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의 향기

우리 시대의 멋진 포토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윤 주 지역전문가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윤 주
지역전문가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합쳐지는 양수리 두물머리와 조안면 북한강 물의정원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액자 포토존’이 있다. 그곳에 가면 아름답게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배경 삼아 서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포즈로 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장소를 사진으로 즐긴 사람들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런 모습을 공유한다. 자신이 들렀던 장소를 ‘사진 찍기 좋은 곳’, 이른바 ‘포토존’으로 추천하며 ‘인증샷’을 통해 “여기 가봤어”라며 자랑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사진을 올리고 추천하는 포토존은 너도나도 가고 싶은 장소로 손꼽히게 되고, 인근 맛집이나 체험 공간과 더불어 그 지역의 명소가 된다. 경우에 따라 멋진 포토존으로 소문난 장소는 광고와 드라마 등 부가적 스토리의 주요 배경으로 활용되거나 그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이제 우리는 텍스트보다 영상과 이미지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과 각종 SNS를 통해 나라를 넘나들며 기념할 만한 장소와 도시 특징을 담은 풍경 등을 공유한다. 요즘은 온갖 ‘인증샷’을 주고받으며 공간적·물리적 거리를 더욱 좁혀가고 있다. 본 것을 기록하고 묘사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고, 사진으로 나누는” 시대인 것이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브루클린 브리지’, 파리 ‘에펠탑’, 런던의 ‘빅 벤’, 온타리오의 ‘나이애가라 폭포’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전 세계의 대표적 포토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렴풋이 그 이미지만 알고 있을 뿐 자유의 여신상이 만들어진 사연이라든지, 에펠탑 안에 담긴 스토리, 그리고 나이애가라 폭포의 물이 어떻게 흘러오는지 등은 잘 모르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고, 그런 인증샷을 타인과 나누려 할까. 그것은 그 사진 속에 나를 담아 당시의 배경이 되는 장소성과 더불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인증샷을 주고받는 것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서로 마음의 거리까지 좁히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사진 찍기 열풍에 오늘날 많은 나라가 포토존을 만들어 관광 자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전략 없이 다른 유명 랜드마크를 모방하거나 단발성 기획으로 급조돼 오히려 흉물이 돼 버린 포토존도 적지 않다. 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져도 그 지역의 역사나 시대 상황과 어우러지는 스토리가 덧붙여질 경우 포토존의 의미와 아름다움은 배가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늘날 그런 대표적인 핫플레이스 포토존을 하나 만들어 가고 있는데, 바로 촛불광장이다. 현 시대 상황이 결부돼 너도나도 찾고 있는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의 광장을 수놓는 촛불과 메시지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이를 SNS로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감히 “광장 포토존”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포토존 ‘인증샷’은 주로 장소를 공유하는 의미를 가져왔다. 하지만 촛불광장의 인증샷을 주고받는 것은 장소나 시대적 의미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과 정체성까지 더해 역사의 한 풍경을 공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시대의 분노와 뜨거움이 촛불 인증샷을 통해 들불처럼 번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슴 뜨거운 인증샷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힘이 되고 있다.

촛불광장은 촛불만이 아니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치켜든 피켓 문구와 깃발을 통해서도 시대성과 역사성이 빛난다. 그리고 촛불광장의 열풍은 그곳에서 행동하는 사진을 남기고 인증하는 행위를 통해 그 자체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메시지가 된다. 광장 포토존의 인증샷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고, 사진으로 말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며 풍경이 될 것이다. 아마 그 중심인 광화문광장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이야기의 주요 배경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며, 지금 우리를 빛나게 기억하게 만들 ‘광장 포토존’으로 오랫동안 인증될 것 같다.

윤 주
지역전문가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