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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고차와 결혼, 탄핵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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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불확실성은 인간의 삶을 고단하게 한다. 뭐가 어찌 될지 모르면 합리적 선택이 불가능해지는 탓이다. 1978년 불확실성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 그는 “인지 능력의 한계로 인간은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설파했다. 대표적 사례가 중고차 구입과 결혼. 마음에 든 중고차와 배우자감의 장단점을 완벽히 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불확실성은 비용도 증가시킨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모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언제 주문이 몰릴지 알 수 없으면 늘 재고를 쌓아 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숙명인 사고나 질병은 갑자기 발생하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특정 시기에 엄청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소비 패턴이 헝클어져 전체적 삶의 만족도는 줄어든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평소 일정액을 납부했다 일이 터지면 관련 비용을 커버하는 게 보험이다. 삶의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한 제도인 셈이다.

이렇듯 사회 구석구석에는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각종 장치가 마련돼 있다. 언제 어떤 법이 시행되고, 어느 때 허가나 단속이 이뤄질지 알려 주기도 한다. 입법 예고제, 건축허가 예고제, 단속 예고제 모두가 그런 사례다.

요즘 우리 사회는 중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언제, 어떻게 내려질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탄핵 인용 시 60일 내에 대선을 치른다는 사실이다. 탄핵 결정 시기와 대선 일정이 맞물려 있는 셈이다.

탄핵 결정 시기가 불확실하니 향후 정치일정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선출될 새 대통령이 언제부터 일할지도 오리무중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 아닌 한 일상업무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중요 정책들도 마냥 미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시위대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탄핵 결정을 빨리 내리라고, 아니면 신중히 처리하라고 헌법재판소에 몰려가 데모를 할 가능성도 크다.

며칠 전 한 법대 교수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눈길을 끈다. “헌재에서 자료를 검토한 뒤에 언제쯤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히는 건 어떠냐”는 것이다. 결정 시기를 예고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조항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헌재가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 윤곽이라도 밝힐 수 있을 때가 되면 “언제쯤 탄핵 결정을 내리겠다”고 예고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