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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 잠 못 이루는 여의도

중앙일보

입력

표창원 의원. 김상선 기자

표창원 의원. 김상선 기자

“말도 마십시오. 휴대전화 진동 소리 때문에 밤새 한 잠도 못잤습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새누리당 초선의원은 4일 오전 전화통화에서 “지금도 휴대전화 벨소리나 진동만 들으면 신경이 곤두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여의도가 때아닌 불면증과 더불어 휴대전화 불안 증후군을 호소하고 있다. 1일 야권의 탄핵소추안 발의가 실패하자 이에 항의하는 전화가 새누리당 비박계와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지난달 30일 탄핵 찬반 의원의 명단을 자의적으로 정리해 공개한 뒤, 공교롭게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공유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의 정병국 의원은 ”새벽에 어떤 여학생이 전화했길래 그동안 내가 해왔던 발언과 입장에 대한 기사를 보고 다른 생각이 있다면 전화해 달라고 했다”며 “이후에 ‘정말 감사하다. 미처 파악 못해 죄송하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오신환 의원이 “문자가 너무 몇 백개가 들어와서 우리끼리 문자 보낸 것도 잘 못볼 정도”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진석 원내대표는 “의원님들과 똑같은 일을 당하면서 홍위병들을 앞세운 대중 선동에 의한 정치가 떠올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1일 민주당의 탄핵안 발의 제안을 거절해 2일 표결처리를 무산시킨 국민의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앙당과 각 의원들의 지역 사무실은 쏟아지는 항의 전화 폭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문자메시지를 3만통 가량 받았다고 밝힌 박지원 원내대표는 아예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한편 새누리당으로부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당한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SNS를 통해 아예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사태를 초래한 표 의원이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비난의 화살을 피해보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표 의원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베 친구들, 괜찮으니까 계속 전화와 문자 주세요. 공격 받다보니 정까지 드네요”라며 고통을 호소하는 여당 의원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다. 표 의원은 3일까지 1만2925건의 문자메시지 및 1만여건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야권 관계자는 “표 의원에게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 중 상당수는 격려ㆍ지지의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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