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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닮은 송나라 ‘나한상’1000년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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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얼마나 야위었는지 가슴뼈가 앙상하다. 중국 12~14세기 남송, 원대에 제작된 ‘수골 나한상’이다. 험난한 수행 생활에 몸은 비쩍 말랐어도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법열에 든 듯 환희 그득하다. 백토 위에 청백색 유약을 부분적으로 발라 구워낸 도자기는 소품이지만 우주를 품은 듯 반짝인다. 작지만 강한 인상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묘가 빛난다.

남송과 원대에 제작된 ‘청백유 수골 나한상’. 수행자의 마른 몸과 희열에 찬 얼굴 대비가 도드라진다.

남송과 원대에 제작된 ‘청백유 수골 나한상’. 수행자의 마른 몸과 희열에 찬 얼굴 대비가 도드라진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가 1일부터 ‘수골 나한상’을 필두로 시작하는 ‘함영저화: 중국 고문물 특별전’은 오랜만에 만나는 중국 고미술의 세계다. 함영저화(含英咀華)는 꽃을 머금고 씹는다는 말로 사물의 묘처를 잘 음미해 가슴 속에 새겨둔다는 뜻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6000여 년에 걸쳐 중국인이 만들어 일상에서 쓰던 공예품 130여 점이 나왔다. 도자기, 옥 제품, 금속품, 문방구 등 생활의 미감과 중국인의 삶이 밴 이야기가 풍성한 유물이다.

학고재 갤러리 ‘중국 고문물전’
건륭제 벼루, 붓 세척통, 금은 그릇…
6000년 걸친 공예품 130점 나와

청나라 건륭시대에 제작된 ‘송화강석 어옹도연’은 건륭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명연(名硯)이다. 손바닥 크기 벼루로 실제 썼을까 싶게 장식적이라 실용성은 낮아 보인다. 벼루 덮개에는 갈대 숲 속에서 사색에 잠겨 있는 어옹(漁翁)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황제는 이 벼루에 먹을 간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갈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요(遼)대에 제작된 금제 마노 우두형 잔 한 쌍.

요(遼)대에 제작된 금제 마노 우두형 잔 한 쌍.

웬 붉은 사과 조각인가 싶었는데 다가가니 청나라, 17~18세기에 제작한 홍유(紅釉) 사과 모양 필세(筆洗)다. 붓을 빨아 쓰는 문방구 하나에도 이토록 지극한 예술 혼을 발휘한 장인의 마음이 사과보다 붉다. 몸에 지니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 해 다양한 기물에 쓰인 옥(玉) 제품, 화려한 색감에 기기묘묘한 문양의 금은기(金銀器) 등 앙증맞으면서도 품은 큰 전시품을 보고 있노라면 눈과 마음이 함께 즐거워진다.

전시를 기획한 박외종 학고재 갤러리 고문은 타이베이에서 중국 고미술을 전공한 전문가로 “중국 미술의 진면목을 박물관이 아닌 갤러리에서 소개해 일반 관람객이 친근하게 고문물에 다가가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20일까지. 02-720-1524.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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