대로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야당이 유 부총리 유임을 막지 않은 이유를 돌아보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제 잘못되면 (박근혜 정부와 같이) 책임질 일 있냐”며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 인준을 피했다고 한다. 그 말을 뒤집으면 민주당이 안심할 정도로 지금까지 유 부총리가 잘 못해왔다는 얘기다. 그래서 유임시켰다는 거다. 유 부총리는 이런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민주당이 “실수였다. 유일호를 당장 잘라라”라며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만 해 달라. 마무리는 썰렁한 아재 개그다. 나라 경제가 백척간두인데, 유일하게 혼자 좋은 사람은? 유일 호(唯一 好). 이 개그가 진담이 안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