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외국인 관장의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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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5일 취임 1년 간담회에서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2017년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5일 취임 1년 간담회에서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2017년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최초 외국인 관장으로 주목받은 바르토메우 마리(50)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취임 1년을 맞아 5일 서울 삼청로 서울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내세우며 지난해 12월 14일 임명장을 준 스페인 출신 큐레이터(학예연구사)다. 불투명한 선임 과정, 한국 미술인들의 반대 성명 발표 등 어수선한 가운데 국현의 최고 지위에 올랐던 그는 올 한 해, 별 존재감 없는 관장으로 자리를 지켰다.

취임1년 맞아 ‘중점 사업’ 발표
고품질 영문 도록 프로젝트 강조
미술계 개혁 기대와 동떨어져

이날 마리 관장은 국현의 2017년 ‘전시 라인업’ 및 ‘중점 사업’을 발표하며 시스템의 혁신과 중장기 전시전략 수립을 강조했다. 부임 첫 해, 글로벌한 혜안 제시를 기대했던 임명자의 희망과 달리 가시적 성과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 그로서는 “세계무대를 중점에 둔 ‘마리 프로젝트’ 본격 시동” 같은 강력한 한 줄이 필요했을 것이다. 2016년 전시 기획이 이미 전임자의 손에서 확정된 뒤라 어찌 해볼 수 없었다며 양해를 구하는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간담회에서 마리 관장이 되풀이한 핵심은 출판 프로그램의 총괄 담당자를 지정해 전시도록의 영문 간행과 보급으로 한국 미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고품질 영문 도록만 나오면 한국미술이 세계로 금방 뻗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스페인 마드리드미술관과의 협약서 체결, 영국 테이트 아시아 연구센터와의 아시아 미술에 관한 심포지엄 개최 등 자신의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한 프로그램 소개는 정작 한국 미술계가 기대한 국현 개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지난해 대비 45%가 늘었다는 전체 예산, ‘마리 프로젝트’로 신규 42억 원을 확보했다는 보고는 돈 잔치로 흐를까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마리 관장은 국현 법인화 상황, 이지윤 서울관 운영부장 사퇴 등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에 대한 대처를 묻는 질문에 답을 얼버무렸다. ‘월간 미술’ 12월호가 제기한 ‘마리 관장의 자진 사퇴’에 대한 소신을 묻자, “좋은 전시를 보여줄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많다”며 넘어갔다. 유럽에서 ‘놀던’ 전문가가 아시아에 와서 현장 파악을 하기에 1년은 너무 짧은 시간인지 모른다. 하지만 ‘첫 술에 배 부르랴’는 속담으로 두둔하기엔 지금 한국 미술의 현실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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