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 죽어도 창조경제는 살려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한국 역사상 가장 무서운 3대 대란(大亂)이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한국동란(6·25전쟁)·김영란이란 우스개다. 김영란법에 따른 소비절벽이 심각하다. 가계소비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미래가 겁나니 기를 쓰고 저축한다. 올해 가계저축률은 8.66%로 수직 상승했다. 저축이 경제 발목을 잡는 이른바 ‘저축의 역설’이다. 당연히 내년 성장률 전망은 암울하다. 대부분 올해보다 낮은 2.5%다. 한국 외환위기를 미리 경고했던 일본 노무라증권은 무려 1.5%로 후려쳤다.

당장 발등의 불은 금리와 환율이다. 이번 주(1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릴 게 분명하다. 경제 기초체력이 너무 좋은 데다 1조 달러 인프라 투자로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덩달아 기준금리를 올릴지는 의문이다. 한 금융통화위원은 “미국이 예외일 뿐 유럽·일본 등 더 많은 나라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에 매달리고 있다”며 “경기부양과 1300조원의 가계부채를 감안하면 오히려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 판”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금리 인상도 시간문제다. 우선 시중금리부터 치솟고 있다. 이미 3%대 주택담보대출은 씨가 말랐다. 9월보다 1%포인트 오른 연 5% 상품까지 등장했다. 만약 미국이 내년에 0.25%씩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우리 기준금리(1.25%)에 육박하는 1%가 된다. 이 경우 내외 금리차가 좁혀져 외국인 자금이 무더기로 빠져나갈 수 있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환율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때 원-달러 환율은 1110원에서 1200원까지 뛰었다. ‘수퍼 달러(달러 강세)’에 따른 외국 자금의 이탈을 막으려면 한은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세계는 몸살을 앓았다. 1994~95년 3%포인트 올렸을 때 아시아 외환위기가 일어났고, 2004~2006년 4%포인트 인상한 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이번에는 미국도 신중한 입장이다. 올해도 몇 차례 금리를 올리려다 브렉시트와 중국의 경기 냉각 때문에 덮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금리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올릴지 문제일 뿐이다. 초저금리 시대는 저물고 있다.

내년부터 한국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을지 모른다. 가계 부채도 겁난다. 소비와 투자, 수출도 움츠러들 것이다. 하지만 ‘농부는 3년 흉년에도 종자(種子)는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일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탄핵보다 더 걱정스러운 게 있다. ‘최순실 예산’으로 지목된 창조경제와 한류 예산이 난도질당하는 것이다. 자칫 미래의 씨앗인 창조경제나 벤처까지 죽일까 두렵다.

대표적인 비교 사례가 그리스와 아이슬란드다. 이 두 나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뒤 서로 다른 길을 밟았다. 그리스는 독일의 압력으로 ‘무조건 긴축’의 길로 갔다. 공적 자금으로 부실 은행을 살려주는 대신 연구개발과 직업훈련 예산, 실업급여까지 깎아버렸다. 청년들의 희망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리스 청년들과 기업들은 해외로 탈출했다. 그 결과 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다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청년을 버리는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청년의 가치를 깨닫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나라가 아이슬란드다. 부실 은행들은 망하게 하고 남은 재원을 몽땅 사회안전망과 직업훈련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 뒤 청년들이 대거 재기에 성공하면서 불과 2년 만인 2011년 2.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덩달아 정치도 안정됐다. 포퓰리즘을 앞세운 ‘해적당’ 지지율이 43%까지 치솟았다가 지난달 총선에서 14.5%의 득표율로 주저앉은 것이다. <그림 참조>

일본 정부도 ‘잃어버린 20년’을 회고하며 “너무 많은 재정을 좀비 기업이나 토건사업 등 비효율적 분야에 쏟아부었다. 연구개발과 직업훈련 같은 인적 자본에 집중했으면 경제가 더 빨리 살아났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우리에게 귀중한 반면교사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안타까운 대목도 창조, 벤처 등 젊은이의 희망이 정치적으로 오염되고 잘못 소비된 것이다. 박근혜는 탄핵돼도 창조경제는 살려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씨앗은 지켜야 한다.

이철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