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광장의 외침은 현실성을 따지거나 결과를 책임지지도 않는다. 그것을 제도권으로 수렴해 합리적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정치권, 특히 현 시국에선 야당의 몫이다. 그런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로지 ‘9일 탄핵’만을 외치고 있다.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이나 정치적 혼란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성난 민심을 업고 박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내린 뒤 60일 안에 대선을 치르면 손쉽게 집권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하지만 오산이다. 촛불은 박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단죄이지 야당 특정 정파의 전리품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원하지만 난국 상황을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행태엔 거부감을 가진 국민이 많다.
물론 야당이 탄핵이란 극단적 카드를 추진하게 된 데에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비주류마저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다”고 돌아섰겠는가. 하지만 야당은 이런 때일수록 국정의 공동책임자로서 차원 높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수명을 다했다. 내년 1월이든 4월·6월이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건 이미 상수가 됐다. 그렇다면 나라와 국민에 정작 중요한 것은 다음 정권이다.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섣불리 탄핵을 강행하면 대선 일정이 불투명해지고, 경선이 공정하게 치러지지 못해 대선의 정통성에 치명상을 남길 수 있다. 그럴 경우 가장 큰 피해는 야당에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야당은 박 대통령이 구체적인 퇴진 일정을 제시하고 모든 권한을 책임총리에 넘긴다고 선언한다면 여당과의 협상 테이블에 되돌아와야 한다. 여야가 합의해 대통령 퇴진 로드맵을 확정 짓고, 국민의 신망을 받는 인사를 총리로 추천해 거국내각을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거꾸로 박 대통령이 계속 침묵만 지킨다면 비박계와 손잡고 9일 탄핵에 돌입하면 된다. 야당도 마지막까지 ‘질서 있는 퇴진’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탄핵의 정당성과 야당의 수권 가능성을 한층 높이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