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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폭력의 심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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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몇 년째 수능을 응시하다 부모와 내원했다. 반복된 좌절에 우울감이 있었다. 그는 내년에 한 번 더 보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모는 어디든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희망대학을 묻자 최상위권이 아니라면 대학을 갈 의미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가 부모를 설득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고교내신과 과거 수능과 모의고사 성적은 안타깝게도 공부를 더 한다 해도 목표를 달성하기엔 꽤 부족했다. 내가 사실을 지적하자 바로 표정이 돌변했다. 어떻게 정신과 의사가 위로와 용기를 주지는 못할망정, 팩트폭력을 하냐는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팩트폭력이란 말이 요새 많이 쓰인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사람에게 “아무리 오래 다녀도 대기업 연봉은 못 받아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한 예다. 사실의 충실한 전달만으로 상대방의 주장과 신념에 타격을 주는 행위를 세칭 ‘팩트폭력’이라고 한다. 이 단어의 유래는 영어권 인터넷에서 ‘팩트를 사용하지 마세요(stop using the facts)’란 표현을 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팩트 제시를 폭력으로 받아들이는 심리, 반대로 부인하지 못할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상대를 흔드는 심리는 무엇일까?


우선 희망이란 단어에 지친 사람들의 반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건 힘들다. 많은 이들이 위로와 힐링을 원한다. 서로를 다독여주고, 용기를 주고 받기를 원한다. 진실은 모르는 게 아니지만 일단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는 팩트폭력 피해자가 많다. 힘든 상황에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것은 정서의 품앗이와 같다. 그러나, 최근 일부에서는 끝없이 일방적 위로와 인정만 바라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피해자로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만을 갈구한다. 위로의 말을 해준다고 해도 만족이 없다. 자신만 위로받을 대상이고, 남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힘들 때 희망을 꿈꾸는 것은 잠시나마 위로가 된다. 하지만 힘들다고 다독임만을 바라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실패를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본능은 현실을 부정하는 방어기제를 작동하며 그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객관적 팩트를 폭력적이라고 여긴다. 마치 고개를 땅속에 처박은 채 사자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염소의 행동과 같다.


변화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객관적 팩트를 봐야만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직면(直面, confrontation)이라 한다. 요즘 팩트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폭력이 아닌 현실인식을 위한 수단으로 봐야할 경우도 많다. 팩트 제시를 무조건 폭력행사와 동일시하는 것은 여전히 현실부정에 빠져 아주 적은 확률의 행운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것일 수 있다. 가학적인 의도로 팩트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경우 팩트의 제시는 “괜찮을거야”라는 대책없는 위로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팩트는 폭력이 아니라 현실의 직면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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