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정치적 고향마저

중앙일보

입력 2016.12.01 17:28

업데이트 2016.12.01 18:06

박근혜 대통령이 화재 피해를 입은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습니다.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 대동했습니다. 사실상 개인자격 방문이라고는 하나 대통령 행차 치곤 뒷맛이 씁쓸합니다. 피해 상인들을 위로하려는 방문이었을 터인데, 상인들 손을 잡거나 제대로 대화를 나눌 처지가 못됐습니다. ‘염치없이 왜 여기에 왔느냐’ ‘어이없다’는 상인들 볼멘소리가 많았습니다. 박대를 당한 셈입니다.

대구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입니다. 그중에서도 서문시장은 특히 인연이 깊습니다. 정치 입문 후 고비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았고, 그때마다 상인들은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낮은 지지율로 고비를 맞았을 때도 시장을 방문했고, 당선 직후에도 찾았습니다. 10여년 전 화재가 났을 때도 상인들은 다른 정치인 방문은 거부하면서도 박 대통령은 환대했습니다. 그 상인들이 이번엔 등을 돌린 겁니다. 국민의 퇴진 요구를 받는 박 대통령이 이제 돌아갈 고향마저 잃어버린 신세가 됐습니다.

박 대통령 퇴진을 놓고 여야 정치권이 혼란스럽습니다. 탄핵이냐 질서있는 퇴진이냐, 1월이냐 4월이냐 등 방식과 시점을 놓고 여야의 생각이 다릅니다. 야당 탄핵 공조에도 균열 조짐이 보입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엇박자로 2일 탄핵소추안 표결은 일단 불발됐습니다. 야 3당 대표가 회동해 탄핵 발의를 다시 논의했지만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새누리당 비박계 대표격인 김무성 전 대표와 긴급 회동해 탄핵 공조를 타진했지만 합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당으로부터 ‘오락가락 돌출 행보’라는 쓴소리만 들었습니다.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탄핵을 위한 야 3당과 새누리당 비주류 간 균열이 생겨 탄핵안 국회 통과가 어려워질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여야 정치권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민심을 두려워하는 자세부터 다시 가다듬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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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사 준비에 20일이나 쓰는 건 국민에게 미안한 일이라며 최대한 빨리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국정농단의 진상을 밝혀줄 특검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매우 큽니다. 다만 검찰이 수사하던 도중 특검이 개시되는 것이어서 미흡한 수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수사 기간과 인력이 제한돼 있는 특검이 검찰 수사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용두사미로 끝났던 과거 사례가 있어서입니다. 이번 특검이 수사 대상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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