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영태·최순실 ‘개싸움’에서 국정농단 게이트가 열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정 농단 청문회 현장 스케치

‘최순실의 남자’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는 웃었고, 최순실씨를 등에 업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던 권력 실세들은 고개를 숙였다.

고씨 “최씨가 맡긴 정유라 강아지
집에 두고 골프치러 갔다고 틀어져”
야당·비박 의원들에게 고씨 인기
박영선 “넥타이 비뚤어졌다” 조언도

7일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장 안팎 풍경은 그렇게 대비됐다.

◆의기양양 고영태

청문회는 ‘고씨의 폭로→실세들의 해명’식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오전 청문회가 끝나자 그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식사라도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고씨는 국회 간이식당에서 어묵 등 분식을 먹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2년 전인 2014년께 “정유라의 강아지 때문에 최순실과 다퉜다”고 말했다. 고씨는 “최순실이 딸 정유라가 키우던 강아지를 잠깐 맡아 달라고 했는데 내가 골프를 치는 동안 최씨가 강아지를 찾으러 왔다”며 “강아지를 집에 두고 혼자 나갔다고 싸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천 기사

2012년 최씨와 알게 된 고씨는 그때 사이가 벌어져 대통령의 옷을 만들던 자신의 의상실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는 등 ‘공격’을 준비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최순실 사태의 발단이 ‘정유라 강아지’였다는 취지였다.

고씨는 청문회 정회 때마다 기자들에게 거침없는 말을 했다. 그는 국조 특위 위원들을 겨냥해 “시간이 7분인데 저한테 같은 질문을 계속하니 시간이 아깝다. 한 번 들었으면 끝을 내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은택씨 오늘 발언은 어떤가.
“차은택씨? 솔직하게 하시는 것 같던데요. 거짓말 제일 많이 하는 건….”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말인가.
“하하하….”
최씨는 어떤 사람인가.
“직접 일해 보면 알 텐데. 어떻게 말로 설명하나. 스트레스다.”
<b>우병우 데려와라</b>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는 증인 27명 중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13명만 참석했다. 특위는 최순실씨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불출석한 증인들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김성태 위원장(왼쪽)이 국회 경위들에게 동행명령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우병우 데려와라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는 증인 27명 중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13명만 참석했다. 특위는 최순실씨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불출석한 증인들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김성태 위원장(왼쪽)이 국회 경위들에게 동행명령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그는 청문회 정회 중 기자들과 만나 “우병우(전 민정수석) 장모인 김장자씨와 (최씨가) 골프를 쳤다는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장모님이면 노인일 텐데 제가 기억을 못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씨는 “하정희 교수, 최순실씨, 나, 내 후배가 골프를 친 적은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정회 중 “TV에 넥타이가 비뚤어지게 나온다”고 말을 건넸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억울함을 풀어 보라는 의미로 “이 기회를 잘 살려 보라”며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하 의원의 식사 제안은 고씨가 거절했다.

◆기자 보고 질겁한 왕실장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화장실에 가려고 청문회장 밖으로 나왔다가 “안이 더 편하겠다”며 도로 청문회장으로 돌아갔다. 복도를 가득 메운 취재진을 보고서다.

김 전 실장은 청문회 내내 시종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의자에 깊숙이 기대 있다가 질문을 받으면 펜을 꺼내 들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답했다. 질문이 끝나면 명단에서 질의를 마친 의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특검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왕실장이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나오자 국회 직원들이 “차가 대기하고 있다”며 그를 안내했다. 정회 중엔 검찰 후배인 새누리당 최교일 의원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반면 ‘최순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고씨가 기자들 앞에서 사실상 회견을 하고 있던 시각,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렸던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을 비롯해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은 교도관의 입회 아래 청문회장 옆방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관련 기사

◆유체이탈 장시호

오후 3시26분, 청문회장에 긴장감이 흘렀다. 출석을 거부하던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청문회장 옆 대기실에서 포승줄을 풀고 여성 교도관 2명에게 이끌려 입장하면서다.

증인들의 시선도 일제히 장씨에게 꽂혔다. 청문회 내내 “최순실을 모른다”고 주장했던 김 전 실장도 힐끗 장씨를 바라봤다. 장씨는 “증인 중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증인석을 한참 동안 훑어봤다. 그러고는 김종 전 차관과 차은택씨를 지목했다. 김 전 실장은 아는 사람으로 꼽지 않았다.

장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박 대통령이 장씨의 결혼식에 참석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그해(2006년)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남의 얘기하듯 했다.

지난 10월 30일 최씨가 독일에서 귀국한 뒤 만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엔 “안 만났다. 연락은 공중전화로 했다. 유연(정유라의 개명한 이름)이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씨에 대해선 ‘최순실씨’ ‘최순실’ ‘최순실 이모’ 등의 호칭을 번갈아 사용했다.

글=강태화·안효성 기자 thka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