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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흉상 훼손한 30대 경찰에 입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을 훼손한 최모(32)씨를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최씨는 지난 4일 영등포 문래근린공원에 있는 박 전 대통령 흉상에 페인트를 칠하고 망치로 쳐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흉상 얼굴 일부가 훼손됐다. 최씨는 흉상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철거하라"고 적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최씨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정희 흉상 철거 선언문을 남겼다.

최씨는 글에서 "'5·16 군사혁명'이 5·16 군사정변으로 바뀌며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임을 천명한 것은 역사학계의 꾸준한 연구 성과와 노력이 반영된 결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정희는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만주군에 합류한 친일 군인이었고,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으며, 경제발전을 빌미로 수많은 비민주적 행위와 법치를 훼손한 인물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 '빨갱이'라는 낙인효과를 만들어낸 악인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 스스로 이런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고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최씨는 또 "정치인은 숭배돼서는 안 되며,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업적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모든 행위는 근절돼야 마땅하다"며 "망치로 수차례 내리친 흉상(胸像)은 흉상(凶像)이 됐다. 흉상(胸像) 철거에는 근거가 없겠으나 흉상(凶像) 철거엔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일에는 백모(48)씨가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추모관에 불을 질러 영정을 포함한 내부가 타기도 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다음은 최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철거문 전문

<방치된 상징을 철거할 근거는 역사에 있다>

문래동 근린공원 박정희 흉상을 훼손하며.

'5.16'이 교과서에서 '군사정변'으로 표기된 것은 1996년 김영삼 정부 때의 일이다. 당시의 교과서는 이전 교과서의 용어들을 대폭 수정했는데, '4.19 의거'는 '4.19 혁명'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5.18 민주화 운동'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5.16 군사혁명'이 '5.16 군사 정변'으로 바뀌면서 그것이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임을 천명했다. 이는 역사학계의 꾸준한 연구 성과와 노력이 반영된 하나의 결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5.16 혁명의 발상지'라는 잘못된 상징이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관리되지 아니하고 여태 보존되어온 것은 우리가 노력해온 제대로 된 역사의식의 함양이라는 가치에 정면으로 대치된다.

또한, 국정농단의 중심이자 피의자로 지목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로의 회귀를 통해 이 역사를 다시 수정하려는 시도를 꾀했던 것에 대해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자라나는 학생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한국 사회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노력이었다.

또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해 제2공화국을 출범 9개월 만에 무너뜨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장장 32년간 이어진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장본인을 기념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문래동에 독재자 박정희의 흉상이 있는 이유는 1960년대에 그곳에 6관구 사령부가 있었던 탓이다. 사령부 관이던 박정희가 정권을 장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6관구 사령부의 의뢰로 1966년에 흉상이 제작됐다. 이후 1986년 같은 자리에 공원이 들어섰다. 철거하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었다. 지난 2000년 11월엔 시민단체 회원들이 흉상을 철거해 홍대로 옮겼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지난 11월 12일엔 박정희의 망령을 깨운다며 서울 도심의 아파트단지에 인접한 문래 근린공원에서 굿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정희의 흉상 앞에서 그런 일이 2016년에 벌어졌다. 이에 영등포구 주민들로 구성된 흉상 철거 주민대책위원회까지 꾸려져 관계 당국이 나서 철거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흉상 철거를 언급했지만 서울시엔 그럴 권한이 없다. 때문에 영등포구 측도 난색을 표했다. 시의회 회의록을 보니 철거할 수 있는 규정이나 근거가 없어 전문가들과 근거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근거는 역사에 있다. 박정희가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만주군에 합류한 친일 군사였고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으며 경제발전을 빌미로 수많은 비민주적 행위와 법치를 훼손한 인물이며 한국 사회에 '빨갱이'라는 낙인효과를 만들어낸 악인이라는 것을 적어도 이제는 우리 사회 스스로 고백하고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박정희의 모뉴먼트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지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문래동의 흉상에도 '5.16 혁명의 발상지'라는 잘못된 사관에서 나온 문장이 적혀있다. 혁명이란 단어를 쿠데타, 반란 등으로 교체하기 위해 거대한 인식과 싸워온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하니 혁명의 발상지라 적힌 뻔뻔한 구시대적 환각이 서울 시내 한복판, 아파트단지 옆, 누군가에겐 휴식의 공간인 공원, 누군가에겐 출퇴근과 등하교를 위해 지나치게 되는 길에 세워져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망치로 수차례 내리친 흉상(胸像)은 흉상(凶像)이 됐다. 흉상(胸像) 철거에는 근거가 없겠으나 흉상(凶像) 철거엔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파트단지 옆, 근린공원에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지난 2000년도에 한 시민단체에 의해 홍익대로 옮겨졌다 복귀되는 과정에서도 '재물손괴' 등의 소유권 문제에 대한 법리적 판단이 없었다는 것, 그 헤프닝을 통해 훼손된 흉상을 한 시민단체 회원이 사비를 털어 복원했다는 것은 이것이 '방치된 상징'임을 증명한다. 소유권마저 불분명한 '방치된 상징'을 죽이는 일에 더이상 어떤 근거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소유권도 관리 주체도 책임의 소재도 불분명한 흉상이 버젓이 서 있다는 것, 행정적으로 공백의 상태에 존재한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 정치인은 숭배되어서는 안 되며,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업적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모든 행위는 근절되어야 마땅하다.

덧붙여 어제 나에게 박정희 흉상을 녹여 김재규 흉상을 만들 아이디어가 없었다는 것에 안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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