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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오바마의 성공과 박근혜의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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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탄핵이든 임기 단축이든 박근혜 대통령의 중도하차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이 파국을 맞고 있는 것에 반해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최고 지지율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임기를 마무리하고 있어 우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200년 이상의 민주주의의 경험을 가진 나라와 맞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또다시 실패한 대통령이 출현하지 않도록 무엇이 성공과 실패의 차이를 만드는지 짚어보자.

박 대통령은 국회가 발목을 잡아 일을 할 수 없다는 하소연을 많이 했지만,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보다 훨씬 어려운 구조에서 일해야 한다. 먼저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과 달리 반쪽 인사권만을 행사한다. 대통령 비서실에 대한 인사를 제외한, 모든 정무직 인사는 의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미 행정부는 한국과 달리 법안 제출권이 없으며 대통령이 의회의 의사운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행사한 2건의 거부권은 모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것이었는데, 미국은 우리의 국회법에 해당하는 의사규칙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어 의회는 완전한 의사운영의 자율성을 누린다.

우리는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국회에서 크게 수정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는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정부안이 그대로 본회의에 자동부의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행정부가 제출하는 대통령예산안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미국 의회가 만드는 세출법은 항목별 숫자를 나열한 도표가 아니다. 어느 항목에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지출해야 하고 어떤 방식은 안 되는지 세세하게 말로 풀어 쓴 법률안으로 행정부에 대한 미세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박 대통령은 ‘자기 정치’를 한다는 이유로 원내대표를 찍어내고, 그것도 모자라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공천에서 탈락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하원 435명, 상원 100명이 모두 자기 정치를 한다.

이들 중에는 오바마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정치를 한 의원도 있고, 오바마가 퇴임하고 난 이후에도 수십 년 더 정치를 할 의원도 있다. 그들 중 누구도 오바마가 공천을 준 것이 아니며, 따라서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의회를 원격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은 우리처럼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들이 호선한다. 또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은 재수 없으면 대법관 후보를 한 명도 지명하지 못할 수 있다. 특별검사는 우리처럼 대통령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선택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특별검사의 임명에 영향을 미칠 여지는 없다.

결국 미국 대통령제는 철저한 3권 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체제이기 때문에 특정인이 인사를 독식하고, 특정인이 국가예산을 곶감 빼먹듯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과 행정부가 독주하던 권위주의 시절의 제도적, 관행적 잔재가 남아 있어 매 정부마다 친인척과 측근의 국정 농단으로부터 못 벗어나고 있다. 이제는 아들이나 가족이 없는 후보를 찾을 것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그물을 촘촘히 짜는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오바마는 2008년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미국의 조타수를 맡아 10%에 이르는 실업률을 5%대 이하로 감소시키고, 미국의 수출은 27% 늘리고 무역적자는 24% 줄이는 기록을 세웠다. 또 조세체계를 개혁하고,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한을 강화하고 무엇보다도 오바마 케어를 통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미국인 수를 크게 줄였다.

이렇게 오바마가 성과를 낸 것은 우리와 같이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타협과 소통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상원의원 오바마는 가장 진보적인 의원이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의 오바마는 공화당을 지나칠 정도로 존중했고 진보적 목표를 보수의 언어로 호소했다. 공화당을 시원하게 공격해 주기를 원하는 일부 지지자들에게는 불만스러운 것이었지만, 오바마는 목표를 상실해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서는 타협해야 한다는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

오바마는 품격 있는 소통가였다. 루스벨트와 케네디 대통령 이후 최고의 달변가로 평가받는 그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인터넷 전화, 토크쇼, 웹캠 등 국민을 만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이용했다. 또 그는 다양한 의견을 들어 집단사고로 인한 극단화의 우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했다. 그들(they)과 같은 갈라치는 용어가 아니라 우리(we)라는 통합의 언어를 사용했고,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이 망가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찰스턴 교회 총격사건 후 연설에서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노래를 불렀고, 오바마의 유머의 대상은 대부분 자신이었다.

결국 상대를 적으로 몰고 자신들만 선인 듯이 구는 정치지도자와 정치집단은 성공하지 못한다. 국민의 분노에 편승해 말만 선명하게 하는 정치인과, 정치권과 국민을 아울러 성과를 만들어낼 정치인을 구분하는 국민의 안목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열쇠다.

김 민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