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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취약지역 의사 배출할 공공의대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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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4월 13일 오후 8시35분 경남소방본부 상황실에 임신부(39)의 남편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왔다. 곧이어 합천소방서 삼가면 119 지역대에 ‘임신부 출산 임박’이라며 출동 지시가 떨어졌다. 남편이 산통이 시작된 아내를 승용차에 태워 경남 진주로 향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진통 주기가 짧아져 119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박동규 소방교(응급구조사)가 1분 만에 출동해 부부를 태우고 진주로 달렸다. 구급차가 달린 지 25분 지났을까. 진주 경상대학병원에 도착하기 직전 차 안에서 임신부가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졸업 후 10년 근무 조건 학비 면제
산부인과·외상외과·소아과 중심
연 100~120명 공공의 양성 목표
정부, 권역응급센터 개선안 재추진

이들 부부가 다급하게 진주로 향한 건 경남 합천군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주나 대구로 ‘원정 출산’을 간다. 2012년 정부 지원을 받아 외래진료 산부인과가 생겼지만 분만은 하지 않는다. 안명기 합천군 보건소장은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 17개 읍·면 보건지소·진료소에 32명의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진료를 본다”며 “이 가운데 19명이 내년 4월 복무 만료인데 이를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공보의는 취약지에서 진료하며 군 복무를 대신하는 의사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이 같은 의료 사각지역의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공공의료 전문 의과대학(이하 공공의대)을 세워 전담 의사를 양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권역응급(외상)센터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15년 후 전담의사 배출을 목표로 공공의대를 신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공의대는 입학금·수업료를 면제해 주는 대신 졸업하면 10년간 의료 취약 지역이나 군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공보의·군의관(3년) 근무 기간이 포함돼 실제 기간은 7년이다. 산부인과·외상외과·소아청소년과 등의 전문의를 주로 양성한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복지부는 이를 위해 지난 7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등 75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 설치·운영 법률안’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한 해 100~120명의 의사 배출이 목표다. 또 복지부는 공공의대 설립까지 과도기적 조치로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되 그 기간만큼 공공의료 의사 역할을 의무화하는 ‘장학의사’ 제도를 2018년 시행할 방침이다. 우선 산부인과 의사 10~15명을 이런 식으로 양성하게 된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당초 공공의대 설립 방안은 정부가 지난해 3월 공개한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 포함됐다. 두 달 뒤 국회에 법률안이 발의됐으나 폐기됐고 이번에 재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226개 시·군·구 중 산부인과 의원이 없는 데가 57곳, 외과는 29곳이다. 의사의 53%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빈 공간을 공보의가 메우고 있지만 여학생의 의대 입학이 늘면서 공보의 수는 2009년 3396명에서 올 6월 2095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이종구 서울대 의대 글로벌의학센터장은 “일본·호주 등 선진국에선 별도 의대를 세우는 등의 방법으로 수준 높은 공공의료 의사를 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협회의 반대가 걸림돌이다. 추무진 의협회장은 “자칫 부실의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공공의대에 들일 돈으로 취약지 의사를 파격 대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권준욱 국장은 “의과대학 정원을 늘려 공공의사를 양성하는 방식은 이미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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