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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요산 쌓이면 바람만 불어도 ‘으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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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경기도 분당에 사는 회사원 김모(40)씨는 얼마 전 연말 송년회에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 김씨는 떼굴떼굴 구르며 잠에서 깼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관절이 갑자기 붉어지며 퉁퉁 붓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치 칼에 발가락을 찔린 것 같았다. 그는 119 구급차에 실린 채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그는 ‘통풍’으로 진단받았다.

통풍(痛風). 말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질환이다. 관절부위 통증이 극심하다. 약 90%는 엄지발가락 뿌리 부분에 통풍이 발병한다. 발등·발목·무릎도 통풍이 잘 발병한다. 급성기엔 엄지발가락이나 발등 같은 부위의 관절이 심하게 붓고 아프다.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아프다가 통증이 갑자기 사라진다. 통풍은 잘 재발한다. 통풍의 첫 발작과 두 번째 발작 사이에 통증이 없는 기간이 10년 정도 되면 ‘만성 결절성 통풍’으로 진단한다. 이 경우 통풍 발작이 여러 관절에서 더 자주 발생하고 더 오랜 기간 통증이 지속한다. 심장병, 만성 신부전 같은 합병증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통풍은 왜 생기는 걸까. 길병원 류머티스내과 최효진 교수는 “체내 요산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거나 신장기능 이상으로 요산이 배출되지 않아 몸속에 요산이 쌓이면 통풍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강동경희대병원 류머티스내과 이상훈 교수는 “통풍 환자의 98%는 혈액 속 요산이 7.0㎎/dL 이상인 ‘고요산혈증’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소변으로 나오는 산성물질’이라는 뜻의 요산은 우리 몸에서 여러 경로로 만들어진다. 우선 요산은 몸속 세포가 쪼개지고 재생할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세포에 든 ‘퓨린(아미노산의 일종)’이 몸에서 에너지로 쓰이고 남은 찌꺼기가 소변을 통해 배출된다. 그 찌꺼기가 요산이다. 이런 과정으로 요산은 매일 600㎎씩 생겨나고 빠져나간다. 만약 요산이 몸속에서 100개가 만들어지면 100개가 신장을 통해 몸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그런데 신장에서 이 요산을 잘 배출하지 못해 60개만 배출하면 남은 요산 40개가 몸속에 쌓인다. 이 40개 요산은 서로 뭉쳐 바늘 모양의 뾰족한 요산덩어리(요산 결정)를 만든다. 이 요산덩어리는 피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관절·신장 등을 침범할 수 있다. 이때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이 요산을 세균·바이러스 같은 이물질로 착각해 공격한다. 이때 몸에 염증반응이 생기면서 통풍이 발작하는 것이다.


분당차병원 류머티스내과 정상윤 교수는 “과체중이나 비만인 사람은 마른 사람보다 몸속 세포 수가 많아 요산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며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체중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단기간 급격한 다이어트나 무리한 운동은 혈중 요산수치를 높여 통풍발작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술은 통풍 환자가 금기해야 할 1순위다. 최효진 교수는 “술의 에탄올은 복잡한 기전을 통해 체내 요산수치를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특히 맥주나 막걸리에 퓨린이 많다. 보리·쌀 같은 곡식 낱알에 퓨린이 많아서다.


퓨린이 많이 든 음식도 조심해야 한다. 동물의 심장·간 같은 내장, 육즙·거위·정어리·고등어·멸치·베이컨 같은 음식이 대표적이다. 최효진 교수는 “통풍이 발작한 급성기만 아니면 퓨린이 든 음식은 피할 필요 없다”며 “퓨린이 든 100가지 음식을 줄여도 술을 마시면 무용지물”이라고 강조했다. 또 물을 적게 마시면 탈수를 유발해 요산 농도를 높인다. 하루 물 2L 이상을 마시는 게 안전하다.


통풍은 대부분 남성들에게 잘 발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통풍으로 진료 받은 환자 33만4705명 중 남자가 30만7025명으로 무려 91.7%나 됐다. 이상훈 교수는 “여성호르몬이 신장에서 요산의 재흡수를 억제해 요산이 몸밖으로 빠져나가게 한다”며 “여성호르몬이 적은 남성에게 통풍이 잘 생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특히 남성 중 40~60대 환자가 20만5053명으로 남성 전체 환자 3명 중 2명(66.7%)이 중년 남성이었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안주로 퓨린이 많이 든 음식을 곁들이는 식습관이 상대적으로 많은 연령층이기도 하다. 대한류마티스학회에 따르면 통풍이 잘 생기는 위험군으로는 40세 이상 중년 남성,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뚱뚱한 사람, 고혈압이 동반된 사람, 신장기능이 나쁜 사람, 통풍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해당한다.


통풍 발작이 생기면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나 경구스테로이드제 같은 약물을 복용해 통증을 완화한다. 관절통이 심하면 관절강 내 스테로이드 주사치료를 시행할 수도 있다. 통풍이 자주 재발하면 혈중 요산이 늘어나는 것을 차단하는 약물(알로퓨리놀·페북소스탯)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정상윤 교수는 “이들 약물을 고혈압·당뇨병 약처럼 오랜 기간 꾸준히 복용해야 하므로 복용 시점을 통풍 전문의와 신중히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풍은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상윤 교수는 “통풍이 걱정되면 고요산혈증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검진해볼 것을 권장한다”며 “혈중 요산수치가 높을 때 통풍발작이 없더라도 요산억제제 복용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엄지발가락처럼 통풍이 잘 생기는 부위가 욱신거리거나 따끔거리고 뻑뻑한 느낌이 있으면 류머티스내과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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