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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제작자 인터뷰 릴레이④ ‘검사외전’ 제작한 영화사 월광 손상범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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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극장가의 승자는 총 관객 970만 명 이상을 동원한 ‘검사외전’(2월 3일 개봉, 이일형 감독)이었다. 신생 제작사인 영화사 월광과, 제작 경험이 풍부한 사나이픽처스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영화사 월광은 윤종빈 감독의 ‘군도:민란의 시대’(2014, 477만 명, 이하 ‘군도’)를 시작으로, 두 번째 작품인 ‘검사외전’을 통해 더 큰 흥행을 기록했다. ‘검사외전’은 ‘여심 홀리는 사기범 캐릭터를 통해 배우 강동원 특유의 매력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평과, ‘10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을 만큼 극적 완성도가 뛰어나지는 못하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2017년은 영화사 월광에 더 큰 관심이 쏟아지는 해가 될 듯하다. 연초에 부산을 무대로 한 수사극 ‘보안관’(김형주 감독)이 개봉할 예정이고, 윤종빈 감독의 차기작 ‘공작’ 촬영도 시작한다. 서울 논현동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만난 손상범(35) 대표는 “아직 우리 영화사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라 했지만, 그의 이야기 속엔 영화사 월광만의 특별함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영화사 월광은 윤종빈 감독이 네 번째 장편 연출작인 ‘군도’를 연출하며 직접 세운 제작사라고.

“맞다. 윤 감독님이 전작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471만 명, 이하 ‘범죄와의 전쟁’)를 연출하면서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해서 그렇지, 제작할 때만 해도 ‘범죄와의 전쟁’은 투자·배급사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중년의 세무 공무원 이야기가 젊은 관객에게 통할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주연 배우 최민식·하정우가 ‘1000만 배우’라 불리던 때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감독과 뜻을 같이하며 투자·배급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제작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당신이 대표로 합류한 것은 언제인가.

“‘군도’ 후반 작업을 하던 2013년 말이다. 그 전까지 CJ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본부 제작팀·투자팀에서 일했다. 윤 감독님과는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선후배 사이로, 그는 98학번이고 나는 99학번이다. 윤 감독님의 첫 장편 ‘용서받지 못한 자’(2005)의 조감독을 맡기도 했다. 윤 감독님과 나 그리고 나와 동기인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 ‘보안관’의 김형주 감독, ‘공작’의 시나리오를 쓴 권성희 작가까지, 이 다섯 명이 현재 영화사 월광의 멤버다(이 감독과 김 감독 역시 윤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문서상으로 보면 내가 영화사 월광의 대표이고, 윤 감독님이 최대 주주이며, 다른 셋은 계약 관계인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그런 것 상관없이 허드렛일도 다 같이 나서서 하고, 운전도 덜 피곤한 사람이 한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출신 지인이 아니면 함께 일할 수 없는 건가.

“하하.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 관계가 영화사 월광의 중추였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끼리 워낙 격의 없이 지내다 보니 어떤 작품을 기획·개발할 때도 형식을 갖춰 회의하기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이야기하는 식이다. 이런 의사소통 방식에 잘 맞는 감독과 작가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함께 일할 의향이 있다. 실제로 지금 중앙대학교 출신이 아닌 여성 감독님 작품의 제작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영화사 월광만의 의사소통 방식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만날 같이 밥 먹으며 수시로 대화하고, 새벽이나 주말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서로 전화해 몇 시간씩 이야기한다. 시간 정해 놓고 회의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야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 특히 주연 배우와 주요 스태프들을 꾸리고 투자를 확정받기 전, 작품의 틀을 다지고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기획 과정은 말 그대로 ‘우리끼리 하는 것’이다. ‘검사외전’을 기획·개발할 때도 시나리오 외에 다른 문서를 주고받지 않았다. 회의 결과를 문서로 정리해 주고받다 보면, 한두 군데 애매하거나 틀린 구석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걸 바로잡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게 된다. ‘검사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간다’는 ‘검사외전’의 한 줄 컨셉트는 윤 감독님에게서 나왔다. 엔드 크레딧에는 각본에 이일형 감독의 이름만 올라 있지만, 시나리오 최종고를 완성할 때는 이 감독·윤 감독님·나 셋이서 숙소를 잡고 들어가 함께 작업했다. ‘보안관’도 마찬가지다. 연출을 맡은 김형주 감독 외에 권성희 작가·이 감독·나까지 넷이서 최종고를 썼다.”

-‘검사외전’ 얘기를 해 보자. 개봉 당시 관객 1000만 명에 가까운 흥행을 예상했나.

“우리로서는 윤종빈 감독님이 연출하지 않는 영화를 기획한 것이 처음이었고, 애초에 ‘400만 명만 넘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쟁작들이 그해 설 연휴(2월 6~10일)보다 1~2주 앞서 개봉하는 전략을 썼는데, 관객을 꾸준히 모으지 못했다. 그러면서 2월 3일 개봉한 ‘검사외전’에 관심이 쏠렸고, 그만큼 스크린 수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검사 출신 재소자 역의 황정민, 전문 사기범 역의 강동원이 보여 주는 색다른 화학 작용을 밝고 익살스럽게 풀어낸 점도 명절 극장가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재치 넘치는 순발력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사기범 치원 역에 강동원을 캐스팅한 것이 주효했다.

“강동원은 작품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배우다. 그 캐릭터로 자신이 뭘 보여 줄 수 있을지, 그것이 그 영화에 어떤 역할을 할지 살피고, 그 두 가지가 동반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고른다.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외모가 빼어나지만 그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지금껏 작품마다 다양한 매력을 선보여 오지 않았나. 뺀질뺀질하면서도 매력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도 ‘검사외전’이 처음일 거다.”

-극적 완성도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었다.

“뼈아픈 지적이다. ‘검사외전’은 캐릭터의 매력과 코미디 특유의 재치로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오락영화다.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시나리오를 써 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짜 맞추니 치원이라는 캐릭터가 마음껏 뛰놀 수 없더라. 한데 지난해 ‘베테랑’(류승완 감독) ‘내부자들’(우민호 감독) 등 한국 사회의 불의를 정면 돌파하는 작품들이 이어졌고, 그 연장선에서 볼 때 ‘검사외전’이 유독 가볍고 현실적이지 못한 영화로 느껴진 것 같다. 제작자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캐릭터가 앞서는 코미디영화로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일형 감독의 색깔과 장점을 제일 잘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 대학 시절 그가 연출한 단편영화들을 보면, 캐릭터의 매력이 전면에 나서는 작품이 많다. 록 가수에게 발라드를 맡길 수 없고, 래퍼에게 록 음악을 시킬 수 없지 않나. 그 감독, 그 작가가 지닌 개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획을 하려 한다.”

영화사 월광의 필모그래피

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감독 | 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이성민, 조진웅 | 2014 영화사
월광의 첫 작품으로 쇼박스와 공동 제작했다. 현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철종 13년(1862년)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탐관오리 횡포에 맞서는 의적 떼 ‘추설’의 활약을 한국식 서부영화로 풀어내, 관객 477만 명을 모으며 호평받았다.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과 ‘보안관’의 김형주 감독이 이 영화의 공동 조감독을 맡았다.

검사외전

이일형 감독 | 황정민, 강동원, 이성민, 박성웅 | 2월 3일 개봉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하게 된 검사 변재욱이, 사기 전과범 한치원과 손잡고 누명을 벗기 위해 벌이는 모험담을 그린 범죄·코미디영화. “황정민씨의 추천으로 강동원씨에게 치원 역을 제안했는데, 솔직히 그가 한다고 할 줄 몰랐다. 그런데 그가 시나리오를 받은 지 이틀만인가, 2014년 추석 날 ‘하겠다’고 답을 줘 놀랐다.” 손 대표의 말이다.

보안관
김형주 감독 | 이성민, 조진웅, 김성균 | 2017년 초 개봉 예정
손 대표는 김형주 감독을 “1980년대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휴먼 드라마에 잘 어울리는 감독”이라 설명한다. ‘보안관’은 수사극이라는 장르에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를 결합시킨 작품. 부산 기장군의 토박이 형사(이성민)가 서울에서 내려온 사업가(조진웅)를 마약 사범으로 오해해 생기는 일을 그린다. 지난 7월부터 석 달 동안 부산에서 촬영을 마치고 현재 후반 작업 중.

공작
윤종빈 감독 |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출연 예정 | 2017년 1월 크랭크인 예정 남북한 관련 인사들이 공동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물밑 작업을 벌이는 이야기. 윤종빈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연출작에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촬영을 앞두고 프리프로덕션에 한창이다. 손 대표와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동기인 권성희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대학 선후배와 동기들끼리 뭉친 제작사다. 친한 사이끼리 허물없이 회사를 꾸려 가다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되지는 않나.

“윤 감독님, 그러니까 종빈 형과는 싸움을 할 수가 없다. 원체 세다(웃음). 권 작가는 예민해서 눈물이 많다. 그와는 같이 울며 쌓인 것을 풀기도 한다(웃음). 지금껏 관계가 깨질 정도로 갈등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할 때 JK필름을 보며 ‘나중에 제작사를 이끌게 되면 규모를 키우지 말고, 가장 단순한 구조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CJ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2006년 무렵은 한국 영화계에 한창 거품이 일던 때였다. 다들 회사를 방만하게 운영하고, 너도 나도 우회상장으로 사업 규모를 키우려 들었다. 그런데도 JK필름은 윤제균 감독님과 그의 죽마고우인 길영민 대표님, 이 두 분이 핵심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소규모 체제를 유지했다. 재무팀을 갖춘 다른 어떤 제작사보다 배급사를 상대하는 방식이 빠르고 정확했다. 허투루 처리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영화사 월광도 그렇게 꾸려 가고 싶다.”

-한 해에 몇 편 정도 제작하는 것이 알맞다고 보나.

“다른 제작사와 공동 제작하는 작품 한 편과 단독 제작하는 한 편, 총 두 편 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검사외전’에 이어 지금 준비 중인 ‘보안관’ ‘공작’ 모두 사나이픽처스와 공동 제작하는 점도 특이하다.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이 ‘범죄와의 전쟁’ ‘군도’의 총괄 프로듀서였다. 그때 쌓은 신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나이픽처스는 한 대표님을 비롯, 현장 경험 많은 프로듀서들이 공동 제작과 자체 제작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펼치는 제작사 아닌가. ‘검사외전’ ‘보안관’ ‘공작’은 우리가 기획을 주관하고, 사나이픽처스가 실질적인 제작 노하우를 발휘하는 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워낙 형제처럼 끈끈한 관계라, ‘이 영역은 영화사 월광, 저 영역은 사나이픽처스’ 하는 식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똘똘 뭉쳐 작업 중이다.”

-‘영화사 월광이 추구하는 영화’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 뚜렷한 방향을 정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만 보면 남자 영화, 그것도 사나이픽처스 영화들보다는 좀 더 수위가 낮고 오락적인 작품을 만드는 제작사 같은데(웃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감독과 작가가 합류하면 그에 맞는 작품을 기획할 테니, 작품의 색깔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우리와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작품을 더 좋은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함께 일할 수 있다.”

누구에게든 언제나 인간적으로!

“영화 제작은 인간관계가 중심이 되는 사업이다.” 손 대표의 신념 중 하나다. 그가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조감독으로 일할 때 이를 절실하게 깨달은 경험을 전했다. “한겨울에 서울에서 새벽 3시까지 촬영하고, 다음 촬영을 위해 열네댓 명이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에 내려갔다. 하루 묵을 숙소로 방학 때라 비어 있는 자취방을 헐값에 빌렸는데, 빈 방에 이불도 하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안성에 사는 군대 후임에게 연락했더니, 그 새벽에 이웃들에게 부탁해 이불 열세 채를 구해 왔다. 정말 고마웠다. 영화 일을 하다 보면, 언제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더욱이 영화계는 한 편 한 편의 흥행 결과에 따라 부침이 심한 업계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한다”는 그는 황정민·강동원·이성민·조진웅 등 스타 배우들과 연이어 작품을 함께하는 비결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배우들도 결국은 자신을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 주길 바란다. 그만큼 충실하게,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이소정(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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