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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김제동은 수험생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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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의 입에는 ‘확성기’가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매년 수능 전에 자신의 SNS를 통해 수험생들을 위로해 온 그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격려의 말을 남겼다. “많이 울고 많이 불안했던 날들 잘 견뎌 줘서 고마워. 오롯이. 있는 그대로. 너로 충분해”라고. 수능을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강 업체 이투스가 11월 28일 잠실 올림픽홀에서 연 콘서트 사회를 본 김제동은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 믿지 않아요. '청년은 이 나라의 미래다'라는 이 따위 말도. 청년은 이 나라의 현재예요. 그리고 아프면 중년이죠. (중년인) 내가 아프다고요.”

위트와 유머를 적절히 섞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김제동 특유의 화법으로 시원스레 청중의 맘을 갈랐다.

“나이 들었다고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독립된 개인이고 민주시민이지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가르칠 수 없어요. 민주주의 핵심 가치는 옳다, 그르다가 아니에요. 나는 나의 말을 할 권리가 있고 이 말할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면 (누군가의) 말할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어요.”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했는데 학생들의 호응은 컸다. 오랜 시험 준비로 자의반 타의반 말문을 닫아 온 탓일까. 그는 이어 본인이 악플에 시달려 힘들었을 때 위안이 된 동화를 꺼냈다.

“‘독버섯 먹으면 안 돼.’ 이 말을 들은 아기 독버섯이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쓰러졌어요. ‘난 천하에 쓸모없는 독버섯이구나.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이때 독버섯의 친구가 어깨를 받치면서 말해요. ‘아니. 저건 인간들의 논리야. 저건 식탁의 논리야. 넌 쟤들이 먹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내 친구 하려고 태어난 거야.’ 이 동화를 듣고 혼자 많이 울었어요. ‘죽으라’는 악플을 보고 ‘죽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죠. 사람은 그렇게 자기 옆에서 어깨 받쳐 줄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으면 살아요. 혼자 온 사람은 자기가 자기한테 그런 존재가 돼 주면 돼요.”

그러면서 인간관계나 악플, 비난에 대처하는 법도 소개했다. 실제 일화를 꺼내면서다.

“예전에 윤도현 밴드가 공연을 할 때 어떤 안티팬이 제일 앞에서 ‘YB fuck you’라는 큰 글자를 들고 서 있었어요. YB가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어. 근데 기타 치는 형이 그 앞에서 계속 기타를 쳐 줬어. 머리에 하트까지 그리면서. 그랬더니 그 글자를 점점 내렸어요. 이 사람은 기타리스트에 감동 받아 팬이 됐어요. 사실 알고 보니 기타 치는 형이 영어를 전혀 몰랐어요. 그냥 팬인 줄 알고 기타를 친 거예요. 욕을 들으면 ‘불어다’ 이렇게 생각해요. 아니면 자음, 모음을 분리해 보든가. 누가 나한테 ‘이 개자식아’ 하면 그가 마법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해요. 그가 말한다고 내가 개가 되는 건 아니라고. 남들 기준에 의해 내 존재가 규정되는 게 아니에요.”

단톡방 등에서 왕따, 은따를 당하는 경우 자존감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시험을 망쳤거나 합격에 자신할 수 없어 움츠러든 학생들을 향해서 김제동은 각자가 가장 소중한 존재였을 때를 떠올리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한때 뒤집기만 해도 박수를 받았던 존재예요. 똥을 싸도 박수를 받았고요.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어도 돼요. 박수를 제일 많이 받았을 때가 태어나서 울었을 때에요. 예수님이 그랬죠. ‘너희들 모두 하느님의 아들이다.’ 부처님은 뭐라 했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맹자는요. ‘내가 먼저 나를 업신여기지 않으면 세상 누구도 나를 업신여기지 못한다.’”

또다시 일화 한 토막.

“이사 가서 일주일 정도 됐는데 반장 아주머니가 그래요. ‘TV 나오는 연예인이죠? 김제동씨죠? 방송 나가서 시끄러운 얘기 좀 하지 마시고요. 음식물 분리수거, 주차 똑바로 해 주세요.’ ‘똑바로 한 것 같은데요’라고 답하자 ‘지금까지 똑바로 했지만 앞으로 그러라고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생각하면 할수록 분한 거 있죠. 참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분한 게 있어요. 사람은 작은 일로 억울하고 분해서 죽을 수 있어요. 얘길 해야 풀리는데 남자들은 ‘술 마실래’ 이 말 뿐이에요. 여자 코디한테 전화했어요. 이야기하는 가운데 반은 (화가) 내려갔어요. 누가 나보다 더 흥분해서 나와 싸운 사람을 욕해 주면 옆 사람은 살아요. 내가 오히려 달랬어요. ‘너무 흥분하지 마.’ ‘오빠,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몇 호예요?’ ‘알면 뭐할래?’ ‘그 집 앞에 가서 똥을 쌀 거예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너무 행복해지는 거야. 똥이 싸져 있는 걸 상상하니. 실제로 싸고도 남을 애거든요. 다음날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밉지가 않아요. 속으로 웃음이 나와요. 한 달 있다가 친해졌잖아요.”

이유를 묻지 않고 내 편이 돼 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살 수 있다는 그의 얘기에 청소년들도 큰 웃음과 함께 진한 공감을 표했다. 콘서트 출연료 전액을 미얀마의 학교 건설에 기부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힙합 가수 산이와 씨잼, 아이돌 그룹 빅스와 여자친구, 레드벨벳도 출연해 수험생들의 답답한 가슴을 뚫어줬다. 서라벌고 3학년 홍휘표 군은 “수시 합격을 기다리는데 떨린다”면서 “레드벨벳 슬기를 보면 힐링이 될 것 같아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투스 ‘판타스픽4 콘서트’는 과학탐구 1타 강사인 배기범(물리), 백인덕(화학), 백호(생명과학), 오지훈(지구과학) 선생님이 주최했다.

글·사진=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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