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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겁찰’ 소리 들은 검찰…특수본, 우병우 부르지도 못하고 수사 접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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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13층 회의실. 검찰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지만 예상 외로 분위기가 썰렁했다. 검찰이 공식 수사 발표가 아닌 출입기자단과의 ‘티타임’ 형식으로 발표하길 원해 방송사 촬영기자와 신문사 사진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왜 우병우 조사 안 했나” 질문에
“특검에 넘겼습니다” 답변
스스로 미완의 수사 인정한 셈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들어와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후 “검사 44명 등 총 185명 규모의 특수본을 구성해 412명을 조사했다” “150개소를 압수수색하고 73명의 계좌를 추적했다” 등 수사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이어진 여러 질문에 대해서도 친절히 답해 줬다. 하지만 그는 유독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된 부분에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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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우병우

최순실씨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장모인 김장자씨와 골프 회동을 했다는데 확인해 봤습니까(※11월 28일 최씨 측근 차은택(47·구속)씨의 변호인이 “우 전 수석 장모와 최씨가 함께 골프를 쳤다”고 주장했다).
“그런 것들은 특별검사에게 인계를 했으니까요….”
우 전 수석을 소환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 전 수석 집과 관련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는데 왜 조사를 안 했습니까.
“특검에 넘겼습니다.”

시간을 한 달 전쯤으로 돌려 보자. 지난달 7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우 전 수석도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그의 직무유기 의혹도 규명하라는 취지의 의견을 수사본부에 전달했고 수사본부는 곧바로 우 전 수석을 출국금지시켰다. 이어 그의 집(11월 10일)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사무실(11월 23일)도 압수수색했다.

이후 우 전 수석과 관련한 수사 범위는 ▶최씨 및 그의 측근들 비위 묵인 ▶롯데 압수수색 정보 유출 ▶청와대 민정수석실 입성 배경 ▶변호사 시절 ‘몰래 변론’ 등 여러 의혹으로 계속 확대됐다. 그러자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을 좌지우지했던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기소 여부가 검찰 수사 성과를 가를 것”이란 말도 나왔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우 전 수석을 불러 보지도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에 대해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하도 강도 높게 수사해 야당으로부터 ‘다리가 부러져 거동할 수 없게 된 사자에게 떼로 달려드는 하이에나’(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라는 말까지 들은 검찰이 이상하리만치 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겁을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우 전 수석을 수사했던 ‘윤갑근 특별수사팀’은 소환조사 때 검사가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고 우 전 수석은 팔짱 낀 채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겁찰(겁먹은 검찰)’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검찰은 국정 농단 의혹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지목돼 온 그를 결국 특검으로 넘겼다. 그와 최씨의 관계는 여전히 베일 속에 있다. 검찰총장의 지시도 소용없었던 미완의 수사임을 자인한 셈이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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