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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계는 돌아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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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탄핵, 그리고 촛불. 지난주 화요일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본 신문이나 싱가포르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토요일 아침에 본 신문 헤드라인이나 마치 같은 날 발행한 신문인 양 거의 똑같다. 고작 5일쯤이야 뭐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벌써 몇 달째 한국의 시간이 같은 자리에 멈춰 있다는 거다. 처음엔 촛불 인파 100만, 저번 주엔 190만, 이번 주엔 230만 명, 그리고 청와대 앞 300m, 200m, 100m 진출. 한국 안에서는 이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진일보하며 대단한 성취를 이뤄냈다고 저마다 의미 부여를 한다. 마치 개개인의 사적인 삶이나 다른 이슈는 아예 없는 듯 모든 언론 매체는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전부 탄핵과 촛불을 분석하기에만 바쁘다. 하기야 대단한 팬덤을 지닌 빅뱅조차 한 달 전에 소속사 사장인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와 함께한 파티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이 시국에 정신 차려라’는 식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정도이니, 누군들 용감하게 시국과 맞지 않는 얘기를 꺼낼 수 있겠나.

이렇듯 안에서 끼리끼리 있을 땐 부지불식간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세상 관심사의 전부이고 세계의 시간 역시 우리와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줄로만 안다. 하지만 딱 한 발만 떨어져 바라봐도 한국의 시계는 탄핵과 촛불이라는 블랙홀에 빠진 채 제자리에 멈춰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멈춰 있지만 남들은 멈춰 있지 않다. 결국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뉴욕타임스가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연 ‘럭셔리 트래블 콘퍼런스’에서도 그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세계 여행업계의 거물들이었다. 가령 버진 갤럭틱에선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공학자 출신인 베스 모지스 최고 우주비행 교관(Chief Astronaut Instructor)이 참가해 현실로 다가온 민간 우주 관광사업을 소개했다. 불과 한두 시간짜리 우주 비행에 한국 돈 3억원에 가까운 25만 달러나 내야 하지만 이미 700여 명의 예약이 밀려 있는 상품이다. 모지스에게 받은 명함엔 버진 갤럭틱이 내놓은 새 우주선 스페이스십2 사진과 함께 ‘우주는 버진의 영토(SPACE IS VIRGIN TERRITORY)’라는 대담하고 도발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상품을 내놓는 사람이나 그걸 거액을 주고 시도하려는 사람이나, 무모해 보이는 이런 도전이 늘 인류를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 왔다.

정작 갈 길이 먼 우리의 시계가 멈춰 있는 사이 세계의 시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