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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친박의 좀비 연대 ··· 더 이상 보수 가치 훼손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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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명 성남시장의 “좀비가 제일 위험하다. 죽었는데 살아 있는 존재가 있으면 그 자체가 엄청난 혼란”이라는 독설은 정곡을 찌르는 맛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결로 그와 함께 사라져야 할 존재가 새누리당 친박 세력인 점은 국민적 합의에 속한다. 과거 선거 패배나 정권 상실 때 주류 정치세력이 책임을 지고 퇴장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민주주의를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실패가 없는 완벽한 체제라서가 아니다.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은 선거 패배보다 훨씬 큰 주권배반 사건이다. 박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했던 세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이유다.

정치 세력화 선언으로 국민에 도전
입맛 맞는 비대위장 뽑겠다는 속셈
‘친박 8적’ 쫓아내야 보수재건 가능

 이런 상식을 뒤엎고 어제 친박 세력이 집권당 정치의 주도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새누리당의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김진태 의원과 이정현 대표, 이장우·조원진 최고위원 등 이른바 ‘친박 8적’이 느닷없이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발족시킨 것이다. 이 정파에 이름을 올린 친박 의원은 51명.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거나 최소한 자숙해야 할 사람들이 대놓고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요, 이런 게 좀비 정치가 아니면 무엇인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의원이 작성한 성명서엔 “비상시국회의(새누리당 비박계 모임)가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8명의 이름을 거론하며 인적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며 “비상시국회의는 사죄하고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그러고 보니 ‘혁신’ ‘통합’ ‘보수연합’이라는 친박에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간판 하나 걸어놓고 그 안에서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8명의 구명운동이나 해보자고 51명 의원이 모인 것이다. 참여자들을 보면 대체로 박근혜 색깔을 도저히 빼기 어렵거나 지역구 사정상 박근혜를 외쳐야만 생존이 가능한 생계형 정치파벌에 불과하다.

 친박들은 분위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법적·윤리적·정치적·역사적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들끼리 살아보겠다고 패거리 지어 설쳐대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을 우습게 알고 있다. 새누리당 안에 철퇴를 내릴 세력이 없다면 국민이 응징해야 한다. 이정현 대표는 탄핵이 되면 하루속히 퇴진하겠다던 약속을 며칠 만에 또 뒤집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다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비대위원장을 내세우고, 친박계가 압도적인 전국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려 할 것이다. 당내 비판세력을 쫓아내고 560억원에 이르는 당 재산을 고스란히 승계한 채 친박만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게 그들의 속셈이다.

 친박 세력의 눈에는 자기들이 초래한 국가위기 상황도, 정부·국회 협의체를 구성해야 하는 절박함도 안 보이는 모양이다. 보수정당의 혁신적 재구성을 위한 용퇴도 없다. 이들은 “우리가 물러서면 보수가 죽는다”고 하지만 친박이야말로 보수 가치를 훼손하는 주범이다. 박근혜 정치와 좀비를 닮은 친박 정치세력이 완전히 죽어야 보수가 재건된다. 결국 촛불민심 같은 거대한 불길로 친박을 몰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