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생태계 교란하는 외래종 ‘갯끈풀’
지난달 28일 인천시 강화도 남단 동막해변. 이곳 주민이자 해변 일대를 관할하는 어촌계 계장 신상범(67)씨는 갯벌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삽으로 파도 갯지렁이가 안 나와요. 땅이 굳어 파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갯지렁이가 살겠어요.”
세계자연보전연맹 지정 100대 위해 생물
1년에 두 배로 번식, 갯벌을 육지화
어른도 못 뽑아 굴착기로 제거 작업
신씨의 눈앞에 펼쳐진 갯벌엔 어른 키 높이의 풀이 무성하다. 미국 동부 연안이 원산지인 외래종 갯끈풀(Spartina alterniflora)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100대 악성 생태계 위해 외래 생물’ 중 하나다.
강화도 남단에서 갯끈풀이 뒤덮은 갯벌은 1만2149㎡에 이른다. 축구장 넓이의 1.7배다. 내년엔 얼마나 더 퍼질지 알 수 없다. 갯끈풀이 산재해 있는 해안선은 동쪽의 동검도에서 서쪽의 동막해변까지 5.6㎞에 이른다.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국내 갯끈풀 분포 현황을 조사해 밝혀낸 결과다. 해수부 의뢰로 조사를 한 한국연안환경생태연구소(대표 홍재상 인하대 해양과학과 교수)는 동막해변에서 갯끈풀이 자라기 시작한 시기를 2008년 이전으로 추정했다. 과거 항공사진을 분석해서다.
드론에 찍힌 갯끈풀 군락은 끔찍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해변엔 원형의 갯끈풀 군락이 수십 개나 됐다. 육지에 가까울수록 덩치가 크고 바다로 나갈수록 작았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며 각각의 군락이 점차 커져 하나둘씩 합쳐지고 있는 점이다. 갯벌이 초원으로 바뀌고 있는 과정이다. 홍 교수는 “지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속도가 빠른 곳에선 1년 사이에 군락이 두 배로 커진다”고 했다.
주민들도 초기엔 갯끈풀의 위험을 알지 못했다. 신씨 집안은 강화도에 산 지 250여 년이 됐다고 했다. 신씨는 “어른들로부터 갯끈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주민 대부분은 ‘처음 보는 이상한 풀인데 짠물이니 곧 죽겠지’ 하고 예사롭게 넘겼다”고 전했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갯끈풀은 칠면초·나문재·해홍나물 같은 자생 염생식물을 위협하며 세를 넓혀 갔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몇 해 안된 주민은 심각성을 모른다. 타지에서와 3년 전부터 해변에서 영업을 한다는 한 상인은 “일몰 때면 풍광이 아주 이국적이라 좋다. 왜 위험한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응은 늦었다. 환경부는 지난 6월, 해수부는 지난 9월에서야 갯끈풀을 각각 ‘생태계 교란 식물’과 ‘유해 해양생물’로 지정했다. 볏과 식물인 갯끈풀은 자생 염생식물보다 번식력이 강하다. 큰 것은 키가 2m를 넘고, 뿌리는 땅속으로 1m까지 뻗는다. 갯끈풀이란 이름은 갯가에서 나며 끈처럼 질긴 풀이란 특성에서 나왔다. 어른 힘으로도 줄기가 뽑히지 않으며, 특히 뿌리를 뽑긴 더욱 힘들다.
갯끈풀의 위험은 갯벌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 육지화하는 데 있다. 갯끈풀이 자라면 조류 흐름이 약해진다. 갯끈풀 주위로 갯벌 퇴적물이 쌓이고 단단해진다. 갯벌에 살던 조개·칠게·농게는 서식지를 잃는다. 이들을 먹이로 하는 도요·물떼새는 먹이터가 사라져 갯벌을 떠난다. 신씨는 “동막해변에 지천이던 맛조개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최근 들어선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모시조개 양식장까지 갯끈풀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갯끈풀이 발견된 지역은 이곳과 전남 진도 남동리,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등 3곳이다. 강화도의 갯끈풀 군락이 규모가 제일 커 심각하다. 진도는 면적이 7179㎡로 이곳보다는 작다. 강화도와 비슷한 시기에 갯끈풀이 자라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도의 갯끈풀은 지난달 초 발견됐다. 환경단체 ‘시화호생명지킴이’가 발견해 신고했다. 면적은 600㎡로 아직은 작은 편이다. 제4, 제5의 갯끈풀 군락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갯끈풀은 번식력이 높다. 열매와 뿌리를 통해 동시에 번식하는데, 여름에 맺힌 열매가 초겨울에 떨어져 조류를 따라 인근 연안으로 이동한다. 조건이 맞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군락을 만든다. 줄기를 잘라도 땅속에 남은 뿌리가 옆으로 퍼지면서 무성번식을 한다. 원래의 줄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운 줄기가 올라온다.
제거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올여름 강화도와 진도의 극히 적은 면적에서만 시범적으로 제거를 했다. 해수부와 환경부·강화군·해군·해양환경공단·어촌계 등이 참여했다. 당시 갯벌에 중장비 진입이 어려워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이지만 해수부는 갯끈풀 제거에 쓸 재원을 내년 예산에 편성하지 못했다. 해수부 해양생태과 김신지 사무관은 “최근에야 유해 해양생물로 지정돼 정부안에 예산을 반영하지 못했다. 국회에 예산 배정을 요구 중”이라고 밝혔다.
북미가 원산지인 갯끈풀은 영국·유럽·아프리카와 중국·일본에도 퍼져 있다. 갯끈풀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국내에 상륙했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국립생태원 김남영 연구원은 “씨앗이나 뿌리가 중국에서 해류를 타고 흘러왔거나 선박 측면에 붙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갯끈풀의 외부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미 워싱턴주, 갯끈풀로 인한 굴산업 손실 연 185억
갯끈풀의 위협은 탐욕이 부른 환경 파괴의 ‘역습’이다. 1800년대 이후 미국·영국·뉴질랜드·중국에선 일부러 갯끈풀을 심었다. 해안 침식을 막는 효과가 있어 간척사업에 활용했다.
그러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퍼진 것이다. 미국 워싱턴주 윌라파만(灣)에선 갯끈풀로 굴 산업이 연간 185억원 손실을 보고 있다. 방재 비용으로 연간 6억원을 쏟는다. 물리적 방법으로 제거가 잘 안 되자 해양오염을 감수하고 제초제를 뿌리기까지 하고 있다. 중국은 갯끈풀을 잡으려고 방조제를 쌓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물리적 제거가 가장 친환경적 방법인데 걸림돌이 많다. 땅속 뿌리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선 굴착기를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갯벌이라 바퀴가 빠지기 일쑤다. 지난여름 강화도 분오리에선 갯벌에 철판을 깔고 굴착기를 동원했다.
최선의 방법은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빨리 발견하고 발견 즉시 박멸하는 것이다. 초기 방제에 실패하면 매년 제거 비용으로 수백억원을 써야 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지경이 되면 한국 갯벌은 초토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홍재상 인하대 해양과학과 교수는 “당장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미국처럼 제초제 사용을 고려해야 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화도·대부도=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