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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그때 역사의 현장, 이젠 예술의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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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향’ 광주

옛 전남도청 일대에 들어선 아시아문화전당 전경. 사진에서 2시 방향이 금남로고 10시 방향이 충장로다.

옛 전남도청 일대에 들어선 아시아문화전당 전경. 사진에서 2시 방향이 금남로고 10시 방향이 충장로다.

말하자면 우연이었다. 가을은 가고 겨울은 채 오지 않은 계절, 무언가 어정쩡해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요즘이었다. 달력만 바라봐도 심란한 시절, 책 한 권이 낙엽처럼 툭 나타났다.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광주에서 나고 광주에서 자라 50년 가까이 광주에서만 산다는 문학평론가 김형중(48·조선대 국문학과 교수)이 광주에 대해 적은 산문집이었다. 책에서 평론가 K는 광주 구석구석을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기록을 적절히 인용해 회상하고 증언했다. 마침 옛 전남도청 건물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평론가 K와 떠나는 광주 역사문화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고백건대 광주는 참 먼 도시였다. 남도 정서를 말할 때 광주는 빠뜨릴 수 없는 고장이지만 여행기자는 선뜻 광주를 결심하지 못했다. 광주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아시아문화전당)을 거느린 도시고, 81년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영화관(광주극장)을 둔 도시다. 그러나 광주를 주제로 여행을 작정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되새기지 않는다고 아픈 역사가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5ㆍ18 민주광장에 있는 5ㆍ18 민중항쟁 알림탑.

5ㆍ18 민주광장에 있는 5ㆍ18 민중항쟁 알림탑.

그러나 K와 지켜본 광주는 여행기자의 선입견 너머에 있었다. 광주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무엇보다 건강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고 지난해 옛 전남도청 일대가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재탄생하면서 광주는 상처를 문화와 예술로 승화한 참이었다.

젊은 예술가의 발랄한 감각이 곁들어진 대인시장은 활기로 들썩거렸고, 내다버린 살림살이로 골목을 꾸민 양림동 펭귄마을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형편이 어려운 광주극장에선 극장을 지키려는 광주 사람의 정을 확인하고서 K 몰래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36년 전 금남로의 기억이 문화와 예술로 거듭난 현장을 목격하면서 오늘 광화문 거리의 오래된 미래를 대강이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평론가 K는 광주를 이렇게 기록했다. ‘순간적이었던 절대공동체의 경험과 이후의 긴 상실감 사이에 벌어진 틈.’ 그 틈에는 물론 어제를 디디고 일어선 오늘의 삶이, 그 삶이 포개지고 더해져 이룬 우리의 문화가 있다. 경험은 순간적이어도 경험을 공유한 기억은 순간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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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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