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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료 46% 낮춘 트럭 2대분 서명부…시민이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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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 구간 통행료 인하를 촉구하는 주민 216만 명의 서명부가 실린 트럭이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다. [사진 노원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 구간 통행료 인하를 촉구하는 주민 216만 명의 서명부가 실린 트럭이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다. [사진 노원구]

지난해 12월 말 오후 3시 세종시 국토교통부 건물 앞으로 1t 트럭 두 대가 들어섰다. 서울 노원구청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여 만이었다. 트럭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 구간(2007년 개통, 총 연장 36.3㎞)의 통행료 인하를 촉구하는 주민 216만 명의 서명부가 실려 있었다.

남부 구간보다 세배 가까이 비싸
‘요금 깎아야’ 고양서 첫 서명 시작
노원 47만 명 참여로 탄력 받아
15개 지자체 주민 216만 명 동참

서명은 경기 고양·의정부·파주시와 서울 노원·강북·은평구 등 이 도로가 지나가는 15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들이 한 거였다. 이를 전달받은 국토교통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8년여 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국토부는 그달에 바로 ‘통행료 인하 방안 연구 용역’에 착수한 것이다. 그로부터 11개월이 흐른 지난 5일 국토부가 북부 구간 통행료를 내년 말부터 현행보다 30~46%가량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4800원에서 2616~3385원으로 낮춰 받겠다는 것이다.

신태상 국토부 도로투자지원과 사무관은 “현 민간 사업자(국민연금관리공단이 주축인 ‘서울고속도로㈜’)와의 계약은 2036년에 끝난다”며 “이후 2037년부터 도로 운영을 맡을 신규 사업자를 내년 말에 선정하는데 해당 사업자에게 초기 투자비 명목의 자금을 내도록 해 요금을 인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북부 구간은 개통 직후부터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당 이용요금은 132원. 같은 도로의 남부 구간(㎞당 50원)보다 세 배 가까이 비쌌다.

통행료 인하 서명 운동은 이 구간 개통 전인 2006년부터 경기도 고양시가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8월 서울 노원구민들이 가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노원구 토박이인 명영학(58) 월계3동 주민자치위원장, 신동미(66) 전 통장연합회장 등 구민 200여 명과 노원체육회 및 학부모 모임 등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이들은 통행료 인하를 위해 ‘노원 주민 결의대회’도 열었다.

서명에 참여한 주민 임윤영(59)씨는 “어떻게 같은 도로인데 강남 지역인 남부 구간과 통행료가 세 배 차이가 날 수 있느냐. 노원구같이 서울 북부 지역은 대부분 ‘베드타운’이라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주민이 많다. 북부 구간을 이용하는 장거리 출퇴근자는 통행료로만 하루 1만원씩을 쓰는 셈”이라고 분개했다. 실제 강서구 화곡동으로 출퇴근하는 주민 최근원(40)씨는 30~40분이면 직장에 도착하는 북부 구간 대신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내부순환도로와 강변북로 등을 이용한다. 이는 왕복 6000원(의정부IC 진출입 시)인 통행료가 부담스러워서다. 이런 이유로 석 달 만에 노원구민 47만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노원구 인구는 약 58만 명이다. 임창식(66) 자치위원회장은 “구민 10명 중 8명이 서명을 했다”며 “영유아를 빼면 사실상 거의 모든 구민이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청도 힘을 보탰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정책조정비서관을 지낸 김성환(51) 노원구청장은 고양시와 의정부시, 서울 도봉·은평구 등의 기초단체장과 함께 ‘15개 지자체 공동대책협의회’를 결성해 통행료 인하를 요구했다. 또 홍보 영상물을 만들어 구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꾸준히 제공했다. 그 결과 고양시(66만 명), 의정부시(23만 8000명), 서울 강북구(19만7000명) 등의 주민들이 호응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서울외곽순환도로 요금 인하 운동은 시민의 힘으로 민자사업에 변화를 준 가치 있는 사례”라며 “국가재정사업이든 민자사업이든 정책 초기 단계에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 추진하는 ‘(주민)참여적 정책분석(PPA)’ 쪽으로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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