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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사또 재판 할 수는 없어…탄핵 사안 선별 심리 불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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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배보윤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배보윤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탄핵소추 의결서에 적힌 모든 쟁점을 대상으로 한다.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헌재가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절차에 대한 원칙을 밝혔다. 정치권 등에서 제기한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요 쟁점을 먼저 판단해 조속히 탄핵 결정을 내리는 ‘선별 심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쟁점 다 다뤄야, 선입견 재판 안 돼”
‘주요 혐의 위주 신속 심판’에 선 그어
준비 절차 거쳐 1월 초 본격 심리 예상
헌법·법률 위반 사항 13개로 방대
세월호 7시간 포함 자충수 지적도
일각선 “소추안 변경해 쟁점 줄여야”

배보윤 헌재 공보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변론주의로 진행한다. (탄핵 결정은 헌재의) 심리를 통해 결론이 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또 재판’을 할 수는 없다. 선입견으로 하는 재판이 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에 일부 고을 수령이 한 것과 같은 편의주의적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는 의미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선 “헌재가 박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배 사안을 중점적으로 집중 심리하면 이르면 1월 말에도 탄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헌재의 이날 설명에 따르면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가 제출한 탄핵소추 의결서에 적힌 박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반 사항은 13개다. 쟁점마다 사실 관계를 둘러싼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 혐의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지 못해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특별검사에게 넘겼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심리 과정에서 증거 조사를 통해 자체 판단할 수 있겠지만 강제수사권이 없어 한계가 있다. 결국 특검 수사 결과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야당이 고집해 넣은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문제가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무유기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도 탄핵 결정 근거가 될 만큼의 중대한 사안이 아닐 가능성이 큰데 이를 규명할 시간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용상 동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 야당 등이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많이 적시하는 바람에 탄핵 결정이 늦춰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헌재는 최대한 신속하게 심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이 주재한 이날 오전 재판관 회의에선 변론 ‘준비 절차’를 갖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건 당사자들이 본격적인 심리를 앞두고 ▶주요 쟁점 사항 ▶증인 신청 ▶변론 기일 등을 합의하는 절차다. 사실 관계가 복잡하거나 쟁점이 많은 사건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심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헌재는 탄핵심판 집중연구팀에 헌법연구관 20여 명을 투입해 쟁점 정리 작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헌재 내부에선 “이달 중 두 번 정도의 준비 절차를 거쳐 내년 1월 초께 본격적인 탄핵심판이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심리 기일은 대통령 답변서가 제출(16일 시한)된 뒤인 다음주 중반께 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 결론’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교적 쟁점이 간단했던 노 전 대통령 심리 때도 63일이 걸렸는데 13개 사안을 다 따지려면 최장 심리 기간 180일이 모자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탄핵소추 의결서를 수정해 쟁점을 덜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용상 교수는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국회가 소추 내용을 보완하거나 일부를 폐기할 수 있다.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수정이 불가피한데 그때 일부 쟁점을 덜어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주백 교수는 “탄핵소추안을 변경하려면 국회가 다시 의결을 하면 된다. 그런데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호진·김선미·서준석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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