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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으로 뜬 박근혜 탄핵으로 질 위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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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심판 전까지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야하는 처지가 됐다. 이로써 탄핵은 박 대통령의 정치 경력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앞서 박 대통령을 정치권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시킨 것도, 이번에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 넣은 것도 바로 탄핵이기 때문이다.

1998년 4월 2일 대구시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1998년 4월 2일 대구시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사진=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태 이전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2년 4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당 운영 방식이 “제왕적”이라며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만에 대선을 앞두고 복당하는 등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4년 3월 12일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정치인 박근혜’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난다.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드는 등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탄핵 직후 이뤄진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은 10%(열린우리당 34%, 민주당 6%)까지 추락했다. 한나라당이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50석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왔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이런 탄핵 역풍을 맞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한나라당을 구한 '구원 투수'가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임시 전당대회에서 홍사덕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되며 정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대표 선출 직후 “지금 여의도 당사로는 들어가지 않겠다. 필요하면 천막이라도 쳐서 그곳으로 들어가겠다”고 배수 진을 쳤다.

2004년 3월 24일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차린 박근혜 신임 대표가 기자회견을 위해 천막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04년 3월 24일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차린 박근혜 신임 대표가 기자회견을 위해 천막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박 대표는 실제 다음날 국회 앞 한나라당 당사의 현판을 내리고 여의도 공원에 천막과 컨테이너를 설치하는 것으로 대표 일정을 시작했다. 전기·수도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막당사에서 풍찬노숙을 한 박 대통령은 동정여론을 얻었다. 일부 “정치 쇼”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도 있었다.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 정서가 치솟은 상황에서 총선 참패로 대표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4월 15일 열린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기사회생했다. 제1당을 열린우리당(152석)에 내줬지만 121석을 얻으며 개헌저지선(100석)을 확보했다. 덩달아 박 대표의 정치적 위상도 급등했다. 소위 ‘박풍(朴風)’ 신드롬을 일으키며 잠재적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같은해 7월에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재신임을 얻으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8년 뒤인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11월 29일 대국민 3차담화를 위해 청와대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중앙포토]

11월 29일 대국민 3차담화를 위해 청와대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중앙포토]

12년 뒤, 박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탄핵안 가결로 벼랑 끝에 서게됐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더 나쁘다. 당시엔 각종 여론조사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70%에 달했다. 국회가 민의(民意)를 거슬렀다는 평이 많았다. 반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4~5% 수준까지 추락했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 참석자는 전국 총 232만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43만명)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갱신했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특검도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화려하게 직무에 복귀한 노 전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퇴진이 확정될 경우 특검 결과에 따라 구속 및 기소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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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으로 떠올랐다가 탄핵으로 질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손에 달렸다. 헌재 심판은 앞으로 180일 내에 판가름 난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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