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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텝스 뭐든 OK…47차례 대리·부정시험 치러주고 1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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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970점까지 가능합니다.”(대리시험 응시자)

구속 30세 대학생 “도박빚 갚으려”
얼굴합성 어플로 주민증 재발급
여성에겐 무선장비로 답 알려줘

“저는 승진용으로 700점만 넘겨도 되는 거라… 영어를 잘 못해서 고득점은 이상하게 볼 수 있어요.”(의뢰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토익 등 외국어 시험을 대신 치러 준 대가로 1억2000만원을 챙긴 서울 모 사립대 4학년 학생이 구속됐다. 대리시험을 의뢰한 37명도 경찰에 붙잡혔다.

이모씨와 의뢰자의 SNS 대화. [사진 제주경찰청]

이모씨와 의뢰자의 SNS 대화. [사진 제주경찰청]

제주지방경찰청은 12일 “돈을 받고 외국어 시험을 대리 응시한 혐의(업무방해)로 이모(30·서울)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14년 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토익과 토플·텝스·오픽 등을 치르는 37명의 의뢰를 받아 대리시험을 보거나 무선장비로 답을 알려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씨에게 돈을 주고 시험을 대신 치르게 한 경기도 모 초등학교 교사 강모(33)씨 등 37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대리시험이 29명이고 장비를 이용한 부정시험이 8명이다. 대리시험을 의뢰한 이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교사인 강씨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높은 토익 점수가 필요했다. 또 최모(35)씨 등 공공연구기관 직원이 2명, 배모(34)씨 등 사립대 교직원 2명도 의뢰했다. 나머지 32명은 20~40대의 일반 직장인과 취업준비생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승진과 취업을 위해 대리시험을 의뢰했다.

이들은 시험 대가로 이씨에게 1인당 130만원에서 600만원을 지급했다. 가격은 이씨의 사정에 따라 정해졌다. 이씨가 돈이 급할 때는 130만원에 시험을 치러 줬다. 보통 300만~350만원을 받았다. 가장 많은 600만원을 지급한 의뢰자는 두 번의 시험을 부탁한 경우다.

이씨는 각종 외국어 시험에 47차례 부정 응시해 1억2000여만원을 챙겼다. 대리시험은 얼굴 합성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진을 비슷하게 만든 뒤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아 의뢰자 대신 이씨가 응시하는 수법을 썼다. 여성 의뢰자라 사진 합성이 불가능하거나 의뢰자가 직접 시험을 보겠다고 밝힌 경우에는 이씨가 같은 시험을 보며 소형 무선통신장비로 답을 알려 줬다.

이씨는 경찰에서 “모 기업 해외지사장인 아버지와 미국에 5년 정도 살아 영어에 자신 있었다”며 “사이버 도박을 하다 빌린 사채를 갚기 위해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철 제주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이씨는 자신이 미국 유학생 출신임을 앞세워 SNS에 광고를 하는 방식으로 의뢰자들을 모았다”며 “이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행정기관과 외국어능력시험 업체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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